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왕가위 Kar Wai Wong
스티븐 소더버그 Steven Soderbergh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Michelangelo Antonioni

주연
공리....미스 화
Li Gong....Miss Hua
장첸....장
Chen Chang....Zhang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닉 펜로즈
Robert Downey Jr.....Nick Penrose
앨런 아킨....펄 박사
Alan Arkin....Dr. Pearl
크리스토퍼 부크홀츠....크리스토퍼
Christopher Buchholz....Christopher
레지나 넴니....클로에
Regina Nemni....Cloe
루이사 라니에리....린다
Luisa Ranieri....Linda

기본정보
[에로스]는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라는 거장에게 존경을 표시하기 위한 작은 행사입니다. 일단 안토니오니는 2001년에 그의 단편 [위험한 관계 The Dangerous Thread of Things]를 먼저 찍었어요. 그 뒤에 제작자는 페드로 알모도바르와 왕가위에게 삼부작을 위한 다른 두 편을 의뢰했는데, 나중에 알모도바르가 빠지고 스티븐 소더버그가 그 자리를 채웠죠. 그들의 영화인 [The Hand]와 [Equilibrium]은 2년 뒤에 완성되었고, 세 편의 단편들은 카에타노 벨로소가 [Michelangelo Antonioni]라는 제목의 노래를 부르는 동안 로렌조 마토티가 그린 에로틱한 그림들이 흘러가는 브리지와 함께 편집되어 하나의 영화로 만들어졌습니다. 보통 국제판은 왕가위, 소더버그, 안토니오니의 순서인데, 이탈리아에서는 역순이라고 하더군요. 전 이탈리아 쪽이 더 이치에 맞다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옴니버스 영화들이 그렇듯 위의 별점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이런 식의 영화에서 단편들의 질이 고른 경우는 거의 없잖아요.

[그녀의 손길 The Hand]

"The Hand"

[그녀의 손길]은 수줍은 재봉사와 고급 매춘부의 이야기입니다. 때는 1960년대의 홍콩(분위기와 시각적 이미지를 묘사하는 건 시간낭비입니다. 여러분은 이미 알고 있을테니까요). 그들이 처음 만났을 때, 남자는 풋내기 보조였고 여자는 경력의 절정에 도달했을 때였죠. 여자는 세상물정 모르는 숫총각인 남자의 바지를 벗기고 손으로 그에게 첫 경험을 안겨줍니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남자는 서서히 노련한 장인으로 성장해가고 여자는 미모와 건강을 잃은 채 바닥으로 떨어져 갑니다. 그러나 그러는 동안에도 여자에 대한 남자의 집착은 결코 꺼지지 않죠.

[그녀의 손길 (한국 제목은 원제의 중의성을 조금 깎아먹는 구석이 있습니다)]은 고전적이고 공식적이지만 그만큼 강렬하고 밀도높은 로맨스입니다. 단지 이 단편은 섹스와 감정적 교류보다는 숨막힐 것 같은 성적 억압과 충족되지 않은 갈망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많은 농밀한 러브 스토리들이 그런 것처럼 무척이나 변태스럽습니다.

제목에서 밝힌 것처럼,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의 성적 교류는 처음부터 끝까지 두 사람의 손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남자에게 첫 경험을 안겨다주는 여자의 손, 여자의 몸 치수를 재는 남자의 손... 아마 그 절정은 남자가 여자의 드레스에 손을 집어넣고 그 쾌락을 상상하는 부분일 겁니다. 제가 최근 몇 년 동안 본 섹스신들 중 가장 에로틱한 장면이었어요.

이 영화의 에로티시즘은 공리와 장첸의 콤비 플레이에 의해 완성됩니다. 최근 10여 년 동안 공리가 이처럼 아름답게 보였던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전성기의 그레타 가르보가 그랬던 것처럼 이 영화의 공리는 이상적인 비극적 여자 주인공입니다. 처절한 몰락의 비극 속에서도 타고난 아름다움과 위엄을 과시하는 프리 마돈나인 거죠. 재봉사의 역은 아마 10년 전 같았다면 양조위에게 돌아갔을 법한데(가끔 그의 표정 위에 양조위의 옛 얼굴이 슬쩍슬쩍 오버랩됩니다), 장첸 역시 기대 이상으로 잘 했습니다. 그의 미니멀한 연기는 분명 왕가위의 통제하에서 빚어진 것이겠지만 그렇다고 이 젊은 배우의 공로를 무시할 수는 없겠죠.

[그녀의 손길]은 왕가위의 영화들 중 가장 완벽한 자체적 완결성에 도달한 작품입니다. 아마 짧은 길이 때문인지도 모르죠. 이 영화엔 왕가위 특유의 자아도취적인 독백이나 장식적인 테크닉의 과시, 사방팔방으로 튀는 편집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테크닉은 영화 속에 완벽하게 녹아 있고 대사는 압축적입니다. 왕가위의 팬들은 대부분 그의 덜컹거리는 예술적 과시에 끌리는 편이니 이 영화의 단아한 완벽함이 오히려 미진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지 모르겠군요.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라고 해도 왕가위와 크리스토퍼 도일이 만들어낸 이 진한 에로티시즘과 로맨스의 함정에서 쉽게 빠져나올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꿈 속의 여인 Equilibrium]

"Equilibrium"

컴컴하고 서글픈 애가인 [그녀의 손길]과는 달리, 스티븐 소더버그의 [꿈 속의 여인]은 경쾌하고 위트 넘치는 농담입니다. 안토니오니보다는 헨리 슬래서나 에이브럼 데이비드슨 같은 미국의 펄프 단편작가들의 소품들을 연상시키는 작품이죠.

영화의 시대배경은 1955년. 닉 펜로즈라는 광고업자가 펄 박사라는 정신분석의에게 상담을 받고 있습니다. 그의 문제는 정체불명의 여자에 대한 똑같은 꿈을 매일 꾼다는 것이죠. 하지만 그가 긴 의자에 누워 심각하게 꿈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안에도 펄 박사는 쌍안경으로 창밖을 엿보고 종이 비행기를 날리는 데 더 신경을 쓰는 것 같습니다.

[꿈 속의 연인]에서 에로티시즘은 당당한 주제라기보다는 맥거핀이고 기만의 도구입니다. 소더버그는 성적인 꿈을 장난스럽게 분석하는 동안 거기서 에로틱한 의미들을 몽땅 지워버립니다. 이 영화는 정신분석에 푹 절어있었던 50년대 영화에 대한 애정어린 야유로 보는 게 가장 적절할 것 같습니다.

진한 컬러의 촉감이 스크린을 지배하는 [그녀의 손길]과는 반대로 소더버그는 간결하고 건조한 흑백 화면으로 영화 대부분을 끌어가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이야기가 정신분석의의 폐쇄된 사무실 안에서 진행되는 이 영화는 바람에 날릴 것처럼 가볍고 유쾌합니다. 앨런 아킨과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노련하기 짝이 없는 코미디 연기는 정말로 즐겁고요.

[위험한 관계 The Dangerous Thread of Things]

"The Dangerous Thread of Things"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위험한 관계]는 1960년대에 그가 만들었던 고전들과 주제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열정이 사라져버리고 권태만 남은 부르주아 부부 말이에요. 신경이 날카로와진 둘은 영화 전반 내내 다툽니다. 그러다 남자는 이웃에 사는 여자와 섹스를 한 뒤 파리로 가버리죠. 남자가 떠난 동안 아내는 바닷가에 옷을 벗어던지고 춤을 추다 그 여자와 마주칩니다.

글쎄요. 이 영화는 이 옴니버스의 단편들 중 가장 가혹한 비평을 받은 작품인데, 이유가 있습니다. 어딘지 모르게 이 영화는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영화라기보다는 안토니오니의 영화의 패러디처럼 보이거든요. 안토니오니 영화의 고전적인 주제와 그의 모더니스트 스타일이 모두 남아 있긴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김이 빠져 있고 뻣뻣하며 우스꽝스럽게 뒤틀려 있습니다. 시카고 트리뷴의 평론가 마이클 윌밍턴은 영어로 번역된 어색한 대사와 그만큼 어색한 후시녹음의 문제가 크다고 했지만, 그걸 고려한다고 해도 이 영화는 여전히 어색해 보입니다.

이 영화의 가장 '흉물스러운' 부분은 그 솔직함에 있습니다. 전성기의 안토니오니 영화들에선 에로티시즘이 심각하고 묵직한 상징주의와 모던한 스타일에 의해 '정당화'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것들이 낙엽처럼 다 떨어져 나간 이 단편은 단 한 가지만 보여줍니다. 20년 전에 발작을 일으킨 뒤로 말도 제대로 못하고 몸도 절반이나 마비되었으면서 여전히 젊은 여자들의 누드를 보고 싶어하는 음탕한 영감탱이말이에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고령과 치명적인 육체적 장애 속에서도 꾸준히 영화를 만들고 있는 이 노장에게 존경을 표시하고 싶을 겁니다. 이 삼부작 옴니버스 영화가 만들어진 것도 그 때문이고요. 그러나 그러고 싶은 사람들에게도 이 작품을 변명없이 온전하게 칭찬하는 건 꽤 힘든 일일 거예요.

조금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어제 시사회 때 황당한 사고가 하나 발생했습니다. 안토니오니 파트의 마지막 릴이 뒤집혀 상영되었던 거예요. 물구나무 선 화면이 두 여자가 만나는 릴의 마지막 장면에서부터 거꾸로 흘러갔지요. 슬프게도 그 의도하지 않은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었습니다. (05/06/24)

DJUNA

기타등등

[위험한 관계]에서 미국인 남편으로 나오는 크리스토퍼 부크홀츠는 호르스트 부크홀츠의 아들입니다. [꿈 속의 여인]의 촬영감독인 Peter Andrews는 물론 스티븐 소더버그 자신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