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제임스 앨가
James Algar
갈탄 브리지
Gaëtan Brizzi
폴 브리지
Paul Brizzi
헨델 부토이
Hendel Butoy
프랜시스 글레바스
Francis Glebas
에릭 골드버그
Eric Goldberg
돈 한
Don Hahn
피쇼테 헌트
Pixote Hunt

주연
스티브 마틴
Steve Martin
이착 펄만
Itzhak Perlman
퀸시 존스
Quincy Jones
베트 미들러
Bette Midler
제임스 얼 존스
James Earl Jones
펜 질리엣
Penn Jillette
텔러
Teller
제임스 레바인
James Levine
안젤라 랜즈버리
Angela Lansbury
웨인 올와인....미키 마우스
Wayne Allwine....Mickey Mouse
토니 안셀모....도널드 덕
Tony Anselmo....Donald Duck

0.

[환타지아]는 지금까지 나온 디즈니 애니메이션 중 가장 디즈니다운 애니메이션이었습니다. 그 사람 특유의 과도한 열정, 기술 집착, 어마어마한 스노비즘, 도전 정신... 이것들 중 어느 하나만 빠졌어도 2시간이 넘어가는 이 어처구니 없는 클래식 뮤직 비디오는 만들어질 수 없었지요.

정말 괴물같은 작품이 아닙니까? 어떻게 보면 실패를 작정하고 만든 영화 같습니다. 당시 사람들에게 이런 작품이 어필할 리가 없었어요. 2차 세계대전 운운은 핑계가 될 수 없습니다. 40년대는 할리우드의 진짜 전성기였으니까요. 일반 대중과 클래식 애호가 진영 양쪽에서 조금은 다른 의미로 사용된 '잘난 척 한다'는 공격은 좀더 진실에 가까운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보다 간단했습니다. 한마디로 40년대는 [환타지아]가 제공한 어마어마한 비주얼 공세를 견딜만큼 성숙한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환타지아]는 과거의 고전들을 어우르며 점잔을 빼고 있었지만 정작 형식과 스타일은 저 먼 미래에 닿아 있었습니다. 이 영화가 제대로 인기를 얻기 위해 2,30년이나 시간이 흘렀던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어요.

디즈니의 원래 계획은 조금씩 레파토리를 바꾸어 가며 [환타지아]를 끝나지 않는 거대한 영화로 끌어가려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런 목적으로 여러 단편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지기도 했어요.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왕벌의 비행]과 드뷔시의 [월광]을 배경음악으로 한 단편들은 저도 본 적 있습니다. 하지만 [환타지아]의 상업적 재난 때문에 이런 계획은 공중으로 붕 떠버렸어요.

[환타지아/2000]은 디즈니의 그런 소망이 뒤늦게 결실을 맺은 작품입니다. 물론 아주 디즈니가 의도한 바대로 되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원작의 [마법사의 제자]를 알처럼 품고 있는 이 클래식 뮤직 비디오는 디즈니가 마음 속에 품고 있었던 것과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겁니다. 일단 아이맥스 영화로 2000년에 전세계 개봉을 하는 어마어마한 수법 자체가 굉장히 디즈니적이지 않나요?

1.

오리지널 [환타지아]의 순수음악에 대한 설명이 흐르면서 베토벤 교향곡 제 5 번 "운명"의 유명한 제1악장이 시작됩니다. 이 음악에 사용된 이미지는 다양한 색깔의 삼각형들입니다. 둘씩 짝을 지어 날아다니는 삼각형들은 거의 나비나 다름없습니다. 순수음악으로 "운명"을 다루려고 했다면 아주 정곡을 찌른 이미지는 아니었지요. 원작의 [토카타와 푸가]보다는 훨씬 덜 추상적인 작품입니다.

추상성, 스토리를 떠나서도 이 작품은 아주 성공적은 아닙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이 나비들이 그렇게까지 5번 교향곡의 스타일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5번 교향곡의 거창함에 비해 나비들은 너무 가벼워 보입니다. 이 작품을 위해서는 보다 묵직한 오브젝트들이 필요했어요. 5번 교향곡의 1악장만 슬쩍 잘라내어 견본으로 소개하는 방법 역시 그렇게 맘에 들지 않는군요.

2.

스티브 마틴이 등장해서 농담을 늘어놓지만, 곧 보다 믿음직한 해설자인 이작 펄만에게 자리를 빼앗깁니다. 이작 펄만의 소개가 끝나면 오토리노 레스피기의 모음곡 [로마의 소나무]가 이어집니다.

영리하게도 영화는 로마나 소나무와는 전혀 상관 없습니다. 대신 우리 눈 앞에 떠오르는 것은 극지의 바다와 하늘을 날아다니는 거대한 고래들입니다.

아이맥스 체험을 하지 못한 게 가장 억울해지는 에피소드죠. 정말 아이맥스로 봤으면 굉장했을 겁니다. 멋진 에피소드에요. 디즈니식 귀여움이 종종 감상을 방해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겠지만, 그 정도야 이해해줄 수도 있죠. 레스피기의 음악도 그렇게까지 장중하기만 한 작품은 아니니까요. 음악은 디즈니식 아기 고래에 어울리는 가벼운 부분도 상당히 많이 포함하고 있습니다.

3.

퀸시 존스의 해설이 끝나면 [랩소디 인 블루]의 음악에 맞추어 알 허쉬펠트의 일러스트에서 튀어나온 듯한 캐릭터들이 1930년대의 뉴욕을 질주합니다. 드러머가 되고 싶어하는 흑인 노동자, 호사스런 아내 때문에 고생하는 뚱뚱한 공처가, 수많은 과외 수업 때문에 애를 먹는, 어딘지 뉴요커 버전 마들린느를 연상시키는 작은 소녀, 그리고 직업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실업자 남자.

허쉬펠트 식 간결한 화법 때문에 이 에피소드는 다른 에피소드들에 비해 이질적인 느낌이 강한 편입니다. 그러나 원래 [환타지아/2000]는 원작 [환타지아]와는 달리 에피소드의 스타일 차가 꽤 나는 편이라, 그렇게까지 어색하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이런 식의 간결한 스타일이 디즈니에서 완전히 떨어져 있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6,70년대의 디즈니 스타일과 비슷하기도 하거든요.

재미있기도 해요. 네 주인공의 이야기는 비교적 진부한 편이지만, 원래 우리는 이런 식의 '도시 조망' 이야기에서 그런 진부함을 기대합니다. 네 명의 캐릭터는 각자의 방식으로 귀엽고 30년대 뉴욕 관광 가이드라는 의무도 상당히 잘 처리한 편입니다.

단지 [랩소디 인 블루]라는 음악과 영상이 얼마나 잘 어울렸는지는 모르겠군요. 영화는 음악의 리듬과 라인을 휼륭하게 따라갑니다만, 허쉬펠트의 간결한 그림은 거시윈 음악이 가진 끈끈하고 나른한 느낌과 잘 어울리지 않는 듯합니다.

참, 조지 거시윈 자신이 카메오로 잠시 등장합니다. 소녀가 피아노 교습을 받고 있는 건물의 바로 윗층에서 피아노를 치고 있지요!

4.

배트 미들러가 실현되지 못한 몇몇 계획들을 소개한 뒤 (카이 닐센의 아이디어가 실현되지 못한 건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쇼스타코비치의 피아노 협주곡 제2번에 맞춘 한스 크리스찬 아네르센의 [외다리 병정]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하지만 영화의 내용을 보면 [외다리 병정] 이야기보다는 스트라빈스키의 [페트루슈카] 줄거리에 액션 영화 플롯을 가미한 듯 해요.

두 번째 에피소드와 함께 컴퓨터 그래픽이 가장 강한 에피소드입니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많은 분들이 지적하신 발레리나의 유려한 동작입니다. 그래픽이 강한 작품인데도 불구하고 배경으로 쓰인 셀 애니메이션의 조화가 훌륭하다는 점도 지적해야겠군요.

그러나 너무 완벽한 해피엔딩을 깐 액션 영화식 플롯은 아네르센이 쓴 원작의 시적 아름다움을 좀 망쳐놓는 듯 합니다. 해피엔딩까지는 용서해줄 수 있지만 보다 다른 식의 접근법을 쓰는 게 더 좋았을지 몰라요.

5.

제임스 얼 존스가 특유의 장중한 목소리로 생상의 [동물의 사육제]를 소개합니다. 그러나 그의 엄숙한 소개는 뒤늦게 날아온 대사 변경으로 코미디가 됩니다.

이 에피소드는 [환타지아/2000]에서 가장 경쾌한 작품으로 일종의 디베르티스망 역할을 하는 작품입니다. [동물의 사육제]의 [피날레]에 음악에 맞추어 일단의 홍학들이 짧지만 멋진 쇼를 벌이는 거죠.

줄거리는 간단해요. 홍학 한 마리가 요요에 재미를 붙이자, 다른 집단주의자 홍학들이 그를 왕따시키려고 한다는 거죠. 물론 그 홍학은 결코 새로 붙인 취미를 버리려 하지 않고, 그 결과 폭력적인 대결이 펼쳐집니다. 전체 영화 중 가장 맘에 드는 스토리를 가진 에피소드입니다. 새로 만든 에피소드 중 가장 '재미있는' 에피소드이기도 하고요.

6.

펜과 텔러가 마술과 사기에 대해 간단한 강연을 펼친 뒤 오리지널에 수록되었던 [마법사의 제자]를 소개합니다. 아시다시피 이 에피소드는 여러 모로 중요한 작품입니다. 성형 수술을 받은 미키 마우스가 처음으로 등장한 장면이기도 하고, [환타지아]라는 영화의 아이디어가 싹튼 바탕이기도 하니까요. [환타지아]라는 영화는 사실 [마법사의 제자] 에피소드를 만들기 위해 스토코프스키와 디즈니가 상의하다 발전시킨 작품입니다.

좋은 뉴스는 이 멋진 에피소드가 반세기가 넘은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전혀 낡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나쁜 뉴스는 이 에피소드가 여전히 이 영화에서 가장 훌륭한 부분이라는 것이죠. 왜일까요? 아마 [마법사의 제자]가 가장 덜 실험적이고 고전적인 작품이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에피소드가 그렇게 근사했던 것은 음악의 스토리가 분명했기 때문이기도 하거든요. 폴 뒤카의 음악에 아이디어를 제공했던 괴테의 시는 처음부터 끝까지 분명하고 극적인 청사진을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그 결과 디즈니 사에서는 클래식 뮤직 비디오이면서도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를 가진 액션 판타지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환타지아/2000]의 다른 음악들은 폴 뒤카의 음악처럼 구체적이지 않지요.

7.

스토코프스키와 인사를 나눈 뒤, 미키 마우스는 제임스 레바인에게 달려갑니다. 레바인이 해설을 하는 동안 미키는 극장 이곳 저곳을 누비면서 도널드를 찾아다닙니다. 이 부분은 아마도 입체 음향을 이용한 가장 유쾌한 농담으로 영화사에 길이 남을 듯 하군요. 미키가 제 등 뒤에서 '도널드, 너 어디 있니?'라고 할 때는 모두들 배꼽잡고 웃었습니다. 미키와 도널드 부분만 더빙한 것도 이유가 있더군요.

이어서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 시리즈에 맞추어 노아의 방주 이야기를 펼쳐집니다. 진짜 노아는 따로 있지만 노아가 했을 법한 일들을 하는 주인공은 바로 도널드 덕입니다. 여기에는 서로가 방주에 타지 못했다고 생각하면서 괴로워하는 도널드 덕과 데이지 덕의 애타는 러브 스토리가 있습니다. 물론 방주에 오르는 동물들을 놀려대는 유니콘과 같은 전설상의 동물들이나, 방주에 오르는 오리 두 쌍을 바라보고 어리둥절해하는 도널드 덕과 같은 유쾌한 농담들도 있습니다.

훌륭한 애니메이션입니다. 하지만 [마법사의 제자]보다는 떨어지는군요. 가장 큰 원인은 음악 선정에 있습니다.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 시리즈는 훌륭한 음악입니다. 하지만 화면에 펼쳐지는 영화 스토리에 그렇게까지 완벽하게 맞아 떨어지지는 않아요. 어딘지 모르게 사전 녹음된 무성 영화 배경 음악처럼 붕 뜬 듯한 느낌입니다.

8.

안젤라 랜즈버리의 소개에 이어 마지막 에피소드인 스트라빈스키의 [불새]가 이어집니다. 물론 이 에피소드도 오리지널 [불새] 발레 줄거리와 별 상관 없어요. 영화는 봄의 요정 쯤 될 듯한 영적 존재가 겨울 동안 잠들었던 대지를 깨우면서 시작합니다. 하지만 요정은 그만 화산 속에 숨어 있던 괴물을 건드리고 그 결과 화산이 터져 주변은 쑥대밭이 되지요. 그러나 요정은 그 잿속에서 다시 살아나고 산은 다시 생명으로 넘쳐 흐릅니다.

어딘지 모르게 일본 애니메이션의 영향이 강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걸 잊어도 될만큼 이미지의 힘은 강합니다. 문제가 있다면 이미지가 아니라 페이스입니다. 스토리의 흐름이 너무 짧아서 죽음과 부활이라는 거대한 소재와는 잘 안 맞는 것 같더군요. [불새] 모음곡의 원래 길이를 생각해보면 충분히 커버할 수 있는 단점이었습니다.

화산의 악마가 '새'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건 재미있더군요. 결국 이 에피소드에 '불새'가 나오기는 했습니다!!!

9.

[환타지아/2000]은 [환타지아]처럼 고전이 될 수 있을까요?

흠... 따로따로 물어보죠. 과연 이 영화에는 [마법사의 제자]에 비길만한 박진감 넘치는 애니메이션이 있었나요? 그런 것 같지는 않군요. [민둥산의 하룻밤]에 비길만한 스펙타클은 있었나요? [불새]가 그 비슷한 수준까지 간 것 같군요. [시간의 춤]에 비길만한 코미디는 있었나요? 길이는 짧지만 [동물의 사육제]가 그만한 코미디는 제공해주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 과연 [환타지아/2000]은 [환타지아]만큼 음악과 애니메이션이 혼연일치를 이룬 작품일까요?

그게 그런 것 같지가 않습니다. 오리지널 음악에 대한 존경심으로 가득 차 있던 원작과는 달리 [환타지아/2000]는 클래식 음악을 단지 배경음악으로 쓰고 있습니다. 특히 [외다리 병정]과 [위풍당당 행진곡]의 경우 음악의 가벼움이 심합니다. 이 영화에서 클래식 음악들은 말 그대로 영화 음악입니다. 전체적으로 영화 자체도 가벼워져 버렸어요.

중간중간에 끼어든 유명인사들의 해설은 어떨까요? 뭐 가끔은 재미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너무 가볍다는 생각도 들고, 과연 그 유명인사들이 영화에 사용된 음악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의심하게 되기도 합니다.

[환타지아/2000]은 훌륭한 스펙타클입니다. 하지만 [환타지아]라는 영화의 원래의 의도를 생각해보면 자기 역할을 충분히 했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00/08/18)

DJUNA

기타등등

영화가 끝나고 엔드 크레딧이 다 올라가면, 여전히 카메라의 시선을 끌려고 필사적으로 애를 쓰는 스티브 마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