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드라이버]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개봉되었을 때, 아는 사람 몇몇과 함께 극장에 그 영화를 보러 갔었습니다. 영화가 다 끝나고 극장에서 나왔을 때, 우리랑 같이 갔던 한 호주 사람이 이렇게 묻더군요. "왜들 그렇게 사람들이 웃었지요? 그 영화는 아주 무겁고 진지한 작품이었는데?"

정말 당시 관객들은 무시무시할 정도로 웃었습니다. 로버트 드 니로가 조금이라도 비틀린 행동을 하면 관객들은 배꼽이 떨어져라 웃어댔죠. 모르는 사람이 당시 관객들만 봤다면 보고 있는 영화가 코미디인 줄 알았을 거예요.

도대체 왜들 그렇게 웃어댔던 걸까요?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이유는 문화적 갭입니다. 언젠가 제임스 카메론은 [타이타닉]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 적 있어요. "그들이 웃는 때는 모두 달랐지만 눈물을 흘리는 시점은 언제나 같았다." 유머는 언제나 문화적 환경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다른 문화권으로 넘어가면 종종 손상되고 힘을 잃습니다. 반대로 멀쩡한 드라마가 다른 문화권에 들어가서 엉뚱한 웃음을 유발하는 경우도 있고요.

당시 관객의 [택시 드라이버]에 대한 반응도 그 때문이었을까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택시 드라이버]의 세계를 이해 못할 정도로 우리가 70년대 미국 사회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지는 않지요. 어떻게 보면 그 세계는 일제 시대의 우리나라보다 더 친숙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 뭔가 다른 것이 더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일까요?

여기서 웃음의 부정적인 요소를 파고들어야 할 것 같군요. 웃음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그것은 행복감의 표현일 수도 있고 지적인 희열 때문일 수도 있으며 간지럼에 대한 반사적 반응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 중 사회적으로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은 단죄의 측면입니다.

웃음에는 늘 공격적인 면이 있습니다.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한 사람을 보고 우리가 웃는다면 그 사람은 그 행동을 멈출 겁니다. 웃음은 그 사람에게 자신이 아까 한 행동이 부적절하며 그의 존엄성을 떨어뜨리는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이며 또한 그 부적절한 행동을 단죄하는 형벌입니다.

[택시 드라이버]의 로버트 드 니로도 비슷한 죄를 지었습니다. 그는 관객들처럼 평범하게 놀지 않았거든요. 그는 영화 전체를 통해 괴짜로 남았고 관객들은 그를 웃음으로 단죄한 것입니다.

이런 웃음은 집단적 성격이 강한 사회에서 특히 강합니다. 바로 우리나라 같은 곳 말이에요. 이런 웃음은 굉장히 비겁하기도 합니다. 수가 많은 쪽에 붙어서 소수를 때려 잡는 것이니까요. 이런 집단적 웃음은 소위 '왕따'의 심리학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개성이 진짜 개성이 아닌 유행의 잽싼 추종인 경우가 많은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진짜 개성적이 되는 것은 쉽지 않아요. 검증되지 않은 개성은 늘 비웃음의 대상이 될 위험에 빠져 있고 사람들은 그런 걸 원하지 않으니까요.

요새도 [택시 드라이버]를 틀면 그렇게 웃어댈까요? 그 때만큼은 아닐 겁니다. 이제 다들 스콜세지의 영화에 익숙해져 있고 관객들의 집단적 성격도 이 영화가 처음 개봉되었던 10여 년 전에 비하면 어느 정도 약화되었을테니까요.

그러나 이런 폭력적인 웃음이 코미디에 이용되는 빈도는 여전히 높습니다. [남자 셋 여자 셋]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얼마나 많은 에피소드들이 캐릭터 한 명을 바보로 만들어 단죄하는 스토리에 할애되었나요. 보다보면 소름이 쫙 끼칩니다. 조금만 기다리다 보면 누군가 캐리처럼 돼지피를 뒤집어쓰고 주변 사람들을 초능력으로 날려버릴 것만 같아요. 하긴 그게 논리적 귀결일지도 모르죠.

이런 웃음은 훌륭한 코미디를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진짜 유머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며 집단과 형식에 대항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위대한 코미디 영화 주인공들은 언제나 집단에서 벗어나 혼자만의 길을 갔습니다. 유머를 입체화시키는 방법도 그 길밖에 없습니다. (99/06/30)

DJU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