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에이미 헤커링 Amy Heckerling

주연
숀 펜....제프 스피콜리
Sean Penn....Jeff Spicoli
제니퍼 제이슨 리....스테이시 해밀턴
Jennifer Jason Leigh....Stacy Hamilton
저지 라인홀드....브래드 해밀턴
Judge Reinhold....Brad Hamilton
로버트 로매너스....마이크 데이몬
Robert Romanus....Mike Damone
브라이언 배커....마크 '랫' 래트너
Brian Backer....Mark "Rat" Ratner
피비 케이츠....린다 바렛
Phoebe Cates....Linda Barrett
레이 왈스턴....핸드 선생
Ray Walston....Mr. Hand
포레스트 휘테이커....찰스 제퍼슨
Forest Whitaker....Charles Jefferson

1.

제프와 핸드 선생

이처럼 오랜 세월이 지난 뒤 [리치몬드 연애소동 Fast Times at Ridgemont High]를 다시 보는 기분은 무척 새롭습니다. 그 옛날에는 피비 케이츠가 빨간 비키니를 입고 나오는 영화라는 것으로만 알고 있던 영화에 이처럼 낯익은 얼굴들이 숨어 있다니요. 니콜라스 케이지, 에릭 스톨츠, 앤소니 에드워즈, 제니퍼 제이슨 리, 숀 펜, 포레스트 휘테이커... 정말 끝도 한도 없습니다. 게다가 이 영화의 각본과 원작을 쓴 풋내기 고등학생은 바로 카메론 크로우가 아닌가요? 감독인 에이미 헤커링의 이름을 언급하기도 전에 숨이 찰 지경입니다.

게다가 그 막강한 80년대 유행은 어떤가요? 젤리그나 패크맨과 같은 구식 비디오 게임, 여학생들의 부풀린 헤어스타일, 루빅스 큐브, 극도로 야스러운 80년대식 음악 기타등등 기타등등. 당시엔 최첨단을 달리던 것이었겠지만 지금은 거의 [웨딩 싱어]를 보는 것과 같습니다. 아, 80년대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은 왜 그렇게 붕뜬 먼지를 뒤집어 쓴 것처럼 보이는 걸까요?

2.

사람들은 앞으로도 [리치몬드 연애소동]을 수많은 재능있는 인재들에게 문을 열어준 작품으로 먼저 기억할 것입니다. 그러나 영화가 자기 힘으로 버텨주지 않았다면 과연 제니퍼 제이슨 리나 숀 펜과 같은 배우들이 인정을 받을 수 있었을까요?

흠, 생각해봅시다. [리치몬드 연애소동]은 대충 어떤 영화인가요? 줄거리를 요약하면 '졸업반인 일단의 틴에이저들이 주로 연애와 섹스에 대해 생각하며 어그적 어그적 돌아다닌다'쯤 될 것 같습니다.

우선 눈에 뜨이는 것은 그 솔직함입니다. [리치몬드 연애소동]은 R등급 영화입니다. 영화는 태평스러운 어조로 상당히 노골적인 소재들을 시침 뚝 떼고 건드리는데, 그 강도가 상당히 높습니다. 피비 케이츠나 제니퍼 제이슨 리의 토플리스 장면처럼 눈요기 거리 수준에서 멈추는 것도 있지만 저지 라인홀트가 피비 케이츠의 비키니 입은 모습을 훔쳐보며 화장실에서 자위행위를 하는 장면은 상당히 놀랍습니다. 제니퍼 제이슨 리와 피비 케이츠가 벌이는 유명한 '당근 장면'도 비슷한 수준입니다. 낙태와 같은 소재를 감정 섞지 않고 코미디에 쑤셔넣는 재주도 놀랍고요.

그렇다고 단순히 80년대 식 악취미로 몰아붙이자니 뭔가 이상합니다. 사실 카메론 크로우와 에이미 헤커링은 그냥 섹스에 정신이 나간 십대들을 다루는 게 아닙니다. 섹스에 정신이 나간 십대들로 구성된 사회를 거의 인류학자와 같이 냉철한 눈으로 연구하는 거죠. 영화는 극히 바보같은 짓거리들을 다룬 코미디지만 작가와 감독은 그들을 위에서 차가운 눈으로 관찰하고 있습니다.

십대들에 그냥 쓸려가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냉소적으로 놀려대는 것도 아닌 그 중립적 시선이 과연 어디에서 왔을까요? 카메론 크로우에서 나온 디테일이 에이미 헤커링에 의해 교정된 것일까요?

하여간 그런 관점은 영화에 묘한 진실성을 불어넣습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필수적인 전형성을 지키고 있으면서도 일반적인 십대 영화에 나오는 스테레오 타입과는 또 다릅니다.

그 결과 재미있는 결과들이 나옵니다. 문제아 학생과 괴짜 선생으로 나오는 숀 펜과 레이 왈스턴의 황당한 대결은 가장 인상적입니다. 섹스와 로맨스 사이에서 고민하는 제니퍼 제이슨 리의 캐릭터가 그렇게 입체적일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고요.

[리치몬드 연애소동]은 80년대 '십대 영화' 관객들을 겨냥한 영화였지만 아무래도 요새 보는 재미가 더 각별합니다. 유명한 배우들의 젊은 시절의 모습을 보는 재미나 80년대의 촌스러운 유행을 즐기는 재미 때문만은 아닙니다. 진짜 이유는 영화에 나오는 80년대의 촌스러운 십대들로부터 어느 정도 거리를 둘 수 있게 된 현대의 관객들이 헤커링과 크로우의 시점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요새 피비 케이츠가 뭘 하고 있나 궁금하군요. 그냥 케빈 클라인의 아내 노릇에 만족하고 있는 걸까요? (99/04/28)

DJUNA

기타등등

에이미 헤커링의 십대 문화에 대한 관심은 [클루리스]에서 보다 세련된 방식으로 표현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