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빅토르 에리세 Víctor Erice

주연
손솔레스 아란구렌....에스트레야 (8살)
Sonsoles Aranguren....Estrella, 8 years
이시아르 보야인....에스트레야 (15살)
Icíar Bollaín....Estrella, 15 years
오메로 안토누티....아구스틴 아레나스
Omero Antonutti....Agustín Arenas
롤라 카르도나....훌리아
Lola Cardona....Julia
라파엘라 아파리시오....밀라그로스
Rafaela Aparicio....Milagros
아우로레 클레멘트....라우라
Aurore Clément....Laura
마리아 카로....카실다
Maria Caro....Casilda

에스트레야와 아구스틴

빅토르 에리세는 결코 다작가라고 할 수 있는 감독이 아닙니다. 에리세의 두번째 영화 [남쪽]은 첫번째 장편 [벌집의 정령]을 만든지 거의 10년 뒤에 나왔으니까 말이에요. 그의 다음 작품인 [El Sol del membrillo]가 92년에, [텐 미니츠 트럼펫]이 2002년에 나왔으니, 에리세는 10년에 한 편 꼴로 영화를 만들어온 거예요. 전 아직도 이 남자가 그 동안 뭘 하면서 먹고 살았는지 궁금합니다.

뭘 먹고 살았건, 그가 [남쪽]을 만들 때, [벌집의 정령]의 감성에서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는 건 분명합니다. 이 작품은 아델라이다 가르시아 모랄레스의 소설을 각색한 것이지만, 척 봐도 굉장히 [벌집의 정령] 스타일이거든요. 일단 주인공은 어린 소녀지요. 부모들은 스페인 내전의 상처를 입은 지식인들이고요. 조용하고 조금은 신비스러운 분위기나 베르메르를 연상시키는 회화적 이미지 역시 전작에서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시계나 흑백 영화와 같은 이전 영화의 장치들도 반복해서 사용되고요.

무슨 이야기냐고요? 에스트레야라는 한 소녀가 그녀의 아버지에 대해 회상하는 내용입니다. 의사이면서 수맥 전문가이기도 한 에스트레야의 아버지의 과거는 반쯤 묻혀 있는데, 그 안에는 스페인 내전 당시 고향에서 일어났던 가족간의 반목이나 지금은 영화 배우가 된 정체 불명의 옛 연인에 대한 기억이 뒤섞여 있습니다. 에스트레야는 몇 년에 걸친 세월 동안 아버지의 비밀을 파헤치고 그 안에 자신의 환상을 투영하지만 끝끝내 아버지의 마음 속 깊이 들어가지는 못합니다.

[벌집의 정령]과 [남쪽] 사이에 놓여 있는 가장 큰 차이점은 주인공입니다. [벌집의 정령]의 아나처럼 에스트레야 역시 아직 세상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어린 소녀지만, 아나처럼 이해불가능한 세계에 던져진 위태로운 존재는 아닙니다. 에스트레야는 적어도 이성이라는 도구를 사용해 자신이 끌어모은 정보들을 종합하고 재구성할 수 있습니다. 덕택에 전작의 신비스럽고 마술적인 느낌은 조금 사라졌지만, 영화는 오히려 더 친근한 작품이 되었습니다.

전 에스트레야를 연기한 손솔레스 아란구렌과 이시아르 보야인도 좋았습니다. 이들은 아나 토렌트와 같은 강렬한 마술적인 매력은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게 포인트인 영화인 걸요. 이들의 외모는 공감하기 쉽고 에스트레야의 혼란스러운 성장기 역시 잘 묘사되고 있습니다.

[남쪽]은 [벌집의 정령]만큼 강렬한 영화는 아닙니다. 하지만 여전히 무척 아름다우며, 조용히 서글픈 시청각적 인상은 강렬합니다. 적어도 [벌집의 정령]과 끝도 없이 비교해서 볼만큼 전작에 종속된 영화가 아니라는 건 분명해요. (전 어쩔 수 없었다는 건 아시죠?) (03/03/21)

DJUNA

기타등등

[벌집의 정령]과 [남쪽]은 스페인과 일본에서 DVD로 나왔지만 모두 영어 자막이 없더군요. :-/ [벌집의 정령]은 한동안 크라이테리언에서 고려한다는 소문도 돌았는데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편지나 보내볼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