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다리오 아르젠토 Dario Argento

주연
엘리오 게르마노....줄리오
Elio Germano....Giulio
치아나 콘티....페데리카
Chiara Conti....Federica
엘리자베타 로체티....사샤
Elisabetta Rocchetti....Sasha
크리스티나 브론도....아리아나
Cristina Brondo....Arianna
이반 모랄레스....안드레아
Iván Morales....Andrea
엘레나 마리아 벨리니....줄리오의 어머니
Elena Maria Bellini....Giulio's Mother
밀비아 마릴리아노....사샤의 어머니
Milvia Marigliano....Sasha's Mother

줄리오

다리오 아르젠토는 경력 초기에 비평가들과 영화홍보쟁이들로부터 '이탈리아의 히치콕'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습니다. 물론 그도 히치콕의 영향을 받았겠지요. 하지만 그 장르에서 일하면서 그 정도로 히치콕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아르젠토는 브라이언 드 팔마가 아니었습니다. 히치콕의 영향을 받긴 했겠지만 그 자신의 개성이 히치콕이라는 이름에 묻혀버릴 정도는 절대로 아니었고 히치콕의 주제가 유령처럼 그의 영화를 따라다니지도 않았습니다.

그런 그가 [히치콕을 좋아하세요?]라는 프랑스와즈 사강 풍의 제목을 단 텔레비전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이 작품의 진정성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깊이 생각할 것 없습니다. 이 작품은 이탈리아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알프레드 히치콕을 기념하는 일곱 편의 텔레비전 영화 시리즈를 기획하고 첫 작품의 감독으로 아르젠토를 고용한 결과거든요. 아르젠토는 그냥 재미로 한 번 해본 작품일 겁니다.

영화의 내용은 당연히 히치콕 주제의 잡탕입니다. 독일 표현주의 영화에 대한 논문을 쓰느라 바쁜 영화학도인 줄리오는 맞은 편 아파트에 사는 여자 이웃 사샤를 가끔 훔쳐 봅니다. 사샤가 비디오 가게에서 만난 페데리카와 친구가 된지 얼마 되지 않아 사샤의 엄마가 살해당하자 줄리오는 사건의 진상을 알아냈다고 생각합니다. 사샤와 페데리카는 히치콕의 [열차 안의 이방인]을 보고 교환살인을 계획했던 겁니다!

벌써 [이창]과 [열차 안의 이방인]이 나왔죠? 줄리오가 사건을 수사하는 동안 히치콕 영화들은 계속 등장합니다. [다이얼 M을 돌려라], [마니], [싸이코]... 줄리오가 영화학도이기 때문에 이 인용들은 거의 숨어 있지 않습니다. 노골적으로 제목이 말해지고 비교되지요. 꽤 재미있습니다. 새롭지는 않지만요. 어쩔 수 없지요. 히치콕은 거의 매년마다 노골적으로 인용되고 예찬되는 영화감독이잖아요. 새롭게 할 말이 얼마나 남았겠어요.

이 영화에서 진짜로 재미있는 건 히치콕 영화들 사이에 아르젠토 영화가 숨어있는 방식입니다. 물론 이 영화에는 아르젠토의 이전 지알로 영화만큼 처참한 피투성이는 아닙니다. 하지만 초현실적인 경험을 담은 어린 시절의 회상, 장갑을 낀 살인마와 번뜩이는 칼, 창문 너머에서 살해당하는 희생자, 집요하게 살인마의 손을 따라가는 카메라, 극단적인 콘트라스트로 번뜩이는 화면, 강렬한 빨강색으로 빛나는 가짜 피는 여전히 등장합니다. 더 재미있는 건 그가 그런 전형적인 아르젠토 요소들을 등장시키면서 그것들을 살짝 비틀고 심지어 주석까지 덧붙인다는 거죠. 예를 들어 검은 옷을 입고 장갑을 낀 정체불명의 인물을 본 훔쳐보던 줄리오가 여자친구 아리아나에게 "지문을 남기지 않기 위해 장갑을 낀 거야"라고 친절하게 설명하는 장면은, 그 자체로는 전혀 우습지 않지만, 아르젠토 영화의 관습을 통해 보면 괜히 실실 웃음이 나옵니다.

[히치콕을 좋아하세요]에는 그 자체로 즐길만한 장면들도 많습니다. 전 높은 데에서 떨어져 다리를 다친 줄리오가 덩치 큰 남자에게 쫓기는 장면을 들고 싶군요. 다리가 아파 비명을 지르고 넘어지고 그러면서 질질 스쿠터를 끌고 시동을 걸고 넘어지고 달리고 그러는 동안 남자는 쿵쿵거리면서 쫓아오고... 잡힐 듯하다가 다시 스쿠터가 속도가 붙어 몇 미터 앞서다가 다시 넘어져서... :-) 손에 땀을 쥘만큼 아슬아슬한 장면이지만 그만큼 작정하고 웃기는 장면이기도 해요. 놀랍게도 아르젠토는 이 영화에서 많은 농담들을 중급 이상으로 성공시키고 있습니다. 이런 날이 올지는 정말 몰랐어요.

이 영화의 또다른 예외적인 특징은 캐릭터들이 꽤 생생하게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주인공 줄리오는요. 잘난 척하는 영화광이고 어쩔 수 없이 엄마의 도움이 필요한 철부지이고 구제불능의 피핑탐인 그는 은근히 귀여운 인물입니다. 관객들이 그에게 몰입하기도 쉽고요. 그 때문에 아르젠토의 다른 영화들에서는 늘 따분하고 장황한 막간이었던 수사장면들이 지루하지가 않습니다. 여전히 독창적인 이야기는 아니지만 따라가기가 쉬워요.

[히치콕을 좋아하세요?]가 다리오 아르젠토의 대표작이 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기성품 기획에서 가볍게 나온 기성품 영화이고 별다른 야심도 품고 있지 않죠. 지금의 영화평도 엇갈리는 편이고요. 하지만 그의 [카드 플레이어]와 같은 최신작과 비교해보면 훨씬 재미있고 더 잘 만든 영화이기도 합니다. 심지어 연기나 영어 더빙도 상대적으로 낫더군요. 이 정도면 "뭐야, 영감 아직 안 죽었잖아?"라고 말하며 느긋하게 그의 마지막 [세 어머니] 영화를 기다릴 수 있겠어요. (06/09/01)

DJUNA

기타등등

1. 무대가 되는 비디오 가게엔 아르젠토의 [카드 플레이어] 포스터가 떡 하고 붙어 있습니다. 자세히 보면 아지아 아르젠토의 [스칼렛 디바] DVD도 보여요.

2. 이 영화도 "지금까지 여러분은 [히치콕을 좋아하세요?]를 보셨습니다"라는 멘트로 끝납니다. 이 양반, 이걸 죽을 때까지 밀고 갈 생각인가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