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SF를 읽는가?

세월이 지날수록 “(특정)장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점점 무의미하거나 어려운 것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추리소설이란 무엇입니까? 이 장르의 성격이 고정되고 전성기를 이루었던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엔, 추리소설이란 명탐정이 범죄와 관련된 수수께끼를 푸는 과정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날수록 이 장르의 성격은 조금씩 흐려져 갑니다. 범죄를 먼저 노출시키거나 범죄자를 주인공으로 한 도서추리소설이 추리물의 변형으로 등장한 게 균열의 시작이었습니다. 그 뒤로 추리보다는 20세기 초의 우울하고 폭력적인 분위기를 반영하는 하드보일드 소설이나 이상 심리물이 개입되면서 추리소설은 분명한 경계선을 그을 수 없는 장르가 됩니다. 예를 들어 얼마 전에 두 번째로 영화가 만들어진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영리한 리플리씨]를 봅시다. 범죄자를 다룬 훌륭한 소설이지만 이게 과연 추리소설인가요? 만약 범죄를 다룬 모든 소설들이 추리소설이라면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도 추리소설입니까? 아니라면 왜 그렇습니까?

SF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습니다. 20세기 초엔 이 장르의 성격과 경계선은 명확했습니다. 주로 아직은 실현되지 않은 과학 지식이나 기술과 관련된 이야기였지요. 지금 대부분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말 그런가요? 지금은 아닙니다. 추리소설이 그랬던 것처럼, SF 역시 장르를 꾸준히 재발견했습니다. 물론 과학은 중요합니다. 특히 첨단 기술에 대한 기대와 미지의 기술에 대한 예측이 생활의 일부가 된 지금은요. 그러나 과학은 꼭 필수적이지는 않습니다. 수많은 작가들, 예를 들어 로저 젤라즈니나 어슐러 르 귄과 같은 작가들은 과학보다는 과학소설의 개념을 빌어 자신만의 환상 세계를 펼치는 데 더 신경을 씁니다. 이런 작가들은 대부분의 경우 판타지에도 발을 담그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이것도 그렇게까지 최근의 경향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비교적 초기 작가인 아서 코난 도일만 해도 SF와 판타지의 경계에 선 작품들을 많이 썼지요. 아틀란티스의 해저 문명을 다룬 [마라코트 해연]의 1부는 과학기술을 다룬 SF지만 2부는 초자연적인 존재와 주인공들의 대결을 다룬 판타지입니다. 그렇다면 우린 이 작품이 판타지의 영역을 끌어들여 SF의 순수성을 더럽혔다는 이유로 SF의 직위를 박탈해야 합니까? 글쎄요. 정말 몇몇 평론가들은 그렇게 합니다.

그렇다면 “SF를 왜 읽는가?” 또는 “왜 쓰는가?”라는 질문은 점점 답변하기가 어려워집니다. 정의와 성격이 불분명하니 공통된 동기를 찾기가 점점 힘들어지기 때문이지요. 대부분의 작가들이나 독자들에게 그건 관성입니다. 아시모프의 소설들을 읽고 맘에 들었다면 아마 아서 C. 클락이나 할 클레멘트의 작품들을 읽고 싶을 겁니다. 아시모프의 소설들에 나오는 로봇들이 맘에 들었다면 비슷한 로봇이나 인공지능이 나오는 다른 소설들을 찾아보고 싶을 거고요. 이러다 보면 작가가 되는 사람들이 생깁니다. 이렇게 해서 작가가 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 사람이 좋아하는 영역에 머물게 됩니다.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은 끝까지 그 공간에 남을 겁니다. 다른 사람들은 경계선의 모호한 영역을 탐색하거나 거기에서 완전히 벗어날 거고요. 선택은 자유입니다. SF 세계는 전체주의 국가가 아닙니다. 순수성을 강요하는 건 평론가들이나 도서관 사서들뿐입니다. 그것도 순전히 그들의 분류나 작업의 편의성 때문이지 정말 진지한 문학적 의미가 담긴 고뇌 때문은 아니지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SF를 읽거나 쓰는 행위는 여전히 어느 정도 폐쇄적인 작업입니다. 분명한 장르의 성격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건 SF가 다루는 영역이 넓어졌다는 뜻이지 그 장르의 전문성이 사라졌다는 뜻은 아닙니다. 비교적 과학과 무관한 소설을 쓰는 작가인 코니 윌리스는 상당히 하드한 사이버펑크 작가인 닐 스티븐슨과 마찬가지로 전문적인 작은 세계의 특별한 작가입니다. 곧장 말해 SF작가라는 뜻이죠. 그들은 폐쇄적인 세계의 독자들과 평론가들에 의해 감상되고 분석되며 분류됩니다.

이런 전문성 때문에 SF는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장르가 되어갑니다. 만약 여러분이 현대 SF 소설들을 온전하게 즐기고 싶다면 단순히 현대 문학에 대한 지식과 현대 과학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건 그 동안 SF라는 장르가 자기만의 세계를 쌓아올렸기 때문이죠. 워프 항법으로 초광속 여행을 하고 앤시블로 우주삼라만상과 연결되는 미래인들의 모습은 엄격한 과학적 유추의 결과가 아니라 꿈에 부푼 SF작가들의 발명품들입니다. 그리고 그 세계는 진짜 과학처럼 중요한 SF세계의 일부인 것입니다. 물론 전 아주 단순한 예를 들었습니다. 장르의 폐쇄적인 특성은 종종 초광속 우주선이나 타임머신과 같은 기성품 발명품의 사용을 넘어섭니다. 하지만 이건 지금 이야기할 대상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런 장르 애호가들의 무리는 중간에 또다시 분열됩니다. 특히 영상 매체가 문학에서 떨어져 나와 별도의 팬덤을 구성하게 된 지금은요. 예전엔 SF 팬이라고 뻐기기 위해서는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들과 작가들이 있었습니다. 지금의 SF팬들은 책 자체를 무시해도 됩니다. 만화나 영화가 그만큼이나 많은 소스를 제공해주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여기엔 한계가 있습니다. SF에는 문자매체만이 도달할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아무리 영상 매체가 고유의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도 그 엄정성만은 쉽게 도달할 수 없는 경우가 많죠.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정말로 훌륭한 영화였지만 그래도 아서 C 클락의 보다 엄격한 비전을 재현하지 못한 것처럼요. 그 때문에 약간 불쾌한 악순환이 일어납니다. 영상 매체의 팬들이 문자매체의 작품들을 통과하지 못하는 통에 이미 오래 전에 토론되었고 결론에 도달한 이야기들이 보다 진부하고 나이브한 방식으로 다시 시작되는 것이죠. 종종 이건 끔찍한 해를 불러일으킵니다. 특정 과학적 위기가 닥칠 경우, 많은 사람들은 그런 주제를 아주 깊이 있게 다룬 일급의 SF소설 대신 잘 알려졌지만 진부하고 얄팍한 삼류 SF 영화를 먼저 떠올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는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가요? 처음엔 SF가 규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흐릿한 존재라고 말했습니다. 그 다음엔 정반대로 이야기를 끌고 가 이 장르가 얼마나 폐쇄적인 오락인지에 대해 이야기했고요. 그러면서 지금은 SF가 현대인이라면 절대로 읽어야 할 무언가라는 암시를 풍기고 있는 것입니다.

정신없고 산만한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이는 모두 맞습니다. 보기만큼 자기모순적도 아닙니다. 오히려 이들은 상호보완적이지요. SF의 독서는 중요합니다. 그건 현대사회가 과학과 기술의 발전에 의해 끊임없이 변화하는 역동적인 세계이고 이 세계에서 살아남으려면 아직 다가오지 않은 세계와 일어나지 않은 모든 가능성에 대한 깊은 사고와 예측은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SF는 바로 그런 사고를 다루는 장르입니다. 그리고 그 장르가 어느 정도 의미 있는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전문성이 필수적입니다. 전문적이 되려면 어느 정도 폐쇄성은 당연한 것이죠. 하지만 과학은 결코 세계에서 떨어져 있지 않고 SF 역시 현존하는 세계와 그 세계를 사는 사람들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그 경계선은 당연히 흐려집니다. 대충 이치가 맞지 않습니까? 물론 이치만 맞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사실 세상과 SF의 관계는 다람쥐 쳇바퀴처럼 빙빙 돕니다. 전문적인 오락과 필수적인 교양을 동시에 충족시키기는 그만큼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사회는 이미 어느 정도 해답을 알고 있습니다. 모두가 물리학자가 될 수 없지만 세상을 위해 물리학 전공자들의 수를 늘릴 수는 있습니다. 모두가 SF적인 사고를 하거나 그 사고를 즐길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런 사람들의 수를 늘릴 수는 있습니다. SF는 의무적으로 독자수를 늘려 마땅한 장르인 것입니다. 유감스럽게도 몇몇 외국 고전들을 하나둘씩 번역하는 수준의 한국 도서계의 현실은 우리에게 충분한 소스를 제공해줄 여력이 아직 부족합니다. 그래도 이 정도라도 있는 게, 없는 것보다는 낫고 독자수도 꾸준히 늘어가고 있긴 합니다만. 창작은 어떨까요? 아직 초기 단계입니다. 일단 이 장르에 본격적으로 몸을 담그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교양으로 익혀야 할 수많은 작품들이 존재하는데, 아직은 원서 이외의 통로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이 악순환이 언제 멎을지는 아직 아무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05/10/25)

DJU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