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루이스 부뉴엘 Luis Buñuel

주연
실비아 피날....레티티아
Silvia Pinal....Leticia
호세 바비에라....레안드로
José Baviera....Leandro
아우구스토 베네디코....의사
Augusto Benedico....The doctor
루이스 베리스타인....크리스티안
Luis Beristáin....Cristián
안토니오 브라보....러셀
Antonio Bravo....Russell
세자레 델 캄포....대령
César del Campo....The colonel
로사 엘레나 두르겔....실비아
Rosa Elena Durgel....Sylvia
루시 갈라르도....루시아
Lucy Gallardo....Lucía
엔리케 가르시아 알바레스....아우구스토
Enrique García Álvarez....Augusto
클라우디오 브룩....집사
Claudio Brook....Majordomo

마지막 만찬

부뉴엘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라도 [절멸의 천사]의 기본 줄거리 정도는 한번씩 들어봤을 겁니다. 호사스럽게 차려입은 멕시코 상류 사회 사람들이 만찬에 초대되어 왔는데 알 수 없는 이유로 밖에 나갈 수 없게 된 거죠. 물리적인 무언가가 가로막고 있는 건 아니고 그냥 나가려는 의지가 갑자기 사라진 겁니다. 그건 밖에서 그들을 구출하려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죠. 그들 역시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려는 의지가 없습니다. 그 결과 저택 안에 갇힌 사람들은 서서히 붕괴되어가죠. 처음에는 유려한 화술과 세련된 에티켓을 구사하던 우리의 주인공들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점점 한 떼의 야만인들로 퇴화해 가는 겁니다.

도대체 뭣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요? 저도 모릅니다. 알 필요도 없고요. 누가 어떻게 된 거냐고 물어볼 때마다 부뉴엘은 이유 따위는 모른다고 대답하며 상대방의 약을 올려댔죠. 저보고 말하라면 신경 끄라고 하겠습니다. 늙은 초현실주의자 영감탱이에게 그런 걸 물어보면 괜히 그쪽 에고만 채워줄 뿐이에요. 이런 양반들이 만든 말도 안되는 설정은 그냥 받아들이면 됩니다. 애당초부터 그러라고 만든 거니까요. 여러분도 그렇게까지 설명에 목마른 건 아니죠?

그럼 이런 이야기의 목적은 도대체 뭔데요? 이 역시 분명하지는 않지만 그렇게까지 어려울 것도 없습니다. 제1차 목표는 뻔하거든요. 대상이 되는 부르주와들을 놀려대고 화나게 하는 것이죠. 어떻게 보면 이 영화는 예술적인 성추행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잘 차려입은 고상한 사람들을 방안에 가둔 뒤 한겹씩 옷을 벗겨내는 거예요. 물론 여러분이 막시즘에 경도된 관객이라면 이 영화의 종말론적 분위기에서 계급 혁명의 은유를 읽을 수 있을 겁니다. 당시 그의 고국이었던 스페인의 분위기를 생각해보면 보다 구체적인 정치적 비판일 수도 있고요. 그게 의도였냐고요? 그럴 수도 있겠지요.

이런 것들은 정말 그렇게까지 끈질기게 물고 늘어질 필요가 없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주절주절 늘어놓은 것들은 모두 정말 노골적이고 뻔한 것들이라 만들거나 이해하는 데 특별히 머리 운동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메시지나 동기 자체도 중요하긴 하지만 이 영화를 정말로 그럴싸한 걸작으로 만드는 건 이 말도 안되는 설정을 이용해 만들어내는 잔인무도한 코미디의 질입니다.

부뉴엘은 무덤덤한 농담과 초현실적인 장식을 뒤섞어 폐소공포증의 그랑 기뇰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는 앞에서 영화의 주인공들은 서서히 미쳐나가고 자살하고 서로를 죽이려 덤벼듭니다. 그러는 동안 아름답게 관리되었던 집은 엉뚱하게 양들과 잘린 손이 뒹구는 폐허로 변해가고요. 이런 이야기는 다루는 방식에 따라 다양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는데, 부뉴엘에게는 이 모든 게 코미디입니다. 영화가 뿜어내는 건 거의 무정부주의적이기까지한 공격적 웃음입니다.

이런 식의 매정한 웃음은 부뉴엘 작품의 기본 성격이긴 하지만 [절멸의 천사]만큼 그 성격이 분명히 드러나는 작품은 없습니다. 그건 거의 완벽한 삼일치에 의해 통제되는 닫힌 구성과 부조리한 스토리의 대조가 그만큼이나 팽팽하기 때문일 겁니다. 그 결과는 굉장하지만 결코 말로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종류는 아닙니다. 하긴 그게 재미의 원천이긴 하지만요. (03/03/27)

DJUNA

기타등등

[절멸의 천사]의 원작은 호세 베르가민의 희곡 [Los Naufragos]입니다. 이 희곡에 대한 자료를 찾으려고 꽤 애를 먹었지만 성과는 없더군요. [절멸의 천사]가 설정이 반인 영화라는 걸 생각해보면 베르가민의 희곡에 대해 더 잘 알아야 부뉴엘의 역할이 얼마나 되는지 확인할 수 있을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