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알렉산더 페인 Alexander Payne

주연
리즈 위더스푼....트레이시 이니드 플릭
Reese Witherspoon....Tracy Enid Flick
매튜 브로데릭....짐 맥칼리스터
Matthew Broderick....Jim McAllister
제시카 캠벨....태미 메츨러
Jessica Campbell....Tammy Metzler
크리스 클라인....폴 메츨러
Chris Klein....Paul Metzler
프랭키 잉그라시아....리사 플래너건
Frankie Ingrassia....Lisa Flanagan
필 리브즈....월트 헨드릭스
Phil Reeves....Walt Hendricks
콜린 캠프....주디스 R. 플릭
Colleen Camp....Judith R. Flick
몰리 헤이건....다이앤 매칼리스터
Molly Hagan....Diane McAllister
딜레이니 드리스콜....린다 노보트니
Delaney Driscoll....Linda Novotny
마크 하렐릭....데이브 노보트니
Mark Harelik....Dave Novotny

[일렉션]의 무대는 오마하에 있는 평범한 공립 고등학교이며, 주인공들은 이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과 교사들입니다. 뭐야. 틴에이저 영화가 또 나왔나?

그러나 [일렉션]은 틴에이저 영화가 아닙니다. 적어도 우리가 '틴에이저 영화'라고 이름붙인 장르에 속하는 작품은 아닙니다. 이 영화는 틴에이저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일반 영화입니다.

억지로 장르 속에 끼워넣어야 한다면, [일렉션]은 정치 영화입니다. 그렇다고 특정 정치적 이슈에 목소리를 높이는 작품은 아닙니다. [일렉션]은 메시지보다는 정치적 메커니즘과 정치가라는 사람들에 주목합니다.

[일렉션]의 스토리를 구성하는 주 사건은 무대가 되는 카버 고등학교의 학생회장 선거입니다. 처음에 가장 유력한 후보로 나선 학생은 공포스러울 정도로 부지런하고 집착이 강한 우등생 트레이시 플릭입니다. 하지만 이 학교의 교사인 짐 맥칼리스터가 플릭의 일방적인 질주에 제동을 걸기 위해 다리 부상을 입은 미식 축구 선수 폴 메츨러를 선거에 내보내자 트레이시의 일방질주에는 제동이 걸립니다. 상황은 자기를 버리고 오빠 폴한테 간 여자 친구한테 화가 난 폴의 레즈비언 동생 태미가 선거에 뛰어들자 더 복잡해지고요. 영화는 이 네 주인공들의 시점을 부지런히 오가면서 진행됩니다.

[일렉션]은 고등학교 선거라는 작은 사건에 대한 이야기지만 이 사건은 쉽게 모든 선거에 대한 보편적인 이야기로 확장될 수 있습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네 사람들도 모두 입장과 성격이 분명해서 모두 그만큼이나 보편적인 틀로 기능할 수 있습니다.

트레이시는 우리가 '직업 정치가'로 분류하는 사람들의 성격을 극단적으로 부풀린 인물입니다. 권력욕이 강하고 정치적 신념을 따르는 대신 이용하는 사람이지요. 유능하지만 자칫하면 독재자가 될 수도 있는 그런 사람 말입니다.

트레이시의 반대쪽에는 폴 메츨러가 있습니다. 사람좋고 인기도 있지만 자기 생각이라고는 약에 쓰려고 찾아도 없는 사람이지요. 폴은 정치적 얼굴 마담의 이상적인 모델로, 이 영화에서도 여자 친구 리사와 맥칼리스터 선생에 의해 꼭두각시처럼 조종당합니다.

세번째 후보자인 태미는 이 모든 정치적 쇼에 대한 냉소주의를 대변합니다. 하지만 그 냉소주의 자체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냉소적이지요. 태미는 이 영화에서 놀림받지 않는 거의 유일한 인물인데, 그건 영화가 사춘기와 첫사랑의 고통을 겪는 이 소녀에게 동정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만, 그보다는 태미의 냉소주의가 영화의 입장과 잘 맞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고 복잡한 인물은 짐 맥칼리스터입니다. 그는 훌륭한 교사이며 이상주의자이지만 점차 그 이상주의를 자신의 공포심과 이기주의를 정당화하기 위해 이용합니다. 이런 전환은 무척 복잡해서 심지어 자신도 자기 의도를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지 못합니다.

맥칼리스터는 처음부터 트레이시를 경계합니다. 표면상의 이유는 트레이시의 독재자 기질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밑에는 약간 사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트레이시는 몇 개월 전에 교사-학생 간의 섹스 스캔들로 그의 친구를 파멸시킨 경력이 있으니까요. 그런데 그게 전부일까요? 조금 안을 들여다보면 더 복잡한 사정이 드러납니다. 그는 트레이시가 자신을 유혹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는 트레이시한테 끌리면서도 그녀가 자신을 파멸시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그가 트레이시를 몰아내기 위해 취하는 모든 행동은 사실 자기 방어적인 술수입니다. 트레이시는 날아가는 총알과 같아서 앞을 막는 사람들을 그냥 두지 않습니다. 끝없이 반복되는 안정적인 교사 생활을 사랑하는 맥칼리스터와는 극을 달리는 사람이죠. 그리고 이 두 성격의 격전장에서 당하는 사람들은 주로 후자 쪽입니다.

다시 말해 [일렉션]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건들은 이상주의를 뒤집어 쓴 사적인 감정이 얼마나 일을 망칠 수 있는가에 대한 모범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의 진짜 스토리는 이상주의자를 자처하는 맥칼리스터가 '도덕적으로' 붕괴되는 과정입니다. 그의 간결한 도덕성은 온갖 잡다한 것들이 끼어들면서 서서히 더렵혀지고 판단력은 흐려집니다. 그는 심지어 육체적으로 잠시 한 쪽 눈이 멀기까지 합니다. 벌이 한쪽 눈을 쏘거든요.

그러나 이런 식으로만 영화를 볼 수는 없습니다. [일렉션]의 감독 알렉산더 페인은 구체적인 모럴을 전달하기 위해 이 영화를 만든 것이 아니거든요. 그가 제시하는 모럴이 있다면, 정치적 이상주의는 순수한 이상주의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정치가들은 결코 그런 이상주의를 받아들일 수 있을만큼 정갈할 수 없거든요. 그들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인간이니까요.

아마 페인은 민주주의라는 체제 안에서 선거가 얼마나 무의미한 쇼인지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태미는 선거 연설에서 외칩니다. "You think it's going to change anything around here, make one single person happier or smarter or nicer? The only person it matters to is the one who gets elected. The same pathetic charade happens every year, and everyone makes the same pathetic promises just so they can put it on their transcripts to get into college." 태미의 입장은 정치적 허무주의가 아닙니다. 태미는 그저 현실을 똑바로 직시하고 있을 뿐입니다. 사실 제대로 된 정치적 신념도 없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그 중 하나를 뽑는다고 해서 정말 세상이 특별히 나아지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나 또 생각해보면, 결국 세상은 트레이시와 같은 사람들에 의해 운영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트레이시의 자기 변호는 완벽하게 논리가 서 있습니다. 세상은 트레이시처럼 부지런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들이 없으면 붕괴됩니다. 우린 그들을 놀려대고 증오하며 가끔 겁도 먹지만 그들은 뜨내기 이상주의자들보다 훨씬 유익한 사람들이죠.

아무대나 막 총을 쏘아대는 페인의 방식은 양비론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오히려 모두에게 공평해 보입니다. 아마 영화가 마니교도식 선악 대결에서 벗어나 흥미로운 캐릭터 연구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겠지만요.

영화는 캐릭터와 사건의 입체성을 구축하기 위해 나레이션을 아주 영리하게 이용하고 있습니다. 태미를 제외하면 이들은 모두 자신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지도 않고 솔직하지도 않습니다. 이러한 트릭은 트레이시라는 무시무시한 인물에 인간적인 면을 부여하는 데도 쓰입니다만, 가장 완벽하게 자기 역할을 하는 부분은 짐 맥칼리스터라는 남자를 묘사할 때입니다. 그는 정말 재미있는 인물입니다. 특히 점입가경으로 치닫는 자기 합리화는 기가 막히게 우스꽝스러워요. 이제 거의 중년이 다 되어간 매튜 브로데릭이 이 캐릭터의 미묘함을 완벽하게 살려 냈기 때문이겠지만요.

트레이시를 연기한 리즈 위더스푼도 만만치 않습니다. 이번 아카데미에 메릴 스트립 대신 위더스푼을 여우주연상에 올렸더라면 후보자에 대한 말이 많이 줄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위더스푼은 늘 자신의 연기폭을 넓히려고 노력해 왔지만, 그 중 [일렉션]의 트레이시만큼 완벽하게 맞는 인물은 없었습니다. 테크닉도 완벽했고요. 트레이시는 그렇게 복잡한 인물이 아니지만 그 때문에 오히려 연기하기가 더 어려운 인물일 수도 있습니다. 자기 생각과 기분을 그대로 드러내는 연기는 오히려 아주 인위적으로 떨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위더스푼의 연기는 그런 면이 전혀 없습니다. 표정 하나하나마다 자연스럽고 모든 게 굉장히 재미있어요.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을 일정 수준으로 올려놓은 진짜 공신은 페인의 위트 넘치는 각색과 연출입니다. 이 영화의 냉소주의는 거의 완벽하게 통제되어 있고 유머는 정곡을 찌릅니다. 결말이 조금 다듬어졌다면 더 좋았을지도 모르지만, 두번째 보니 그것도 그리 길게 느껴지지 않더군요. 다소 장황한 에필로그는 아마 원래 결말을 버리고 새 것을 취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부작용 같습니다. 그래도 상관 없어요. 다소 감상적인 첫번째 결말보다 두번째 각본의 냉정한 결말이 더 재미있으니까요. (00/05/04)

DJUNA

기타등등

[일렉션]의 배급사는 파라마운트사지만, 이 영화를 제작한 회사는 MTV입니다. 흠... MTV의 모든 생산품들이 무뇌아들의 오락이라는 단순한 편견을 반박하고 싶다면 이 작품을 들이밀면 되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