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마이클 무어 Michael Moore

주연
마이클 무어
Michael Moore
존 애쉬크로프트
John Ashcroft
조지 부시
George Bush
조지 W. 부시
George W. Bush
딕 체니
Dick Cheney
알 고어
Al Gore
콜린 파웰
Colin Powell
콘돌리자 라이스
Condoleezza Rice
도널드 럼스펠드
Donald Rumsfeld
브리트니 스피어스
Britney Spears
라일라 립스콤
Lila Lipscomb

9월 11일 오전 9시 5분

마이클 무어의 작품들이 정치적이라는 건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최근작 [화씨 9/11]은 그 정치성이라는 개념에 새로운 척도를 부여합니다. 이번에 그는 관객들을 설득하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무어에게 [화씨 9/11]은 조지 워커 부시 주니어라는 현 미국 대통령의 재선을 막는다는 구체적인 목표를 위한 무기입니다. 이 영화를 정치선전물이라고 비난하는 건 웃기는 일입니다. [화씨 9/11]은 자신이 선전물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있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영화가 하려고 하는 말은 무엇일까요? 그건 조지 W. 부시가 대통령이라는 중책을 감당할 능력이 없는 인물이고, 그가 9/11 사태 이후 지구를 뒤흔들며 한 일들은 모두 정의구현이나 테러전과는 상관이 없는 기만 행위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 아니냐고요? 물론 그렇겠죠. 하지만 복습은 언제나 도움이 되는 법이고, 무어는 어느 정도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관객들이라도 빼먹었을 법한 흥미로운 정보들을 몇 개 더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기존 지식들과 새로운 정보들을 엮어서 조지 W. 부시 주니어라는 남자와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흥미롭고 꽤 지저분한 초상을 완성해냅니다. (캐리커처라고 썼다가 초상이라는 단어로 바꾸었습니다. 조지 W. 부시의 가장 무시무시한 점은 그의 우스꽝스러움이 서툰 사람의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아무런 깊이가 없는 얄팍한 남자의 실체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무어는 [화씨 9/11]에서 그가 장기로 써먹고 있는 모든 도구들을 총동원합니다. 이 영화에서도 상원의원들에게 그들이 제대로 읽지도 않고 통과시킨 애국법의 내용을 읽어주고 의원들에게 자식들을 이라크로 보내 애국하라고 설득하는 식의 게릴라식 영화만들기는 존재합니다. 야유조의 공격적 농담들을 표창처럼 집어던지는 위트도 여전한데, 아마 그중 가장 강도가 센 부분은 9월 11일날 초등학교를 방문한 부시가 무역센터 테러에 대한 보고를 접하고 어쩔 줄 몰라하는 표정을 잡아내고 날카로운 코멘트를 덧붙인 것이겠죠(아시겠지만 그는 결국 그 자리에 몇 분 동안 죽치고 앉아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었습니다.)

하지만 [화씨 9/11]은 기존의 무어 영화들에 비해 얌전하고 신중합니다. 무어는 목표를 위해 많은 것들을 포기합니다. 심지어 부시를 놀려대고 싶어하는 절실한 욕구마저도 어느 정도 억누르고 있어요. [볼링 포 콜럼바인] 당시엔 부정직성과 조작에 대한 공격을 혼자 감당해낼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습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는데, 단 한 번의 찬스를 그런 식으로 낭비할 수는 없죠. 무어는 이번에 영화를 만들면서 사실 검증에 꽤 시간을 들인 모양이고 그 때문인지 사실 왜곡에 대한 분명한 소문들은 그렇게 많이 들려오지 않는군요.

덕택에 무어 특유의 재미는 어느 정도 사라졌습니다. 일단 무어는 그렇게까지 자주 카메라 앞에 서지 않습니다. 대신 뒤에서 부시 정권 하에 일어났던 이 모든 넌센스들을 비교적 비약없는 논리로 설명하는 쪽을 택하지요. 이 영화엔 [볼링 포 콜럼바인]에서 너무나도 재미있었던 예측불허의 논리 도약도 없고 [로저와 나]에서 볼 수 있었던 직설적인 야유의 쾌락도 덜합니다. 영화예술작품으로서 [화씨 9/11]은 그의 이전 작품들에 비해 조금 심심합니다.

무어는 부시 낙선이라는 목표 달성을 위해 몇몇 이슈들을 단순화시키기도 했습니다. 영화의 초점이 미국과 미국인들에 집중된 것에 대해 비판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영화의 타겟은 부시의 낙선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미국인 관객들이니까요. 하지만 수십 년에 걸친 미국 외교 정책의 실패를 단순히 부시 부자의 탐욕 때문이라고 밀어붙이는 것처럼 보인다면 문제가 있겠죠. 아니, 전 무어가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거나 그런 식의 말을 했다고 주장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부시 일가의 실책과 음모에 집중한 영화의 태도는 분명 그런 식의 해석이나 비판을 불러올 수도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씨 9/11]은 여전히 모두에게 강렬한 희비극입니다. 언제나처럼 무어는 골프장에서 무성의한 호언장담을 하는 부시에서부터 이라크전에서 아들을 잃고 흐느끼는 플린트의 노동자 계급 가정까지 종횡으로 오가면서 굉장히 울림이 큰 드라마를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그 드라마는 관객들이 극장에서 나오자마자 무시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지요. 그 관객들이 부시의 지지자들이건 반대자들이건, 미국인이건 미국인이 아니건 말이에요.

이 영화가 과연 무어가 원하는 것만큼 부시의 낙선에 영향을 행사할 수 있을까요? 아직 예측하기는 이릅니다. 하지만 정말 그가 원하는 것만큼 이 영화가 부동표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면 우린 영화라는 매체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게 되겠지요. (04/07/15)

DJUNA

기타등등

마이클 무어의 공식 페이지가 여기 있고요... 혹시 MooreWatch라는 곳에 가보셨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