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데릭 저먼 Derek Jarman

주연
스티븐 워딩턴....에드워드 2세
Steven Waddington....Edward II
앤드루 티어넌....피어스 가베스턴
Andrew Tiernan....Piers Gaveston
틸다 스윈턴....이자벨라
Tilda Swinton....Isabella
나이젤 테리....모티머
Nigel Terry....Mortimer
존 린치....스펜서
John Lynch....Spencer
조디 그래버....에드워드 왕자
Jody Graber....Prince Edward
더들리 서튼....윈체스터 주교
Dudley Sutton....Bishop of Winchester
제롬 플린....켄트
Jerome Flynn....Kent

에드워드 2세와 이자벨라 왕비

에드워드 2세는 그렇게까지 중요한 영국 왕은 아닙니다. 웨일즈를 정복하고 스코틀랜드까지 통합하려고 했던 아버지 에드워드 1세나 백년전쟁을 일으킨 그의 아들 에드워드 3세와는 달리, 그는 정사에 무관심했고 전쟁에도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당시 사람이 봐도 너무나도 노골적인 동성애자였던 그는 가스코뉴 출신인 재사 피어스 가베스턴을 총애했는데, 그걸 주변 사람들이 좋아할 리 없었죠. 결국 가베스턴은 살해당했고, 그동안 남편에게 외면당했던 이자벨라 왕비는 애인인 로저 모티머와 손을 잡고 반란을 일으켜 남편을 포로로 잡았습니다. 의회는 에드워드 2세의 왕위를 박탈하고 그의 아들 에드워드 3세를 새 왕으로 추대했습니다. 에드워드 2세는 그 해 말에 경비병에게 살해당했고, 반 년 동안 섭정 자리에서 권력을 휘두르던 모티머 역시 에드워드 3세에 의해 체포되어 사형에 처해졌습니다.

이 이야기는 크리스토퍼 말로에 의해 희곡으로 만들어졌고, 말로의 작품은 1992년에 데릭 저먼에 의해 영화화되었습니다. 저먼의 영화들 중 가장 상업적 히트작에 가까웠던 작품이지요. 유명한 원작과 빠르고 흥미진진한 스토리, 중간중간에 현대의 비속어가 섞이긴 했지만 여전히 고색창연한 엘리자베스 왕조 풍의 대사들 덕택에 이 작품이 그럭저럭 정상적인 영화처럼 보였던 겁니다. 사실 가장 재미있는 작품이기도 해요. 꼭 저먼이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은 아니지만요.

물론 저먼은 정사를 이야기하거나 정통적인 문학 각색물을 만들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의 의도는 영화를 보기도 전에 예측 가능합니다. 에드워드 2세의 실제 이야기를, 그가 짜증을 잔뜩 내며 살던 대처 시대의 영국에 대입시키는 것이지요. 동성애 혐오와 박해는 두 시대를 관통하는 공통 주제입니다.

저먼은 그의 전작 [카라바조]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시대를 뒤섞었습니다. 중세의 배경이 현대식 의상이나 유행과 공존하는 것이지요. 비교적 의도가 모호했던 [카라바조]와는 달리 [에드워드 2세]의 시대 착오는 과거와 현대를 연결한다는 보다 분명한 의도를 바탕에 깔고 있습니다. 종종 현대는 옷과 스타일만 빌려주는 대신 중세 궁정 암투극에 정면 도전합니다. 반란군과 맞서 싸우는 에드워드 2세가 현대 동성애자 시위자들을 군대 대신 끌고 들어오는 장면이 대표적이지요. 에드워드 2세와 가베스턴의 관계가 훨씬 진하고 에로틱하게 표현되었다는 건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영화엔 프로페셔널한 노련함이 부족한데, 하긴 저먼의 영화들이 대부분 그렇고 또 이 덜 닦인 느낌이 이 사람 영화의 매력이기도 합니다. 저예산 소극장 연극을 촬영한 것 같은 간소하고 추상적인 [에드워드 2세]의 이미지는 이 모호한 시대적 분위기를 전달하는 데 효과적이고 시각적으로도 아름답습니다. 5막짜리 긴 희곡을 툭툭 잘라내어 듬성듬성 엮은 각색은 굉장히 거칠지만 빠르고 박진감 넘칩니다. 저먼의 뜬구름 잡는 듯한 느리고 모호한 분위기에 익숙한 관객들은 이 속도에 당황할 지경이지요.

캐스팅은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합니다. 여기에서도 틸다 스윈튼, 나이젤 테리, 존 린치와 같은 좋은 배우들이 호연을 보여줍니다. 스윈튼은 이자벨라 왕비역으로 베네치아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타기도 했지요. 하지만 정작 에드워드 2세 역의 스티븐 워딩턴은 약합니다. 주인공이 약하다보니 당연히 초점 역시 흐려지고요. 아마 대부분의 관객들은 두 연인들보다 스윈튼의 이자벨라 왕비에 더 집중할 겁니다. 얼굴도 기억하기 힘든 두 주인공들과는 달리 스윈튼은 등장할 때부터 스타의 후광을 쓰고 나오니 말이에요. 사실 영화에서 에드워드 2세와 가베스턴은 인상적인 조연 배우들이나 콜 포터의 [Ev'ry Time We Say Goodbye]를 부르는 애니 레녹스가 둘러싼 일종의 빈 공간입니다.

저먼의 시대착오적인 재치도 조금씩 낡아간다는 느낌을 줍니다. 지금보면 동성애자 시위자들과 같은 것들은 지나치게 밀어붙인 느낌이 강해요. 고전과 현대적 배경을 섞는 각색도 더 이상 굉장한 도전처럼 보이지는 않고요. [에드워드 2세]는 여전히 흥미진진한 영화이지만 '동시성'과 함께 이전의 매력을 조금씩 잃어가는 듯 합니다. 하지만 그건 그의 생전에도 예측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03/11/25)

DJUNA

기타등등

크리스토퍼 말로의 원작은 여기에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