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
김진민

주연
서영희....민아
서지혜....태영
박병은....성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민아와 태영

군대에서 제대한 성우는 입대 전에 결별 선언을 한 여자친구 민아의 집으로 쳐들어옵니다. 이미 고등학교 동창인 미혼모 태영과 같이 살고 있던 민아는 자기에게 엉겨붙으려는 성우가 영 맘에 들지 않지만, 갈 곳도 없고 여전히 민아와 잘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고 있는 성우는 억지로 민아의 아파트에 눌러앉아요. 아파트를 살 때 성우도 돈을 보탰기 때문에 민아는 그를 쫓아낼 수도 없죠.

이들이 부대끼며 사는 동안 두 가지 문제가 발생합니다. 첫 번째는 성우가 태영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었다는 사실이죠. 두 번째는 태영을 좋아하는 사람이 성우만이 아니었다는 거고. 민아가 태영을 그처럼 살뜰하게 보살펴주었던 건 단순히 친구의 의리 때문은 아니었어요.

전 [그 집에 누가 사나요?]가 어느 정도의 쿨함과 어느 정도의 자극을 원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짐작은 할 수 있어요, 제 생각엔, 이 에피소드가 다루는 이슈에 대해 일부러 무덤덤하게 굴면서 이 이슈를 충격적으로 받아들이는 시청자들의 우위에 서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은 동성애라는 단어를 꺼내지도 않고 거기에 대한 충격을 과장하지도 않아요. "그냥 그런 일이 있었어"라고 말할뿐이죠.

그렇다면 이 작품은 의도했던 쿨함에 도달했을까요? 미안하지만 아닙니다. 그 동안 세월이 많이 흘렀죠. 동성애를 사랑의 일반 조건 중 하나로 놓고 무심하게 푸는 것이 쿨한 태도인 때는 오래 전에 지나갔단 말이죠. 요샌 공중파 방송에서도 별다른 거리낌없이 이야기하는 주제잖아요. 물론 직접 보여주는 일은 상대적으로 적지만.

그리고 이 에피소드는 어느 기준으로 봐도 여전히 나이브합니다. 민아와 태영의 사이를 보여주기 위해 깃털 베개 싸움을 보여주는 것만 봐도, 만드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동성애에 대한 생각이 지독할 정도로 막연하고 관념적이라는 걸 알 수 있죠. 태영에 대한 감정을 고백하지 못하고 고민만 하는 민아의 태도 역시 그 만큼이나 도식적이고 결정적으로 거의 보기 힘들 정도로 엄청 지지리 궁상이에요. 두 여자와 한 남자가 얽혀 있는 어색한 삼각관계의 이야기는 21세기 초의 한국을 무대로 하고 있지만 19세기 말의 보스턴이나 뉴욕에서도 먹힐 정도고요. 전형적인 보스턴 결혼 멜로드라마죠. 그것도 엄청 낡은 부류의.

더 나쁜 건 이 이야기가 결말을 내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그냥 민아의 커밍아웃으로 끝나 버려요. 이걸 쿨하고 담백한 결말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아뇨, 그렇지 않아요. 지금까지는 그냥 설정이에요. 진짜 드라마는 그 이후에 시작되어야 마땅하죠. 그 전까지 우리가 본 건 겹겹으로 쌓인 관습밖에 없어요. 무언가 새로운 걸 보여주려면 그 이후를 탐구해야해요. 특히 태영의 태도요. 태영의 모호한 태도는 매력적일 수도 있지만, 거기서 끝나 버리면 이 캐릭터는 그냥 설정을 위한 도구로 남아버려요. 가족과 성정체성에 관한 주제도 그냥 제시되는 것으로 끝나 버리고. (06/11/23)

DJUNA

기타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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