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데이빗 크로넨버그 David Cronenberg

주연
제니퍼 제이슨 리....알레그라 겔러
Jennifer Jason Leigh....Allegra Geller
주드 로....테드 파이컬
Jude Law....Ted Pikul
윌렘 드포....개스
Willem Dafoe....Gas
이안 홈....키리 바이노커
Ian Holm....Kiri Vinokur
돈 맥컬러....에프게니 누리시
Don McKellar....Yevgeny Nourish
사라 폴리....멀
Sarah Polley....Merle
크리스토퍼 에클리스턴....레비
Christopher Eccleston....Levi

1.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신작 [엑시스텐즈]에서 가장 눈에 뜨이는 것은 스토리의 진부함입니다. [엑시스텐즈]의 스토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나도 뻔해서 오히려 그 뻔함이 놀라울 정도입니다. 사이버펑크 물에 익숙한 관객들이라면 초반 10분만 보고도 영화가 어떻게 흘러가고 끝날 것인지 단번에 알아맞출 수 있습니다. 조금 더 예민한 사람들이라면 마지막의 아이러니컬한 대사까지 짐작해낼 수 있었을 겁니다.

스토리 자체 뿐만이 아니라 스토리 속에 숨어 있는 주제 역시 마찬가지로 뻔합니다. 하긴 필립 K. 딕 이후 버추얼 리얼리티에 대한 신선한 글을 쓰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졌습니다. '이것이 현실이냐, 게임이냐'를 물으면서 관객들을 헛갈리게 만들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현대 SF 관객들을 너무 얕보는 거죠.

그렇다고 고정된 장르 스토리를 특별히 단단하게 만든 것 같지도 않습니다. [엑시스텐즈]의 각본은 버추얼 리얼리티를 다룬 각본이 빠질 수 있는 함정들에 너무 쉽게 떨어집니다. 아이덴티티의 전환 때문에 관객들은 캐릭터에 몰두할 수 없고 툭툭 끊어지는 플롯 때문에 집중력이 떨어집니다. 결정적으로 게임 자체도 그렇게 재미있다고 할 수 없답니다. 영화 속에서 테드도 말했지만, 이런 게임을 어떻게 팔아먹겠다는 건지.

한마디로 말해 이 영화의 각본은 30분짜리 [트왈라이트 존]에는 대충 맞을지 몰라도 장편 영화 각본으로는 너무 빈약합니다.

2.

그러나 모든 영화들이 꼭 새롭거나 전위적이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안이한 스토리 때문에 [엑시스텐즈]를 보는 기분은 오히려 무척 편합니다. 아마 만들면서도 그랬을 거예요.

하긴 이 영화는 참 소품입니다. 크로넨버그도 이 영화를 [크래쉬] 때처럼 진지하게 만들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엑시스텐즈]는 크로넨버그가 최근에 만든 영화들 중 가장 캐나다 영화 같아 보이는 영화인데, 그건 돈 맥컬러나 사라 폴리와 같은 캐나다 배우들의 얼굴이 살짝 살짝 보여서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영화 자체가 작기 때문입니다.

한가한 덕택에 그의 스타일이 더 쉽게 눈에 들어옵니다. 진부한 스토리에 비해 이 영화의 비주얼과 몇몇 아이디어는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특히 돌연변이 생물의 장기로 만든 게임기와 같은 매우 크로넨버그식 설정과 사이버펑크의 결합이 그렇습니다. 이런 생물학적 도구들이 영화에 부여하는 기형적인 성적 느낌 역시 매우 크로넨버그적이고요.

전체적으로 [엑시스텐즈]는 '크로넨버그 라이트'처럼 보입니다. 작고 가볍고 뻔하지만 크로넨버그의 개성을 즐기는 데는 전혀 무리가 없는 영화지요.

3.

제니퍼 제이슨 리는 매우 제니퍼 제이슨 리답게 알레그라라는 제니퍼 제이슨 리 풍의 캐릭터를 연기해냅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이 배우가 보여준 연기 역시 '제니퍼 제이슨 리 라이트'로 보입니다. 정말 그런 기분으로 찍었던 것 같아요. 이 사람의 개성은 살아있으면서도 그 극한에 도달하려는 고약한 집착은 없으니까요.

주드 로는 조금 진지하게 연기합니다. 그리고 [가타카]에서보다 훨씬 예뻐보이는군요. 캐릭터 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윌렘 드포, 크리스토퍼 에클리스턴, 이안 홈과 같이 이름있는 배우들이 많이 나오지만 모두 비중은 작습니다. 그네들에게도 역시 휴가같은 영화였을 거예요. :-) (99/08/21)

D&P

기타등등

이 영화에서 사라 폴리는 참 작아보이더군요. 원래 작은 사람이긴 하지만 이 영화에서처럼 작게 느껴진 적은 없었어요. 하여간 오래간만에 다시 보니 반가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