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피터 하이암즈 Peter Hyams

주연
아놀드 슈왈제네거....제리코 케인
Arnold Schwarzenegger....Jericho Cane
가브리엘 번....남자
Gabriel Byrne....The Man
케빈 폴락....시카고
Kevin Pollak....Chicago
로빈 튜니....크리스틴 요크
Robin Tunney....Christine York
CCH 파운더....마지 프랜시스 형사
CCH Pounder....Det. Margie Francis
로드 스타이거....코박 신부
Rod Steiger....Father Kovak
데릭 오코너....토마스 아퀴나스
Derrick O'Connor....Thomas Aquinas
미리암 마골리스....메이블
Miriam Margolyes....Mabel
우도 키에르....사제장
Udo Kier....Head Priest
빅터 바나도...알비노
Victor Varnado....Albino

1.

제리코 케인은 아내와 딸을 잃고 반쯤 폐인이 된 경호전문가입니다. 그는 어느 날 어떤 은행가를 경호하다가 그를 암살하려는 저격자를 저지하는데, 그 저격자는 카톨릭 사제였고 은행가는 인간의 몸을 빌린 악마였죠. 악마가 1999년 12월 31일 자정에 1979년에 태어난 크리스틴 요크라는 여성을 겁탈하면 지옥문이 열리고 세상의 종말이 온다나요. 당연히 제리코는 크리스틴을 데리고 달아나지만 악마와 그의 추종자들이 뒤를 쫓습니다...

2.

피터 하이암즈의 [엔드 오브 데이즈]에는 두 가지 영화가 섞여 있습니다. [오멘]류의 오컬트 영화와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나오는 치고 박는 액션물이지요. 보다 정확히 말하면, 하이암즈는 오컬트 영화를 슈왈제네거 스타일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게 제대로 된 시도일까요?

결과를 보면 금방 드러납니다. 애당초부터 제대로 된 시도가 아니었어요. 처음부터 어림없었지요.

왜 그런지 설명해보죠. 슈왈제네거 식 액션 영화는 물리적인 게임입니다. 다시 말해 이런 영화의 악당들은 주인공인 슈왈제네거가 두들겨 댈 수 있을 단단한 물리적 존재여야 합니다. 그래야 정직하게 치고 받으며 이야기를 끌어갈 수 있죠.

하지만 [오멘]이나 [엑소시스트] 류의 오컬트 물은, 아무리 인류의 종말과 같은 물리적 파국을 가져온다고 하더라도, 결국 영적인 게임입니다. 폭력은 주인공의 무기가 될 수 없습니다. 그를 지탱해야 하는 것은 종교적 믿음이 될 수도 있고, 교리문답이 될 수도 있지만, 물리적 폭력은 아닙니다. 악마는 물리적인 폭력으로 극복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또는 아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놀드 슈왈제네거는 고뇌하는 역에는 결코 적당한 배우가 아닙니다. 관객들도 그가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묵상하기를 바라지 않고요. 그는 커다란 총으로 뭔가 쏘아대기 위한 존재입니다.

그 결과 영화는 아주 이상해졌습니다. 이 영화의 악마는 어떻게든 슈왈제네거에게 어떻게든 폭력을 쓸 기회를 주려고 작정한 것 같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지하철 장면이죠. 아무리 악마가 남의 몸을 빌었다고 해도 그처럼 폭력에 쉽게 넘어질 수 있을까요?

그러나 슈왈제네거의 액션으로 카타르시스를 느끼려고 해도 뭔가 모자랍니다. 물리적 실체가 아닌 불멸자인 악마를 큰 총으로 해치울 수 없는 것이니까요. 슈왈제네거는 여기서 결국 구식 해결책을 택하는데, 겨우 이런 걸로 드라마를 해결할 생각이었다면 왜 슈왈제네거를 끌어들였는지 알 수 없죠.

3.

종말론을 다룬 영화는 그럴싸한 설명으로 관객들을 사전 제압할 줄 아는 여유를 보여야 합니다. 그러나 [엔드 오브 데이즈]에는 그런 게 없습니다. 모든 게 너무 바보 같기 때문이지요.

우선 이런 으름장에 필수적인 사실성은 아놀드 슈왈제네거의 캐스팅으로 시작부터 망가집니다. 슈왈제네거가 밥값을 할 액션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또 망가지고요.

남은 부분도 시원치 않습니다. 액션 영화 뿐만 아니라 모든 드라마에 치명적인 '주인공 잘 봐주기'가 철철 넘치니까요. 게다가 논리적으로도 이상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 각본에 따르면 악마는 제리코를 크리스틴에게 친절하게 이끈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처음은 보호를 위해서라고 우기더라도 (그것도 잘 봐주어서 그렇다는 말입니다) 나머지는 아무래도 어설프죠. 제리코가 마지막 날에 악마 숭배자들의 아지트를 알아내는 방식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안이하고요.

게다가 기둥이 되어야 할 교리와 예언도 치졸합니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이 영화는 666의 숫자에 대해 가장 안이한 해석을 내리고 있는 영화로 길이 남을 겁니다.

4.

슈왈제네거는 미스 캐스팅입니다. 단순한 미스 캐스팅일 뿐만 아니라 영화의 신빙성까지 떨어뜨린 일등 공신이죠. 그의 액션은 이제 시원치 않고 그의 '내면 연기'는 실소감입니다.

반대로 가브리엘 번을 보는 것은 꽤 즐겁습니다. 그의 악마는 지구상에서의 짧은 휴가를 유쾌하게 즐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긴 번에게 이 영화 자체가 휴가였을 수도 있겠지요. 그가 영화의 상황 자체를 가볍게 다루고 있기 때문에 시시한 각본과 대사에도 불구하고 이 배우는 그렇게 시시해 보이지 않습니다.

로빈 튜니는 [크래프트] 때가 더 좋았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특별히 기억에 남을만한 모습은 보여주지 못했어요.

5.

몇몇 특수 효과들은 좋습니다. 특히 전 지하철에서 걸인이 부서지는 장면을 좋아해요.

하지만 하이암즈의 연출은 그냥 그렇습니다. 소재의 거창함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러닝타임 모두를 강한 포르테로 처리하고 있어서 촌스럽게 들뜬 분위기가 지나칩니다. 그렇다고 그 허세에 어울릴만한 알맹이가 있는 것도 또 아니고요. 전작인 [렐릭]이 훨씬 괜찮은 영화였어요. (99/12/05)

DJUNA

기타등등

밀레니엄 볼을 한 달 쯤 먼저 본 게 얻은 거라면 얻은 거랄까요? 뉴욕시는 이 영화로 어느 정도의 홍보 효과를 기대하고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