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레니 할린 Renny Harlin

주연
스텔란 스카쉬고드....메린 신부
Stellan Skarsgård....Father Merrin
이자벨라 스코룹코....사라
Izabella Scorupco....Sarah
제임스 다시....프란시스 신부
James D'Arcy....Father Francis
레미 스위니....조셉
Remy Sweeney....Joseph
줄리안 와드햄....그랜빌 소령
Julian Wadham....Major Granville
앤드루 프렌치....추마
Andrew French....Chuma
랠프 브라운....메이저 상사
Ralph Brown....Sergeant Major
벤 크로스....세멜리에
Ben Cross....Semelier
데이빗 브래들리....지오네티 신부
David Bradley....Father Gionetti
앨런 포드....제프리스
Alan Ford....Jeffries
안토니 카멜링....케셀 중위
Antonie Kamerling....Lieutenant Kessel
에디 오세이....에메퀴
Eddie Osei....Emekwi
이스라엘 아두라모....조모
Israel Aduramo....Jomo
패트릭 오케인....베숑
Patrick O'Kane....Bession
제임스 벨라미....제임스
James Bellamy....James

메린 신부

[엑소시스트: 비기닝]은 1편에서 죽은 랭카스터 메린 신부의 젊은 시절 이야기입니다. 원작자 블래티는 메린을 깊은 과거를 가진 수수께끼와 같은 인물로 그렸습니다. 악마와 메린 사이엔 이전에 뭔가 엄청난 드라마가 숨겨져 있을 것 같았죠. 교활하게도 블래티는 그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습니다. 비밀은 숨겨져 있을 때 더 빛을 발하는 법이니까요. 당연히 블래티는 프리퀄의 아이디어를 싫어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탐구하고 싶어했던 영화 제작자들을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닙니다.

영화는 2차 세계대전 당시의 끔찍한 기억 때문에 사제직을 포기한 메린 신부가 이집트의 카이로에서 수수께끼의 수집가로부터 악마를 상징하는 어떤 골동품을 구해달라는 부탁을 받으며 시작됩니다. 그 골동품은 케냐에서 발견된 동로마제국의 교회 유적 안에 숨겨져 있다는 것이었죠. 유적을 발굴하던 메린 신부는 노골적인 악의 기운을 느끼게 되고 결국 악마와 한판 대결을 벌이게 됩니다.

[엑소시스트: 비기닝]은 지금까지 나온 [엑소시스트] 영화들 중 가장 스케일이 큰 작품입니다. 지금까지 개인적인 차원에 머물러 있었던 전작들과는 달리 이 영화는 나찌즘과 식민주의와 같은 거대한 악을 다루고 있고 동로마제국시대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이어지는 천 여년의 역사를 커버하고 있죠. 물론 지금까지 암시만 풍기던 [엑소시스트] 시리즈의 기본 설정도 꽤 많이 설명됩니다. 그것도 상당히 거창한 성서적 스케일로요.

문제는 이 모든 게 먹히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거창한 성서적 스케일에도 불구하고 먹히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이 거창한 성서적 스케일 때문에 먹히지 않는 거죠. [엑소시스트]는 원래 내밀한 시리즈입니다. 오리지널 [엑소시스트]가 무서웠던 건 세계 종말과 같은 엄청난 이벤트 대신 신앙심을 잃어가는 사제의 영적 갈등과 같은 작은 스케일의 사건을 깊이있고 사실적으로 묘사했기 때문입니다. 오리지널 [엑소시스트]의 불길한 악은 바로 우리 옆에 위치해 있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잔뜩 부풀려진 [엑소시스트: 비기닝]의 악에는 그런 내밀하고 사실적인 느낌은 없습니다. 거창하게 묘사된 설정은 역사적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지나칠 정도로 장르 규칙에 의존하는 이야기는 설정의 격을 떨어뜨리고요. 결정적으로 메린 신부의 심적 갈등은 짜증날 정도로 얄팍하게 묘사되었습니다. 관객들을 설득할 의지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요. 어이가 없어요. 메린은 분명 이보다 깊이 있는 인물일텐데요.

남는 건 특수 효과를 쓴 액션물입니다. 이 영화는 진지하게 장르에 몰입한 호러 영화 같지도 않습니다. 무섭지 않다고 말하지는 않겠어요. 불길하고 폭력적인 설정 속에 닫혀 있는 상자나 뒤돌아선 사람은 언제나 무서울 수 있는 잠재적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감독 레니 할린은 그런 불길한 매력을 소재에서 끄집어내는 데 거의 완벽하게 실패하고 있습니다. 차라리 솔직하게 액션물을 찍었다면 나았겠지만 이 영화는 액션 영화를 의도한 작품도 아니니 작품이 어색해지는 거죠.

할린의 탓만 할 수는 없습니다. [엑소시스트: 비기닝]은 아주 어렵게 완성된 작품이니까요. 원래 감독으로 내정되어 있던 존 프랑켄하이머는 건강상 이유로 물러난지 얼마되지 않아 죽어버렸고, 그 뒤를 이은 폴 슈레이더의 작품은 자극이 없고 무섭지 않은 심리물이라는 이유로 제작자들이 거부해버렸지요. 할린은 어쩌다 굴러들어와 제작자들 말대로 슈레이더 버전의 안티 테제 격인 영화를 만들어버린 셈입니다. 실패는 처음부터 예정되어 있었던 거예요.

물론 전 폴 슈레이더 버전이 어떤 작품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작품이 끝까지 공개되지 않는다고 해도 슈레이더 버전이 할린 버전보다 더 인기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할린 버전은 개념부터 잘못 잡은 영화거든요. (04/11/25)

DJUNA

기타등등

'젊은 메린'을 연기한 스텔란 스카쉬고드는 오리지널 버전에 출연했던 당시의 막스 폰 시도보다 열 살 정도 나이가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