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위시트 사사나티앙 Wisit Sartsanatieng

주연
차르차이 엔감산....덤
Chartchai Ngamsan....Dum
스텔라 말루치....룸포이
Stella Malucchi....Rumpoey
수파콘 키추원....마헤수안
Supakorn Kitsuwon....Mahesuan
아라와트 루앙부트....쿰존
Arawat Ruangvuth....Kumjorn
솜바티 메드하니....파이
Sombati Medhanee....Fai

덤과 마헤수안

[티어스 오브 블랙 타이거]는 최근 태국 뉴웨이브 영화들 중 가장 소란스러운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영화입니다. 자국내에서는 옛 시대에 대한 향수로 관객들을 흔들어놓고, 해외에서는 그 엉뚱한 스타일로 주목을 받고 있지요.

줄거리만 보면 이 영화가 왜 그렇게 인기인지 짐작이 잘 가지 않을 겁니다. 수십 년 전에 시효가 지난 것 같은 구식 활극물에 [로미오와 줄리엣] 스토리를 끼워넣은 것 같으니까요.

대충 이런 이야기입니다. 소작농의 아들인 덤과 지사의 딸인 룸포이는 신분의 벽을 뚫고 뜨거운 사랑을 나누는 사이입니다. 하지만 덤은 마적단의 일원이 되고 룸포이는 집안에서 정해준 경찰 간부인 쿰존과 약혼하게 되지요. 당연히 덤의 심장은 찢어지지 않겠어요?

진지할 것 같다고요? 네, 우리의 두 연인 덤과 룸포이는 진지하기 짝이 없습니다. 매정한 운명이 갈라놓은 비극적인 연인들인걸요. 하지만 그들의 심각함에 맞추어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거의 없을 거예요. 영화는 시끄럽고 요란하고 유치찬란하며 정말로 정말로 웃깁니다.

이 영화의 재미는 일단 시대의 차이에서 옵니다. 60년대 관객들에게는 심각했던 영화들이 2000년대 관객들에게는 배꼽잡는 코미디가 되는 경우는 우리나라에서도 많잖아요. [티어스 오브 블랙 타이거]는 그런 촌스러움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50년대 태국이 무대면서 서부극 악당들처럼 분장한 마적단이 스파게티 웨스턴을 뺨치는 총싸움을 벌이는 동안 (보기만큼 시대/공간 착오적인 설정은 아닙니다. 당시 서부극은 미국 외의 수많은 나라에서 만들어졌으니까요. 심지어 우리나라에도 몇 작품 있었잖아요,) 꼭 태국 바비 인형처럼 차려입은 우리의 여자 주인공은 뚱뚱한 유모에게 안겨 울먹이며 "유모! 난 어쩌란 말이야!"를 외쳐대는군요. '키스를 훔치려는' 치한들로부터 여자 주인공을 구하기 위해 남자 주인공은 분노의 도시락 가방을 휘둘러대고, 연인들이 사랑을 나눌 때는 그림 엽서처럼 감상적인 싯귀가 화면을 채우고요.

이런 것들도 파고들어가면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습니다. 감독인 위시트 사사나티앙에 따르면 이 영화는 5,60년대 태국 영화 감독인 라타나 페스톤지에 대한 오마주라는군요. 전 라타나 페스톤지가 누군지 전혀 모르고 그 감독의 스타일에 대해서도 아는 바 없습니다. 아마 그 때문에 태국 관객들만큼은 이 영화를 이해하지 못했을 거예요. 물론 이런 식의 아시아 신파 영화들에는 꽤 익숙하니 서구 관객들보다는 낫겠지만요.

문화 갭이야 어찌되었건, 위시트 사사나티앙이 '존경하는' 선배의 작품들을, 흠모를 잔뜩 담은 요란한 패러디로 뒤트는 장면들은 굉장합니다. 일부는 거의 [유머 1번지] 수준의 투박한 코믹 연기 때문이기도 하고, 일부는 그런 구닥다리 재료들로 은근히 현대적인 액션과 코미디를 만들어내는 감독의 재능 때문이기도 합니다.

룸포이

관객들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것은 그 시각적 스타일입니다. 일단 거의 기형적이라고 할 수 있는 컬러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지요. 이 영화엔 단순한 파랑이나 빨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늘은 탁한 옥색이고 나무들은 에머럴드 빛이며, 이상한 분홍색이 빨강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미지들은 필름의 이미지를 베타 테이프로 옮겨서 하나하나 착색하는 과정을 통해 얻었다고 하는군요. 그 결과 태국 관객들에겐 무척이나 토속적으로 보이고, 외국 관객들에게는 너무나도 어처구니 없어서 기괴한 매력까지 풍기는 복고적 화면이 만들어집니다.

이런 컬러의 기초는 종종 등장하는 노골적으로 인공적인 세트에서 더욱 빛을 발합니다. 특히 주인공 덤이 나무에 기대어 하모니카를 부는 장면에서 배경으로 등장하는 노란 태양 그림에는 정말 경악을 금할 수 없어요.

이 망측한 배경 속에서 등장하는 액션 역시 극단적으로 과장되어 있습니다. 일반적인 스파게티 웨스턴식 액션을 극도로 부풀려서 황당하기 짝이 없는 액션 장면을 만들어내는 거죠. 아마 로드리게스와 같은 동시대 서구 감독들을 연상하는 관객들도 많을 겁니다. 훨씬 어처구니 없고 시체 조각들이 더 많이 튀지만요. 이런 말도 안되는 액션은 특히 덤이 룸포이를 지키기 위해 벌이는 마지막 결투에서 절정에 달합니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스타일과 허풍스러운 액션이 섞인 결과는? 거칠지만 정신 없이 재미있고 창의성이 넘쳐 흐르는 신선한 장르 영화입니다. 보다보면 너무 신이 나서 피곤해질 지경입니다. (01/07/20)

DJUNA

기타등등

만약 이 영화가 수입되어 국내 텔레비전을 통해 방영된다면, 더빙은 반드시 60년대식 닭살 성우들이 맡아야 할 겁니다. 그런 식으로 봐도 굉장히 재미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