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에른스트 루비치 Ernst Lubitsch

주연
폴라 네그리....마
Pola Negri....Ma
에밀 야닝스....라두
Emil Jannings....Radu
하리 리트케....알베르트 벤틀란트
Harry Liedtke....Albert Wendland
막스 로렌스....호헨펠스 왕자
Max Laurence....Prince Hohenfels

라두와 마

[미이라 마의 눈]에서 가장 당황스러운 부분은 제목과 내용의 불일치입니다. 영화는 마치 미이라와 관련된 초자연적인 호러영화처럼 시작됩니다. 하지만 관객들이 아무리 기다려도 수천 년의 잠에서 깨어난 미이라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분명 공포스러운 면도 있고 신비스러운 면도 있지만 영화는 호러영화가 아니라 이국적인 소재를 빌린 멜로드라마입니다.

제목이 뭐라고 주장하건, 이 영화의 주인공 마는 미이라가 아닙니다. 야만적인 아랍인 라두에게 납치되어 노예처럼 살다가 잘난 유럽인 화가 알베르트 벤틀란트에게 구출된 이집트 여인이지요. 벤틀란트는 마를 유럽으로 데려가 뮤직홀의 댄서로 만들지만 탐험가 호헨펠스 왕자의 하인이 되어 유럽까지 찾아온 라두는 여전히 마의 뒤를 쫓습니다.

[미이라 마의 눈]의 초자연적인 분위기는 거의 전적으로 설명가능합니다. [디아볼릭]이 그런 것처럼요. 마는 유럽에 갑자기 나타난 라두가 초자연적인 존재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아니거든요. 단지 믿을 수 없는 우연의 일치가 만들어낸 멜로드라마일 뿐이죠.

다행히도 영화의 멜로드라마는 여전히 일정 수준의 힘을 갖추고 있습니다. 라두는 여전히 섬뜩한 캐릭터여서 우린 그가 유령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공포심과 혐오감을 느낍니다. 마의 착각은 글로 쓰면 한심해보이지만 무성 영화의 신비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보면 거의 완벽하게 이해가능하고요. 영화의 비극적이고 난폭한 결말 역시 시시한 트릭으로 떨어질 수 있는 결말에 힘을 부여합니다.

영화의 스타 파워도 강합니다. 라두가 무시무시한 인물인 건 검게 분장한 에밀 야닝스의 무시무시한 존재감 때문이기도 하니까요. 폴라 네그리는 지나치게 오버 액팅을 하고 있고 이 배우가 추는 '아랍춤'은 술취한 발레 같아 좀 웃기지만 그래도 미래의 스타 기질이 보입니다.

[미이라 마의 눈]은 20세기 초 유럽인들이 아랍 세계에 대해 품고 있었던 오리엔탈리즘의 극치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영화는 차갑고 무력한 서구 문명의 눈으로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아랍 세계의 열정을 바라보고 있죠. 반쯤은 공포와 혐오에 떨면서, 반쯤은 매혹되어서요. 이 영화에서 유럽인들은 구경꾼에 불과합니다. 명목상 남자 주인공인 벤틀란트는 마를 구출하는 간단한 임무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죠. 아마 그는 극장 안에서 이 환상적인 이야기를 바라보며 패전 이후의 힘겨운 삶을 견뎌내던 당시 관객들을 대표하는 인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미이라 마의 눈]이 지금까지 상영되고 보존될 수 있었던 건 이 작품이 에른스트 루비치의 첫번째 장편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이 영화에서 '루비치 터치'를 기대하시는 분은 없겠지만요. 솔직히 미래의 거장이 만든 영화라는 느낌도 별로 없습니다. 비교적 재미있는 영화지만 분명한 스타일이나 독창성을 갖추고 있는 것도 아니고요. 무르나우나 랑과는 달리, 루비치는 무성영화 장르 속에서 자신의 재능을 완전히 꽃피웠던 감독은 아니었어요. 공포영화 감독은 더더욱 아니었고요. (04/11/16)

DJUNA

기타등등

폴라 네그리는 영화 배우가 되기 전에 발레 경험도 있었으니 마의 '아랍 춤'에 발레 테크닉이 녹아 있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