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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두 갈래 오솔길이 있는 정원]에서 앨버트 박사라는 캐릭터는 화자인 중국인 스파이 위춘에게 그의 증조 할아버지인 최번 선생이 쓴 [두 갈래 오솔길이 있는 정원]이라는 혼란스러운 소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한마디로 이 소설은 정신 없습니다. 3장에서 죽은 주인공이 4장에서는 멀쩡하게 살아 있으니까요.

보르헤스의 소설에서는 이 정신나간 소설가 최번 선생이 남긴 '나는 두 갈래 오솔길이 있는 내 정원을 다양한 미래(모든 미래는 아니지만)에 남기노라'라는 유언에서 실마리를 찾습니다. 한마디로 최번은 보통 소설가들처럼 하나의 시간선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수많은 가능성을 동시에 다루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주인공은 암살자의 칼에 맞아 죽을 수도 있고 반대로 암살자를 죽일 수도 있습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암살자를 피해 달아날 수도 있고요. 최번의 책에서는 이 모든 것들이 동시에 일어나고 각각 이야기의 결말은 새로운 이야기들이 갈라지는 또다른 분기점이 됩니다.

그런데 지금 제가 보르헤스의 단편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걸까요? 그럴 리가! 오늘 다루려고 하는 책들은 보르헤스보다 훨씬 경박하고 문학적 가치도 없는 책들입니다. 하지만 문학적 가치가 다는 아니니까요.

오늘 소개할 작가는 에드워드 패커드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자기 아이들에게 즉석해서 만들어낸 이야기를 들려주는 걸 좋아했답니다. 하지만 그는 애들과 보다 적극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싶어했고, 결국 약간의 트릭을 도입했습니다. 중간중간에 애들한테 이렇게 물어보는 것이죠. "주인공이 트럭에 갇혔구나, 너같으면 어떻게 하겠니?" 계속 이런 게임을 즐기던 패커드는 슬슬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그 결과 나온 시리즈가 [Choose Your Own Adventure]라는 것입니다. 시리즈의 첫번째 책인 에드워드 패커드의 The Cave of Time은 1979년에 나왔습니다. 이 시리즈는 1998년 184번째 책이 나올 때까지 거의 20년간을 끌었습니다. 전에 언급했던 스트레이트마이어와는 달리 그는 필명과 고스트라이터를 남발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직접 수많은 책들을 쓰기도 했지만 수많은 작가들이 자기 이름으로 이 시리즈에 참가했습니다.

포멧은 간단합니다. 책의 주인공은 언제나 '당신 You'이고 시제도 언제나 현재형입니다. '당신'은 다양한 종류의 모험담에 빨려드는데, 그 모험담이라는 것은 이미 구체화된 공식적인 장르 스토리를 살짝 변형시킨 것들입니다. 서부극도 있고, SF도 있고, 호러도 있으며,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액션극도 있죠.

하여간 몇 페이지가 지나면 책은 이런 식으로 독자들에게 갑자기 질문을 던집니다. '문을 열고 들어갈 것인가? 아니면 다른 사람이 올 때까지 기다릴 것인가?' 각각의 질문 끝에는 페이지 번호가 매겨져 있습니다. 독자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서 넘어가야 하죠. 잘 선택하면 납치된 인질을 구출해서 영웅이 될 수도 있지만 잘못하다가는 악당에게 살해당하고 시체는 우물에 버려지는 꼴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아하, 그러고보니 이 작은 책들은 보르헤스가 추상적인 상상력으로 꾸며댔던 가상 장편 소설 [두 갈래 오솔길이 있는 정원]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있습니다. 단지 보르헤스 소설에 있었던 풍요로운 인문학적 지식과 문학적 향취는 없습니다. 공식적이고 간결한 모험담의 연속일 뿐이죠. 이 역시 공장 생산된 작품들에 불과하니까요.

[Choose Your Own Adventure]는 80년대 청소년 독자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당시 어린 독자들은 이 시리즈를 통해 독서의 또다른 방식을 접했습니다. 작가에게 그냥 질질 끌려가는 대신 적극적으로 모험에 참여 하는 독서법을 터득한 것이죠. 아마 이런 식으로 독서에 취미를 붙인 사람들도 꽤 많을 겁니다.

하지만 80년대 말 이후 [Choose Your Own Adventure]의 약발은 닳기 시작했습니다. 결정타는 컴퓨터의 등장이었습니다. [Choose Your Own Adventure] 시리즈는 소설보다는 컴퓨터에 더 잘 어울리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초기 롤 플레잉 게임들은 [Choose Your Own Adventure] 스타일의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에 불과했지요. 하이퍼텍스트라는 거창한 이름이 문학계를 떠돌기 시작한 것도 그 이후입니다.

결국 이런 종류의 보르헤스식 모험담은 보다 화려한 시청각적 즐거움을 주는 컴퓨터 세계로 옮겨가고 말았습니다. 앞으로 패커드의 시리즈가 계속 나올 가능성은 없습니다. 아마 98년에 나온 [Mayday!]가 마지막 소설일 겁니다. 이 소설의 저자는 에드워드 패커드와 안드레아 패커드인데, 안드레아는 아마 이 시리즈를 읽고 자란 패커드의 자식 중 한 명이 아닐까요?

이미 종결된 시리즈일지는 몰라도 [Choose Your Own Adventure]는 여전히 중요한 시리즈로 남아 있습니다. 에드워드 패커드가 처음 아이디어를 낸 이 시리즈를 바탕으로 수많은 게임북들이 쏟아져 나왔으니까요. 뭐가 있을까... 지금 당장 기억나는 것은 [타임머신]이라는 시리즈입니다. 주인공은 시간 여행자인데, 특정 시간 속에 뛰어들어 [Choose Your Own Adventure]와 비슷한 선택형 모험을 합니다. [Choose Your Own Adventure]와 다른 점이 있다면 실패해도 죽거나 하지 않고 다른 시간대로 다시 돌아오기 때문에 모험은 성공할 때까지 단선형이라는 것입니다. 주인공이 죽는 결말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 전 [Choose Your Own Adventure]보다 [타임 머신] 시리즈를 더 좋아했었답니다.

[Choose Your Own Adventure]의 책을 찾기는 힘듭니다. 일부는 번역되기도 했고 단행본으로 출판된 어떤 책은 어쩌다보니 잠시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과연 독자들이 그 책의 진짜 정체를 알았어도 그런 성공을 거두었을까요? 모를 일이죠. 원서는 큰 외국어 서점에서 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리즈의 초기작들은 모두 절판되었습니다. (01/04/11)

DJU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