감독
도나 디치 Donna Deitch

주연
헬렌 셰이버....비비안 벨
Helen Shaver....Vivian Bell
패트리샤 샤르보노....케이 리버스
Patricia Charbonneau....Cay Rivvers
오드라 린들리....프랜시스 파커
Audra Lindley....Frances Parker
앤드라 에이커즈....실버
Andra Akers....Silver
딘 버틀러....대릴
Dean Butler....Darrell
그웬 웰즈....그웬
Gwen Welles....Gwen
제임스 스태틀리....아트 워너
James Staley....Art Warner
알렉스 맥아서....월터
Alex McArthur....Walter

[데저트 하츠]는 영화 자체보다 영화가 끼친 영향과 여파에 더 주목해야 하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가 나온 해는 1985년. 당시까지만 해도 게이 영화들은 아주 드물었고 레즈비언 영화는 더더욱 부족했습니다. 그나마 있는 영화들도 대부분 남성 감독들의 작품이었고요.

일반적으로 [데저트 하츠]는 여성 감독/각본에 의한 최초의 레즈비언 극영화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실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엄연히 여성 감독의 작품인 [제복의 처녀]와 같은 영화들도 있잖아요. 샹탈 에케르망이나 디안느 퀴리 같은 사람들도 있었고요.

그러나 [데저트 하츠]는 여러 모로 선구적인 영화였으며 정확성을 약간 무시한다면 '최초'라는 명패를 달 자격이 있었습니다. [데저트 하츠] 이전에는 여성이 만든 레즈비언 영화가 이처럼 상업적 성공을 거둔 적도 없었고 (뉴욕에서는 [람보 2] 흥행 성적을 눌렀다나요?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요) 대중에게 인정받은 적도 없었습니다. 이 영화가 만들어진 이후 레즈비언 로맨스라는 장르가 본격적으로 꽃피기 시작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고요. [데저트 하츠]가 길을 터 주었기 때문에 [밤이 기울면]이니 [초콜렛보다 좋아]니 하는 영화들이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이랍니다.

이 영화의 원작은 캐나다의 레즈비언 작가 제인 룰이 쓴 [Desert of the Heart]입니다. 그러나 원작을 충실하게 옮겼다고 하기는 어려워요. 원작과 영화는 기초적인 상황 설정과 스토리 라인만 공유할 뿐입니다. 심지어 제목과 주인공 이름들도 다른 걸요.

영화의 주인공 비비안 벨(원작에서는 에블린 홀)은 35살 먹은 콜롬비아 대학 영문학 교수입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비비안은 12년 동안 같이 살아온 남편과 이혼하기 위해 리노에 도착합니다. 프랜시스라는 여자가 운영하는 목장에 머물게 된 비비안은 카지노에서 일하는 프랜시스의 의붓딸 케이(원작에서는 앤)와 사랑에 빠지게 되지요.

제인 룰의 [Desert of the Heart]와 영화 [데저트 하츠]의 가장 큰 차이는 스토리를 다루는 방식입니다. 룰의 원작은 섬세하게 쓰여진 심리 소설이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마치 50년대에 유행하던 게이/레즈비언 펄프 픽션처럼 단순하고 통속적이죠(이 영화의 시대 배경도 50년대 말입니다.) 많은 통속적인 작품들이 그렇 듯, [데저트 하츠] 역시 쉽게 고정된 틀 안에 빠집니다. 도시의 세련된 여성이 서부의 야성적인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그런 부류의 서부극 이야기를 떠올려 보세요. [데저트 하츠]는 그런 이야기의 레즈비언 버전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 때문에 영화는 규격화된 작품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대사나 인물 설정 상당수가 이미 어디서 본 것 같아요. 게이 관객과 스트레이트 관객 모두의 비위를 맞추려는 의도 역시 지나치게 노골적이고요. 나탈리 쿠퍼의 각색이 아주 자연스럽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러나 이런 단순함과 통속성은 의식적이었습니다. 감독 도나 디치는 애초부터 '예술 영화'를 만들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녀가 세상에 정말로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목표로 했던 것은 보통 게이 관객들을 위한 통속적인 데이트 영화였습니다. 그리고 당시만 해도 이런 영화는 '예술 영화'보다 훨씬 급진적인 선언이었습니다. '예술 영화'의 우산 밑에서는 대충 모든 게 용납되지만 데이트 영화는 사정이 다르잖아요.

그리고 워낙 소재가 소재인지라 영화는 단순하기만 할 수는 없습니다. 비비안과 케이의 갈등은 문명과 야만이라는 단순한 대립보다 훨씬 복잡한 것입니다. 고정된 성역할을 파괴하는 동성애라는 관계가 우리가 당연시하는 로맨스의 역학 관계를 깨버리기 때문이지요. 50년대라는 갑갑한 시대가 비비안과 케이에게 부여하는 억압 역시 쉽게 무시할 수 없는 요소입니다. 케이에게 독점적인 사랑을 퍼부으면서 정작 그녀의 동성애 관계를 인정 못하는 의붓 어머니 프랜시스도 미묘한 인물이고요.

다소 거칠기는 하지만 영화는 이 모든 요소들을 하나씩 솔직하게 짚어나갑니다. 통속적인 로맨스 영화답게 낙관적인 해피 엔딩을 지향하고 있지만 둘 사이에 산처럼 쌓인 문제점들을 해결했다고 억지로 주장하지도 않죠.

물론 대다수의 [데저트 하츠] 팬들은 이 영화를 로맨스 영화로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사실 이 영화는 좋은 로맨스 영화이기도 해요. 섹스 신만 기대하고 영화관에 들어온 사람들에게는 좀 호흡이 느리게 느껴질지는 몰라도, 비비안과 케이의 관계는 섬세하고 믿음직스러우며 감정의 전희라는 로맨스 영화의 제1목적에 완벽하게 도달하고 있습니다.

비비안 벨을 연기한 헬렌 셰이버는 훌륭합니다. 경직된 전문직 여성에서 서서히 사랑으로 깨어나는 로맨스 주인공의 변신을 아주 성공적으로 그려내고 있지요. 케이를 연기한 패트리샤 샤르보노의 연기는 다소 굳어 있지만 셰이버와의 앙상블은 아주 좋습니다. 둘이 호흡이 잘 맞아서인지, 쉽게 작위적이 될 수 있는 섹스 신도 자연스럽습니다.

[데저트 하츠]는 옥석이 뒤섞인 영화입니다. 좋은 연기와 평범한 연기, 훌륭한 캐릭터와 진부한 캐릭터, 정곡을 찌른 묘사와 뻔한 클리셰가 당연하다는 듯 믹스된 작품이지요. 어떤 때는 물 흐르는 것처럼 자연스럽다가 어떤 때는 뻣뻣하기 그지 없고요. 이미 이보다 훌륭한 레즈비언 로맨스는 많이 나와 있고 앞으로도 더 많이 나올 겁니다. 하지만 첫사랑이란 것은 첫사랑이라는 이유만으로 가치가 있는 법입니다. 앞으로 수십 년의 세월이 더 흘러도 게이 관객들은 여전히 [데저트 하츠]를 특별한 영화로 기억할 겁니다. (01/02/01)

DJUNA

기타등등

감독 도나 디치가 카메오로 나옵니다. 카지노에서 비비안에게 "게임을 하지 않으면 이길 수 없어요"라고 말하는 헝가리인 도박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