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올리버 히르쉬비겔 Oliver Hirschbiegel

주연
브루노 간츠....아돌프 히틀러
Bruno Ganz....Adolf Hitler
알렉산드라 마리아 라라....트라우들 융에
Alexandra Maria Lara....Traudl Junge
코리나 하르포치....마그다 괴벨스
Corinna Harfouch....Magda Goebbels
울리히 마테스....요제프 괴벨스
Ulrich Matthes....Joseph Goebbels
율리안네 쾰러....에바 브라운
Juliane Köhler....Eva Braun
하니오 페르히....알버트 슈페어
Heino Ferch....Albert Speer
토마스 크레츠만....헤르만 페겔라인
Thomas Kretschmann....Hermann Fegelein
미카엘 멘들....헬무트 바이들링
Michael Mendl....Helmuth Weidling

히틀러

히틀러의 마지막 나날을 다룬 영화들은 이전에도 많았습니다. 일단 알렉 기네스가 히틀러를 연기한 73년도 작 [Hitler: The Last Ten Days]가 있고 안소니 홉킨즈가 히틀러를 연기한 81년도 TV 영화 [The Bunker]도 있죠. 전에 다룬 [아돌프 삼촌]도 이 시기를 다루고 있고요. G.W. 파브스트가 1955년에 서독에서 만든 [Der Letzte Akt]라는 영화도 있습니다. 그 작품은 오늘 다룰 [몰락]의 언니뻘 된다고 할 수 있어요. 히틀러의 비서 트라우들 융에는 이 영화에서도 고문으로 참여했거든요.

그렇다면 [몰락]은 앞의 영화들이 하지 않았던 무언가를 하고 있을까요? 하고 있다고 할 수 있고, 그렇지 않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예술적으로 이 작품은 창의적이거나 도전적이지 않습니다. 영화의 목표는 단 하나예요. 될 수 있는 한 1945년에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을 꼼꼼하게 재현하는 것이죠. 다른 영화들도 이전에 한 시도가 아니냐고요? [몰락] 쪽이 더 정교합니다. 그럴 수도 있었고요. 일단 독일 영화이고 자료들도 많이 수집되었으며 당시 사건에 대해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접근할 수 있었거든요. 한 마디로 [몰락]은 열심히 잘 하기만 해도 웬만한 수준은 성취할 수 있었던 영화였습니다.

[몰락]의 가장 큰 예술적 성취는 이런 주제를 다룰 때 쉽게 빠질 수 있는 캐리커처의 함정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보통 우린 끔찍한 일을 저지른 사람들의 성격과 악행을 극도로 과장해, 그들이 우리와 다른 존재라는 걸 부각하려 하죠. 그건 일종의 자기기만이며 책임 회피입니다. 인류 역사를 피로 물들인 모든 끔찍한 일들은 모두 인간들이 저지른 일이니까요. 그 끔찍한 일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일단 그들이 우리와 특별히 다를 게 없는 사람들이라는 걸 인정해야 합니다.

[몰락]은 그걸 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의 히틀러는 괴물이지만 우리가 이해하고 심지어 동정도 할 수 있는 인간이기도 합니다. 영화는 융에의 눈을 통해 그의 다양한 면을 보여주고 있어요. 어떤 때는 주변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자상한 중년 남자이고, 어떤 때는 독일 국민을 몽땅 죽음으로 몰아가도 눈썹 까딱하지 않는 냉혈한이고, 어떤 때는 오직 지도와 그의 머릿속에서만 존재하는 부대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고래고래 헛소리를 질러대는 미치광이기도 하죠. 그리고 히틀러를 연기한 브루노 간츠는 이 모든 것들을 설득력 있게 엮어 믿음직한 한 명의 인간으로 재구축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제3제국이 붕괴하기 직전 열흘 간이라는 짧은 기간과 히틀러의 벙커 안팎의 작은 세계를 제3제국 전체 역사를 조망할 수 있는 창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 멀쩡한 사람들이 어처구니없는 헤어스타일을 하고 괴상한 콧수염을 단 우스꽝스러운 오스트리아 남자에게 휘말려 들었고 그 광기가 그들에게 어떤 환상을 제공했는지 설명하려는 거죠. 이 영화의 얼굴마담은 당연히 히틀러지만 드라마의 진짜 주인공은 그 집단의 광기에 휘말려든 집단 전체입니다. 그나마 정신이 온전한 몇몇 사람들이 어떻게든 사태를 수습하려는 동안 광기와 자포자기의 절망에 빠진 사람들은 자기 아이들을 독살하고 어린애들을 전쟁터에 내몰고 사람들을 린치하고 막판엔 '총통 만세!'를 외치며 자기 머리에 총알을 박는 거죠.

[몰락]이 그리는 이런 난장판은 은근히 매혹적인 구석이 있습니다. 영화가 그리는 건 독일 제3제국의 패망이라는 구체적인 현실이지만 이건 사람들이 머릿속에 담고 있는 '제국의 몰락'과 '문명의 붕괴'의 상에 맞는 보다 보편적이고 막연한 이미지를 제공하기도 해요. 특별히 노력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몰락]이 미학적으로 매력적인 작품으로 남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이런 붕괴는 거창하고 화려한 시스템의 존재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의도하지 않은 다소 한심한 부작용을 낳기도 합니다. 영화를 보고 '독일 제국이 꿈꾸던 이상향이나 목표'에 대해 지껄이는 얼빠진 게시물을 국내 사이트에서도 접할 수 있는 것은 그 때문이죠. 실제로 이 영화는 네오 나찌들에게도 전혀 부담없는 작품이 될 수 있습니다. IMDb에 따르면 칼 리히터라는 NPD 당원이 제작진 몰래 단역 배우로 참여해 브루노 간츠 앞에서 열광적으로 나찌식 경례를 했다더군요. 그 때 그 사람 기분이 어땠을지 한 번 상상해 보시죠. (06/02/24)

DJUNA

기타등등

이 영화는 두 편의 책에 바탕을 두고 있어요. [Voices from the Bunker : The True Account of Hitler's Last Days]와 [Until the Final Hour : Hitler's Last Secretary]인데, 첫번째 책에도 융에가 참가했기 때문에 많은 부분이 겹칩니다.

영화의 도입부와 결말에 [히틀러의 여비서]의 인터뷰 클립이 나옵니다. 이 영화를 먼저 보고 [몰락]을 보는 게 순서인 것 같아요. 융에의 기술이 어떻게 극영화로 옮겨지는지 보는 것도 재미 중 하나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가끔 자막으로 사람들 이름을 알려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히틀러, 에바 브라운, 괴벨스 부부, 페겔란, 융에 같은 사람들은 그래도 알아볼 수 있었지만, 다른 군인들은 정말 구별하기 힘들었어요. 가끔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기만 했어도 좋았을 텐데.

참, [소피 숄의 마지막 나날들]에서 소피 숄을 연기한 율리아 옌치가 도입부에 잠시 나와요. 찾아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