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이마무라 쇼헤이 Shohei Imamura

주연
에모토 아키라....아카기 박사
Akira Emoto....Dr. Akagi
아소 쿠미코....소노코
Kumiko Aso....Sonoko
카라 주로....우메모토
Juro Kara....Umemoto
세라 마사노리....토리우미
Masanori Sera....Toriumi
자크 강블랭....피에트
Jacques Gamblin....Piet

간장 선생

이마무라 쇼헤이의 [간장 선생]은 대동아 전쟁과 진주만 공습의 원인에 대한 또다른 가설을 제공해줍니다. 한마디로 일본인들은 간이 부었던 겁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동네 의사 아카기 선생에 따르면 당시 일본인들의 7, 80퍼센트가 간염이었다니까요.

동네 사람들에게 아카기 선생은 그렇게 믿음이 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늘 저속 촬영된 무성 영화 코미디언처럼 열심히 뛰어다니지만 하는 일이라곤 거의 모든 환자들을 간염이라고 진단을 내리고 포도당을 투여하는 게 전부니까요. 이제 사람들은 그를 ‘간장 선생’이라는 별명으로 부릅니다. 물론 동네의 높은 양반들에게는 그런 치료 방법이 맘에 들 리가 없습니다. 지금이 어떤 때인데 푹 쉬고 영양 관리를 잘하라는 소리가 나올까요?

아카기 선생은 그냥 정신나간 영감에 불과할까요? 아니면 정말 그가 옳은 걸까요? 이 영화가 무대가 되는 제2차 세계대전 말의 일본은 정말로 꽤 간염이 번창할 만한 곳이긴 했습니다. 또 모르겠어요. 저처럼 ‘간부은 일본’의 해석을 고집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겐 일종의 정신적 질병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걸요. 아니면 대부분의 환자들이 간이 부었다고 믿는 아카기 선생이 뭔가 상징적인 정신병을 앓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죠.

그러나 분명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간염이 진짜이건 가짜이건, 아카기 선생은 상당히 웃기는 남자라는 것입니다.

아카기 선생을 등에 업고, [간장 선생]은 코미디로 시작합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꼭 30년대 미국 스크루볼 코미디의 주인공들처럼 괴팍하니까요. 무시무시한 역사적 태풍이 몰아닥치는데도 간염 퇴치에 전심을 다하는 우리의 주인공도 그렇지만, 그 주변에 몰려 있는 바람둥이에 주정뱅이인 불교 승려, 모르핀 중독자인 외과 의사, 전직 창녀인 간호사와 같은 사람들 역시 그렇게 평범한 사람들은 아닙니다. 이런 사람들 속에서 아카기 선생의 역할은 좁으면서도 넓습니다. 의사로서는 간염 전문가로 굳어지는 동안,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높은 양반으로서는 옆집 아들의 연애 문제부터 죽은 환자 딸의 장래까지 다 책임져야 하니까요.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거대한 사건을 배경으로 깔고 이들 괴짜 주인공들이 벌이는 자잘한 해프닝에 주목합니다. 심각한 배경을 뺀다면 이들은 시트콤 주인공들도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영화도 작은 에피소드들을 연결한 구성이고요. 모두 약간은 괴짜지만 귀여운 캐릭터들이 괴상한 해프닝을 벌이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숫총각에겐 총알이 따라온다고 믿어서 아들에게 창녀를 사주는 아줌마도 있고,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고래를 잡아주겠다며 타고가는 배의 몇 배나 되는 고래에 작살을 휘둘러대는 여자도 있습니다. 물론 간염을 퇴치하겠다면서 온갖 해프닝을 벌이는 아카기 선생의 모험담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가끔 이들의 모험담은 괴기 소설의 범주로 넘어갑니다. 아카기 선생은 너무나도 간에 열중한 나머지 멀쩡히 살아있는 환자의 상처를 보자 간을 꺼내고 싶다는 생각까지 합니다. 물론 아카기 선생이 정말로 미친 과학자는 아니어서 결국 죽은 환자의 시체를 파내 간을 꺼낸다는 보다 타협적인 아이디어로 만족하지만요.

아카기 선생은 분명 혁명적인 인물은 아닙니다. 아직도 대동아 건설에 대한 선전문이 자동적으로 입에서 튀어나오는 사람이니까요. 그는 정치적인 사람이 아니며 그런 식으로 생각할 줄도 모릅니다. 그의 유일한 소망은 간염 타파입니다. 그에게는 할머니 환자와 간염 연구 사이의 갈등이 전쟁에 대한 책임감보다 더 큽니다.

하지만 그가 벌이는 우스꽝스러운 해프닝은 보기보다는 의미가 깊습니다. 종종 그는 전선에서 군의관으로 일하고 있는 아들에 대한 꿈을 꿉니다. 피투성이 아들이 아직 살아있는 포로들의 몸에 칼을 그어대는 악몽을요. 그는 이미 일본군이 대륙에서 무시무시한 생체실험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일하는 아들이 어떻게 간염에 대한 새로운 정보들을 아버지에게 전해줄 수 있는지 짐작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의 무해하기만 한 동 키호테 식 투쟁은 일본 제국주의의 무시무시한 만행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아마 그가 그렇게 간염에 매달리는 건 그에 대한 죄책감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간 부은 일본인’의 비유를 연장한다면 아들의 악행을 통해 얻은 지식으로 전쟁을 치료하려는 필사적인 발버둥일 수도 있겠죠.

이마무라 쇼헤이의 많은 영화들이 그렇듯, [간장선생]도 정상에 선 거창한 사람들보다는 바닥에 깔린 작은 사람들의 소소하고 괴팍하지만 솔직한 행위에 주목하고 있습니다(그가 뭐라고 말했던가요? ‘나는 신체의 아랫부분과 사회 구조의 하층 부분 사람들에 관심이 있다?’) 마을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장교들이 아직도 전쟁에 대한 환상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동안 아카기 선생과 친구들은 오래 전에 그들이 만든 환상 속으로부터 깨어나, 자신만의 규칙들을 만들어 갑니다. 간 부은 허풍쟁이들이 수천만을 죽이는 동안 어촌 마을의 작은 사람들은 그들의 허풍 속에서 탈출하는 방법을 터득한 것이겠지요. 영화 속에서 공존하는 비극과 희극은 여기에서 하나가 됩니다. (01/05/29)

DJUNA

기타등등

근데, 도대체 제가 이 글을 무슨 잡지를 위해 썼던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