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웨스 앤더슨 Wes Anderson

주연
조지 클루니....미스터 폭스
George Clooney....Mr. Fox
메릴 스트립....미시즈 폭스
Meryl Streep....Mrs. Fox
제이슨 슈와츠먼....애쉬
Jason Schwartzman....Ash
빌 머레이....오소리
Bill Murray....Badger
월레스 월로다스키....카일
Wallace Wolodarsky....Kylie
에릭 체이스 앤더슨....크리스토퍼슨
Eric Chase Anderson....Kristofferson
마이클 갬본....프랭클린 빈
Michael Gambon....Franklin Bean
윌렘 대포....쥐
Willem Dafoe....Rat
오웬 윌슨....스킵 코치
Owen Wilson....Coach Skip
자비스 코커....피티
Jarvis Cocker....Petey
웨스 앤더슨....족제비
Wes Anderson....Weasel

미스터 폭스

[판타스틱 Mr. 폭스]의 원작은 로알드 달의 동명 동화책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멋진 여우씨]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있지요. 글씨가 큼직큼직한 저학년용 이야기책으로 로알드 달 특유의 뻔뻔스러움과 직설법이 그대로 드러나는 소품이죠. 특히 아이들의 단순한 욕망을 어떤 교훈 없이 그대로 표출시키는 달 특유의 태도는 노골적입니다. 소설 속의 여우씨가 만든 판타지 세계는 아늑한 지하 공간과 못된 농부들로부터 빼앗은 음식들로 구성된 일종의 게으름쟁이 왕국으로, 컴퓨터와 비디오 게임 이전 세대의 아이들에게는 낙원과 같은 곳이었을 겁니다. 물론 이건 초콜렛 바의 역사도 교과서에서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한 달 자신의 취향과 무관하지 않겠죠.

이런 작품을 웨스 앤더슨이 영화화한다? 그것도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으로? 어떻게 본다고 해도 원작에 충실한 작품이 나올 리는 없겠죠. 앤더슨은 결코 달처럼 난폭하고 직설적인 인물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는 차갑고 조용한 위트의 전문가입니다. 감정을 드러내는 걸 좋아하지 않고 정적이고 차분하죠. 바로 그런 노골적인 대조 때문에 이 계획은 환상적일 수 있었고 실제 결과물도 바로 우리가 기대한 그런 모습입니다. 단지 원작을 읽은 아이들이 이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군요. 전 원작을 읽은 애들과 영화를 봤는데, 기대와 너무 달랐는지 반응이 좀 멍하더군요. 여우들의 대화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는 영어권 아이들은 이 영화에 호의적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여간 앤더슨은 로알드 달의 이야기를 비교적 충실하게 따라가면서도 달의 원작에 있는 직설법을 거의 완전히 도려냈습니다. 스토리에 비교적 충실하기 때문에 그 대조가 더 잘 들어오죠. 한 번 캐릭터들을 볼까요? 달의 원작에서 주인공들은 전형적인 동화 속 말하는 동물들입니다. 하지만 앤더슨의 주인공들은 컬럼니스트, 부동산 중개업자, 변호사로 일하며 교양있는 21세기 미국인처럼 말합니다. 여기서 그들의 직업은 중요합니다. 이들은 거의 모두가 3차 산업 종사자예요. 1차 산업 종사자인 악당 농부들(이들은 원작과 마찬가지로 60년대의 영국 시골 사람들입니다)이 더 자연에 가까운 존재들이죠. 시작부터 아이러니인 겁니다.

여전히 주인공 여우씨가 농장의 닭을 잡지 않느냐고요? 네, 그렇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는 그냥 본능에 따르기만 하지는 않습니다. 그 본능을 설명하고 정당화하고 동기를 만들기 위해 실존주의 철학을 동원해요. 여기서 중요한 건 '실존'이 아니라 '철학'인 겁니다. 이들은 그 어느 것도 자연 그대로 행하지 않아요. 지적인 분석과정을 동원하지요. 농부의 창고에서 끝나는 원작의 결말을 연장해서 슈퍼마켓의 약탈로 끝나는 결말(이 역시 로알드 달이 사용하지 않은 초고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합니다만) 역시 그 인공성을 확장합니다. 그들이 드문드문 표출하는 동물적인 난폭함도 이 인공성을 오히려 과장할 뿐입니다. 그 증거로 그들은 끝까지 자신의 야수성을 인정하지 않지요. 거의 제임스 조이스적인 후반부의 에피파니 장면에서도 그들은 그 야수성에 동참하지 않습니다. 멀리서 바라보고 경탄할 뿐이지요.

여기에서 여러 의미를 끌어낼 수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건 대조효과입니다. 앤더슨의 거의 모든 영화들은 이런 대조에 바탕을 두고 있었죠. 멜로드라마틱할 수도 있고 비극적일 수도 있는 사건들을 그리면서 그에 수반되는 감정을 최대한으로 제거하고 그 빈자리에 앤더슨 특유의 건조한 위트를 추가하는 것 말입니다. 로알드 달의 난폭한 동화책을 각색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가장 앤더슨적인 행위입니다. 내용과 스타일만 따진다면 이렇게 거리가 멀 수가 없으니까요.

그는 이를 위해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을 사용했는데, 이렇게 어울릴 수가 없습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동물들은 거의 완벽한 앤더슨 영화 연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도 당연한 것이, 앤더슨 영화에는 복잡한 얼굴 근육 연기가 거의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될 수 있는 대로 무표정을 고수하고 대사의 침착함을 유지만 해도 반 이상 성공하는 연기인데, 앞부분 절반은 모피를 입힌 인형들이 완벽하게 해주죠. 나머지 절반은 앤더슨의 의도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는 할리우드 배우들의 몫이고요. 아, 도대체 어떤 사람이 조지 클루니만큼 여우스러울 수 있겠습니까?

영화는 예쁩니다. 수공업적인 화면 질감은 그냥 사랑스럽습니다. 특히 애니메이션 과정 중 조금씩 움직이는 여우의 털은요. 이 장르는 앤더슨과 잘 맞습니다. 그가 추구하는 완벽한 구도와 평면성이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에 들어오자 오히려 빛을 발하는 거죠. 초반부의 닭 도둑질 장면의 슬랩스틱은 앤더슨 농담을 장르식으로 확장한 것이라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가 촬영장에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고 뒷말이 많다지만 이처럼 앤더슨의 개성으로 완벽하게 무장한 영화를 보면서 그가 게을렀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10/01/04)

DJUNA

기타등등

말하는 동물들이 나오는 영화들이 대부분 그렇듯, 이 영화의 개들은 이번에도 차별받습니다. 심지어 쥐도 말을 하는 세계에서 개만 멍멍 짖는 생각없는 동물이라는 게 말이 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