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더글러스 맥그러드 Douglas McGrath

주연
기네스 팰트로....엠마 우드하우스
Gwyneth Paltrow....Emma Woodhouse
제레미 노덤....나이틀리 씨
Jeremy Northam....Mr. Knightley
토니 콜레트....해리엇 스미스
Toni Collette....Harriet Smith
폴리 워커....제인 패어팩스
Polly Walker....Jane Fairfax
유안 맥그리거....프랭크 처칠
Ewan McGregor....Frank Churchill
줄리엣 스티븐슨....엘튼 부인
Juliet Stevenson....Mrs. Elton
그레타 스카키....웨스턴 부인
Greta Scacchi....Mrs. Weston
앨런 커밍....엘튼 목사
Alan Cumming.... Rev. Elton
데니스 호손....우드하우스 씨
Denys Hawthorne....Mr. Woodhouse
소피 톰슨....베이츠 양
Sophie Thompson....Miss Bates
필리다 로....베이츠 부인
Phyllida Law....Mrs. Bates

1.

제인 오스틴은 "나만 빼면 누구도 좋아하지 않을 주인공을 만들겠다"고 하면서 엠마를 만들었답니다. 오스틴이 독자들을 지나치게 과대 평가했거나 과소 평가했거나 둘 중 하나겠지요. 엠마는 오스틴이 창조한 주인공들 중 가장 사랑받는 캐릭터니까요.

물론 엠마는 속물이고 거만하고 생각이 모자라죠. 하지만 엘리자베스 베넷처럼 완벽한 (?) 캐릭터보다는 엠마같이 약간 모자란 캐릭터에 더 정이 가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엠마는 단점만으로 똘똘 뭉친 사람은 아닙니다. 모든 행동은 선의로 가득차 있고, 생각이 모자랄지는 몰라도 어리석지는 않으며, 그 사람의 뻣뻣한 계급 의식도 구제 불능은 아닙니다. 엠마는 성숙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며 성숙 이전에도 그런 싹을 안에 품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의 대책없는 행동들은 단순히 귀여울 뿐만 아니라 매우 긍정적이기까지 하죠.

2.

더그 맥그러드의 각색은 가볍고 우아하며 날씬합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눈에 뜨이는 부분은 비엔나 왈츠처럼 살짝 잡아당겼다 놓아주는 듯한 리듬감입니다.

그리고 이 리듬감은 편집이나 촬영에 의해서가 아니라 각본에 의해 조성되지요. 대충 분위기를 설명하기 위해 거친 예를 하나 골라본다면 "나는 다시는 그 여자랑 이야기하지 않을거야!"라고 말하던 주인공이 곧바로 다음 컷에서 그 여자랑 인사를 하며 예절바른 대화를 나누는 장면 같은 걸 들 수 있겠지요. 등장인물들의 감정과 의지는 예절과 사회 규약, 체면에 의해 방해받고 그들은 이 사이에서 우아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속보이는 방식으로 줄타기를 해야하는데, 이 왈츠와 같은 리듬감은 노골적으로 떠들지 않고도 그들의 미묘한 게임을 명쾌하게 설명해주지요.

맥그러드가 다시 쓴 찰랑거리는 대사들 역시 오스틴이 그어 놓은 적정선을 넘지 않으면서도 이 영화를 설득력있는 코미디로 만드는 데에 성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배우들의 역할을 좀 더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3.

엠마를 연기하는 것은 초기 모짜르트의 소나타를 연주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름답고 단순명료한 선율들이 간단한 구조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숨어있는 의미도 없고 기술적으로 특별히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작품일 수록 연주하거나 연기하기가 어려운 법이죠. 모든 것들이 너무나도 분명하게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모호함 속으로 도피할 여지가 전혀 없는 겁니다.

기네스 팰트로는 엠마를 간결하고 우아하게 연기해냈고 이 배우가 연기한 엠마는 분명히 설득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엠마]는 종종 팰트로의 '스타 도약용' 영화로 알려지곤 하는데, 그 사람이 만족스럽게 해낸 것은 사실이니 꼭 냉소적이 될 필요는 없습니다.

제레미 노덤은 팰트로와 좋은 팀이고 좀 젊긴 하지만 나이틀리라는 캐릭터에 딱 맞습니다. 이제 [네트]의 악역처럼 불분명한 역은 더이상 안 해도 되겠더군요. 소피 톰슨과 필리다 로 모녀는 빛나는 톰슨 가족의 파워를 과시하며 영화에 톡 쏘는 재미를 추가합니다. 토니 콜레트의 해리엇은 원작보다 훨씬 나이가 들었지만 역이 대충 어울리기 때문에 곧 신경 쓰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언제나 훌륭한 줄리엣 스티븐슨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칭찬해야 할 부분은 전체적인 앙상블입니다. [엠마]는 막강한 배우들이 우글거리는 영화지만 이 배우들은 자신들의 재능을 앙상블 안에 조화시키는 방식을 알고 있습니다. 그 결과 영화는 잘 연주된 실내악처럼 절제된 흐름을 유지합니다. 이 영화의 '스타'인 팰트로 역시 거만하게 튀는 대신 자신을 살짝 수그리는 방법을 알고 있는데, 이 부분은 정말 칭찬해주고 싶습니다.

반대로 프랭크 처칠 역을 연기한 유안 맥그리거는 등장 때부터 관객들의 엉뚱한 주목을 끌어 그 앙상블을 깨버립니다. 그 사람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트레인스포팅] 이전에 개봉되었더라면 더 영화가 부드럽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을 것 같군요. 폴리 워커도 오스틴 시대의 숙녀를 하기엔 20세기 분위기가 너무 강합니다. 적어도 이 배우에겐 [4월의 유혹]이 [엠마]보다 더 어울리는 영화같습니다.

4.

레이첼 포트먼의 음악은 귀엽고 잘 어울리지만 저희는 사실 포트먼의 다른 작품들이 더 좋습니다.

비주얼적인 측면에서 보았을 때, [엠마]는 매우 수줍은 영화입니다. 하지만 '수줍지 않은' 배우들이 그걸 커버하니 신경 쓸 필요는 없습니다.

번역된 자막으로 오스틴의 원작에 바탕을 둔 위트 넘치는 대사들을 즐기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워낙 말이 많은 영화니 어쩔 수 없다고 쳐도 그 뉘앙스 정도는 비슷하게 따라갈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요샌 자막 보기가 점점 짜증이 납니다.

[엠마]는 깊이 있는 영화는 아니지만 무게잡지 않는 가벼운 코미디로 적절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일련의 오스틴 영화들 중 가장 소화하기 쉬운 영화입니다.

흠... 오스틴 시즌 영화의 영화들은 [설득]만 빼면 이제 다 들어온 셈이네요. 그런데 다들 [설득]이 가장 뛰어난 영화라고 하잖아요? (97/08/26)

D&P

기타등등

[엠마] 비디오는 조금 잘렸더군요. 특히 후반부에서 엠마가 해리엇을 위로하는 장면이 없어져서 엠마가 아주 매정한 사람이 되어 버렸어요.

[설득]은 여전히 개봉을 못하고 있습니다. 몇몇 영화제에서 상영되기는 했지만 극장 잡기가 힘든 모양이에요. 이번 가을 개봉이라는 소리를 들은 적 있는데, 과연 가능할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