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이명세

주연
하지원....남순
강동원....슬픈 눈
안성기....안포교
송영창....병조판서
윤주상....봉출
도용구....종사관
심철종....마축지
배중식....배포교
황의두....황포교
장인보....장포교
유영욱....유포교
박승호....박대감
서동수....봉출패
김보연....장옷여인

남순

한 문장으로 요약 정리하면 [형사]는 [인정사정 볼 것 없다 2]입니다. 단지 시대 배경을 조선 시대로 옮기고 [로미오와 줄리엣]식 러브 스토리를 첨가했을 뿐이죠. 이 영화에서도 주인공은 터프하고 무식한 형사와 그 형사의 동료들이고 그들의 추적은 이명세식 정신없는 스타일로 그려집니다.

영화의 주인공은 다모인 남순과 남순의 파트너이고 상관인 안포교입니다. 이들은 전국을 무대로 활동 중인 위폐 조직을 추적하는 중인데, 이들이 가는 곳마다 '슬픈 눈'이라는 별명의 이름없는 자객이 일을 벌이고 다닙니다. 남순은 그 자객과 사랑에 빠지고 그 때문에 이들의 임무는 아주 귀찮게 꼬여버립니다.

전작 [인정사정 볼 것 없다]와 마찬가지로 [형사]는 줄거리 전개에 별 관심이 없는 영화입니다. 영화가 집중하는 건 찰나의 감각적 쾌락과 감정입니다. 영화는 종종 자기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 지도 잊어버립니다. 콘티나 논리와 같은 하찮은 것들은 당연히 무시되고요. 따라가다 보면 종종 이미지의 미로에 갇혀버린 듯한 느낌이 듭니다. 도대체 우리가 어디에 있고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 건지...

이런 느슨한 내러티브와 편집은 로맨스나 형사물에 모두 방해가 됩니다. 특히 로맨스는 약해요. 이명세 감독은 기자간담회 때 두 사람의 감정의 흐름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솔직히 전 그게 전혀 느껴지지 않았답니다. 사건 전개나 수사과정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각본 때문에 형사물이 손상되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그러나 이명세가 그려내는 세계는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그가 그리는 조선시대는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시대보다 훨씬 야만적이고 거칠고 자유로우며 컬러풀한 곳입니다. 조금은 조선시대처럼 보이고 조금은 20세기 후반의 한국처럼 보이기도하는 곳이죠. 여기서 그는 시치미 뚝 떼고 현대 형사물을 시도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가장 눈에 뜨이는 건 하지원이 연기한 남순의 캐릭터입니다. 남순은 장쯔이식 무협 수퍼 헤로인도 아니고 비극적인 한국식 여자주인공도 아닙니다. 한마디로 이 친구는 주먹쓰고 싶어 몸이 달은 동네 깡패입니다. 입을 한쪽으로 찌그러뜨리고 건들건들 걷는 폼이 꼭 요새 양아치예요. 여기다 안성기가 연기한 말뚝이 캐릭터인 안포교가 더해지자 아주 괴상하고 흥미로운 궁합이 만들어집니다. 그에 비하면 강동원의 슬픈 눈은 좀 재미가 없습니다. 이 캐릭터의 비중을 3분의 1로 줄이고 형사 이야기를 강화했다면 오히려 러브 스토리도 더 잘 살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지금의 러브 스토리는 좀 짜증이 납니다. 남순의 캐릭터가 여기에 대응하는 방식도 재미없고요.

이명세의 스타일 과잉은 언제나와 같습니다. 그는 뭐든지 합니다. 장터의 추격전이 미식축구처럼 묘사되고, 광대들이 재주를 부리는 동안 서커스 음악이 흐르고, 심각한 액션 장면 중간에 주인공들이 갑자기 슬로우모션을 흉내내며, 두 검객의 칼싸움이 갑자기 탱고처럼 변하기도 합니다. 가끔 이러다가 굉장히 근사한 장면들이 만들어지기도 해요. 특히 남순과 슬픈 눈이 처음 본격적인 대결을 벌이는 담길 결투신은요. 클라이맥스에 나오는 눈발의 결투신은 생각보다 덜 재미있지만요.

이명세의 스타일은 그 어느 때보다 수평적 관계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곧장 말하면 이 영화의 전체적인 흐름과 리듬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다는 거죠. [형사]에선 각각의 요란한 시퀀스가 극적 연결없이 그냥 나무토막처럼 쌓여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관객들이 길을 잃은 것처럼 느끼는 것은 스토리의 산만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전체적인 편집의 산만함 때문이기도 합니다.

[형사]는 재미있고 괴팍하며 신나는 영화입니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괴짜' 감독에게 기대할 수 있는 유쾌한 난장판이죠. 그러나 이 영화가 꼭 이렇게 균형잃은 난장판으로 끝나야 했던 걸까요?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05/08/30)

DJUNA

기타등등

굉장히 노골적인 게이 서브텍스트가 하나 들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