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ckers!"

---바트 심슨, [심슨 가족]

얼마 전 모 영화 잡지에서 폭스의 애니메이션 시리즈 [심슨 가족]에 대한 글을 읽은 적 있는데, 몇몇 문장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대충 다음과 같은 글이었어요.

...이때 아들 바트 심슨이 해결책이 있다며 '제리 스프링어 쇼’로 직행한다. 심슨은 쇼장에서 외계인에게 주먹다짐을 하며 난리법석을 떨고, 으레 그렇듯 쇼는 난투극으로 끝난다. TV 프로가 TV 프로를 유머의 소재로 삼는 재기도 놀랍지만, 그 유머의 와중에 [제리 스프링어 쇼]에 빠진 멍청한 미국인들을 슬쩍 꼬집고 지나간다...

...영원한 2인자로 남으면서 1인자였으면 힘들었을 비판적이고 진보적인 내용을 수시로 전하는 장수 프로그램이 된 것이다...

제 생각을 말해볼까요? [심슨 가족]이 이런 프로그램이라면 정말 재미없는 작품일 겁니다!

유머는 물론 공격무기이기도 합니다. 그냥 공격 무기일 뿐만 아니라 아주 잔인한 공격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스위프트의 [정중한 제의]를 보세요.) [심슨 가족]이라고 예외는 아닙니다. [심슨 가족]의 매력은 예의없이 다짜고짜 물고 늘어지는 노골적이고 공격적인 유머에 있지요.

그러나 [심슨 가족]은 "[제리 스프링어 쇼] 같은 저질 토크쇼에만 정신이 팔린 이 멍청한 미국인들아!"라고 말하는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간단한 증거. 그 에피소드에서 제리 스프링어를 연기한 성우가 누구일까요? 바로 제리 스프링어 자신입니다.

프랑스의 모럴리스트 앙드레 모르와가 유머에 대해 상당히 좋은 말을 했는데, 한 번 인용해보는 것도 좋을 듯 하군요. 대충 이렇게 시작됩니다. "유머 감각이 있다는 것은 분별 있고 체념 섞인 쾌활함을 가지고 삶의 여러 어려움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을 비웃는 것이다 --그것도 울고 싶은 순간에."

[심슨 가족]이 제리 스프링어 쇼를 가지고 한 것은 '저질 매스미디어에 깔린 미국 시청자들을 비웃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웃을 가치도 없지요. [심슨 가족]의 유머가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은 구체적 타자인 특정한 계층, 국민, 집단이 아니라 우리 인간 자신입니다.

[심슨 가족]이 어필할 수 있는 것은 그 이야기가 보편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훌륭한 코미디들이 다 그렇듯이, [심슨 가족]은 우리 자신의 천박함, 약함을 돌아보고 그것을 현실로 인정하며 웃습니다. 그토록 어리석고 추한 그들이 10년 넘게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이유를 한 번이라도 생각해 봤는지요? 그들이 비웃음만의 대상이라면 과연 가능한 일일까요?

미국만 그런 것도 아닙니다. 왜 우리는 [순풍 산부인과]에서 미달이 아빠의 유치한 짓을 보고 웃을까요? 그가 그냥 유치한 사람일 뿐이라면 그런 에피소드들은 짜증만 유발할 뿐입니다. 우리는 그의 유치한 짓 속에서 우리 자신을 발견할 때 진짜로 웃습니다. 그가 그냥 유치한 타자일 뿐이라면 우린 그를 경멸하고 무시할 겁니다.

유머는 언제나 양날을 가지고 있습니다. 진정한 유머리스트가 되기 어려운 이유도 그 때문이죠. 진짜 유머리스트는 자신도 찔릴 각오를 하고 있어야 하고 또 찔러야 합니다. 그들은 언제나 웃음의 대상 바로 뒤에 서 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맘에 드는 메시지만 잽싸게 입양하려는 비평가들은 그들 자신의 모습이 눈에 보이지 않는 모양이에요. 그렇다면 그들은 늘 이류 관객일 수밖에 없지요. (99/06/30)

DJU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