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샘 레이미 Sam Raimi

주연
앨리슨 로먼....크리스틴 브라운
Alison Lohman....Christine Brown
저스틴 롱....클레이 돌튼
Justin Long....Clay Dalton
로나 레이버....가누쉬 부인
Lorna Raver....Mrs. Ganush
딜렙 라오....람 자스
Dileep Rao....Rham Jas
데이빗 페이머....잭스씨
David Paymer....Mr. Jacks
아드리아나 바라자....숀 산 데나
Adriana Barraza....Shaun San Dena

가누쉬 부인과 크리스틴

[드래그 미 투 헬]은 오래간만에 우리가 보는 진짜 샘 레이미 영화입니다. [스파이더 맨] 시리즈의 블록버스터 감독 샘 레이미가 아닌 [이블 데드] 시리즈의 악동 샘 레이미가 만든 알짜배기 호러 영화죠. 그렇다고 이 영화에서 [이블 데드]의 사지가 찢겨나가는 피투성이 쾌락을 기대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이 영화의 등급은 PG-13. 이 정도면 온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가족영화 수준이죠. 그렇다면 [스파이더 맨]을 만드는 동안 샘 레이미가 조금 부드러워진 것일까? 아뇨. 그렇지 않아요. 단지 이 영화의 스토리 맥락에서 사지가 찢겨나가는 장면을 넣는 게 의미가 없을 뿐입니다. 레이미는 이 영화에서 정말 자기가 낼 수 있는 최대 속도로 달려요.

[드래그 미 투 헬]은 복고적인 영화입니다. 오프닝 크레딧 앞에 뜨는 유니버설 로고와 영화 끝에 나오는 유니버설 스튜디오 광고부터 그걸 공식적으로 드러내고 있죠. 일부러 옛날 것을 가져와 쓰고 있단 말입니다. 00년대 미국이 무대이고 특수효과에 컴퓨터 그래픽이 사용되고 있지만 영화는 악마주의와 지옥을 다룬 6,70년대 호러물들과 아주 유사합니다. 전 이 장르를 통해 처음으로 호러물을 접했기 때문에 노스탤지어가 팍팍 솟더군요.

영화가 소재로 삼고 있는 것은 라미아의 저주라는 집시 저주인데, 호러 영화의 기준으로 보더라도 악랄하기 짝이 없습니다. 악의를 품은 누군가가 대상이 되는 사람의 물건을 빼앗아 저주를 걸면 그 물건의 주인은 사흘 동안 라미아 악마에게 시달리다가 지옥으로 끌려가는 것입니다. 불공평하다고요? 하긴 아직도 사람들은 내세의 심판이 공평하다고 믿죠. 그런데 그럴 리가 있습니까. 모든 악행과 악의에는 당사자가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지금 종로구 세종로 어딘가에서 보스 행세를 하고 있는 아무개씨도 지옥에 떨어지면 항의할 겁니다. 하긴 그 따위 유전자를 갖고 그 따위 시대에 태어나 그 따위 환경 속에서 그 따위 인간이 된 것이 어찌 그만의 잘못이겠습니까. 지옥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사람들은 그 불공평함도 함께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의 주인공 크리스틴 브라운도 바로 그 불공평하기 짝이 없는 저주에 빠진 사람입니다. 은행 대출 상담원으로 일하는 크리스틴은 결코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 그렇다고 하늘에서 떨어진 천사는 아니지만 평균적으로 보더라도 착한 쪽에 속합니다. 살생을 싫어하는 채식주의자이고 주변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주어진 자기 일에 충실하죠. 단지 그러는 동안 자기보다 염치없는 주변 사람들에게 이용당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부잣집 아들인 대학교수 클레이와 사귀다 보니 자존감이 많이 떨어지기도 했고요. 어떻게든 스스로의 힘으로 이를 극복하지 않으면 늘 남들에게 이용당하고 밀릴 거라는 위기의식이 이 사람의 예쁘장한 머릿속에 깔려 있지요.

딱하게도 이 아가씨는 ‘보다 강한 크리스틴 브라운’이 되는 시기를 완전히 잘못 잡았습니다. 은행에 집을 압류 당할 위기에 빠진 가누쉬 부인이라는 집시 할머니의 연장 신청을 거절했는데, 그만 그 할머니가 크리스틴의 단추를 빼앗아 라미아의 저주를 내린 것이죠. 사흘 동안 어떻게든 해결책을 찾지 못한다면 크리스틴은 지옥으로 떨어집니다. 암담하죠? 그 뒤 크리스틴이 겪는 모험은 치료법을 찾아 헤매는 불치병 환자를 보는 것 같습니다. 불치병 환자보다 더 나쁘죠. 불치병 환자는 죽음을 안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크리스틴에게 그런 안식은 꿈도 꿀 수 없습니다. 지옥이란 영원한 각성 상태에서 고통을 겪는 곳이 아닙니까?

그런데 이 암담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가 정말 재미있습니다. 죄의식이 느껴질 정도죠. 도대체 왜? 여기서 샘 레이미의 악동 기질이 발휘되는 것이죠. 샘 레이미는 이 끔찍한 이야기를 일종의 사악한 롤러코스터처럼 만들어 놓습니다. 끔찍하고 무섭긴 합니다. 하지만 유머가 풍부하고 재미있기도 해요. 그 끔찍한 상황을 만들어내는 아이디어도 다채롭고요. (특히 주차장에서 일어나는 크리스틴과 가누쉬 부인의 격투 장면을 보시죠. 배꼽 잡습니다.) 영화를 보는 동안 관객들은 크리스틴에 공감하면서도 이 사람이 겪는 고난을 보며 속이 후련해지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됩니다. 모순되는 입장이지만 어쩔 수 없어요. 그냥 사실이니까요.

여기서 놀라운 것은 여기서 크리스틴이 단순히 공포와 공감을 위한 빈 그릇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놀라울 정도로 생생한 캐릭터예요. 캐릭터의 배경과 동기가 간결하지만 정확하게 그려져 있는데다가, 이 사람이 그 공포의 과정을 거치면서 변화해가는 과정 역시 완벽한 사실성으로 그려지고 있지요. 그 때문에 거의 전적으로 이 사람의 선택에 의해 운영되는 드라마 역시 그 입체성을 물려받게 됩니다. 물론 앨리슨 로먼이라는 뛰어난 배우의 캐스팅에도 큰 덕을 보고 있지요.

[드래그 미 투 헬]은 폭주기관차와 같은 영화입니다. 이 영화를 모두가 무서워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공포란 주관적인 것이고 또 그것만을 주려고 만들어진 영화도 아니니까요. 하지만 이 작품에 담겨 있는 맹렬한 에너지와 흥미진진한 매커니즘은 공포 영화를 좋아하지 않거나 자극에 둔감한 관객들에게도 충분히 먹힐 겁니다. (09/06/05)

DJUNA

기타등등

그래도 이 영화를 블루레이로 소장할 생각은 들지 않는군요. 중간에 나오는 특정 장면 때문에. :-> 다들 꺼리는 장면들이 있기 마련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