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탄생 (2006) * * *
감독
김태용
주연
문소리....미라
엄태웅....형철
고두심....무신
이라혜....채현
공효진....선경
김혜옥....매자
김희수....경석
류승범....준호
봉태규....경석
정유미....채현
 |
[가족의 탄생]은 얼핏 보기에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세 에피소드의
주인공들을 차례대로 보여주면서 시작됩니다. 기차 안에서 만나 막 연애를 시작하는
경석과 채현, 일 때문에 바쁜 현실주의자 선경, 분식집에서 일하는 미라.
프롤로그가 이들의 소개를 마치면 영화는 이번엔 역순으로 이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들려줍니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미라는 군대 제대 후 한 동안 소식이 끊겼던 동생 형철의 방문을 받습니다. 놀랍게도 형철은 20살이나 연상인 중년 여인 무신과 결혼한 상태이죠. 엉겁결에 이 커플과 동거를 시작한 미라의 속이 편할 리가 없겠죠?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일본어 여행 가이드인 선경은 이 나라에서 벗어나 일본으로 떠나기 위해 필사적입니다. 이해할 만 해요. 선경의 입장에선 이 땅에서 빨리 벗어날수록 좋으니까요. 옛 남자친구와는 깨졌고 늘 비현실적인 연애에 몰두하는 엄마와도 사이가 좋지 않죠. 하지만 이 놈의 가족이라는 끈은 선경의 생각만큼 쉽게 끊기지 않습니다.
세 번째 에피소드에서, 채현과 경석의 연애는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둘은 서로를 사랑하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친절한 채현의 태도 때문에 경석은 오히려 애정결핍증에 걸릴 지경이죠. 참다 못한 경석은 채현에게 최후 통첩을 하지만 이 역시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이 세 가지 이야기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느냐고요? 세 번째 이야기 초반에 그 관계가 밝혀집니다. 영화 홍보물이 정보를 몽땅 공개하고 있어서 반전이라고 하기엔 좀 민망한 구석이 있죠. 그래도 영화를 온전히 즐기고 싶으시다면 사전정보 없이 그냥 가시길.
[가족의 탄생]의 테마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 맺기입니다. 단지 이 영화는 그 관계들을 그리면서 시스템에 의해 규정되고 강요되는 규칙들을 전부 또는 일부를 제거하고 있어요. 가장 노골적인 것이 미라와 무신의 관계죠. 자기가 저지른 일에 도통 책임을 질 줄 모르는 형철이 없었다면 만나지도 못 했을 거고 또 그 뒤에도 만나야 할 이유가 없는 사람들이죠.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연스럽게 가족이라는 굴레 안에 통합됩니다. 미라와 무신까지는 아니더라도 이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조금씩 일부일처제 가족 시스템에서 해방되어 있어요. 가장 정상적인 커플인 채현과 경석도 조금은 그런 구석이 있지요.
그 때문에 이 영화는 노골적인 동성애자 캐릭터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조금은 퀴어 영화처럼 보입니다. 아마 '퀴어'가 정치적으로 재정의된 단어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겠죠. 이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느끼는 감정은 정의되거나 분류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그 감정의 진실성과 깊이입니다.
이렇게 경계선이 깨지고 규칙이 사라지자, 영화는 굉장히 행복해집니다. 사람들의 관계는 평등해지고 시스템의 억압도 사라지지요. 물론 지상의 문제점은 여전히 남고 이들도 그 때문에 계속 고통받겠지만, 영화가 끝날 무렵엔 거의 유토피아와 같은 가족 공동체가 만들어져요. 그 때문에, 아무리 설교를 하지 않는 척 해도 영화는 상당히 정치적이 됩니다. 가끔은 대안가족을 홍보하는 선전물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특히 모든 것들이 정리되는 세 번째 에피소드에서는요. 이 부분은 조금 더 다듬었어도 좋았을 걸 그랬습니다.
영화의 전체적인 스타일은 작년에 나온 민규동의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보다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에 더 가깝게 느껴집니다. 수퍼 16밀리로 찍은 핸드 헬드 촬영의 유려함이나 종종 삽입되는 초현실주의적 터치를 보다 보면 향수가 느껴질 정도지요. 영화가 시간을 다루는 방식도 전작과 유사한 구석이 있습니다.
배우들의 앙상블은 이 영화에서 가장 좋은 부분입니다. 모두 잘하고 있지만, 진짜로 재미있는 건 배우를 활용하는 방식의 차이입니다. 공효진과 고두심이 자신의 기존 페르소나를 최대한으로 활용하는 동안, 문소리는 자신의 '여배우' 연기를 상당히 지워낸, 조금은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연기를 하고 있고, 비교적 신인인 정유미의 경우 감독과 영화가 아직 탐사되지 않은 가능성을 최대한으로 활용하기 위해 문을 열어주는 식이죠. 이 영화가 발산하는 조용한 행복감은 아마 적절히 조율된 훌륭한 앙상블 속에서 자기 능력을 충분히 발휘한 배우들의 뿌듯한 느낌에서 나오는 것일 수도 있겠어요. (06/05/11)
DJUNA
기타등등
애비뉴엘에서 시사회를 했는데, 제가 있던 2관에선 쬐끄만
여자애 하나가 계속 쫑알거리고 콩콩거리면서 돌아다니더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