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아톰 에고이안 Atom Egoyan

주연
밥 호스킨스....힐디치
Bob Hoskins....Hilditch
아시네 칸지안....갈라
Arsinée Khanjian....Gala
일레인 캐시디....펠리시아
Elaine Cassidy....Felicia
피터 맥도널드....조니
Peter McDonald....Johnny
제라드 맥솔리....펠리시아의 아버지
Gerard McSorley....Felicia's Father
마리 스태포드....펠리시아의 증조모
Marie Stafford....Felicia's Great Grandmother
대니 터너....어린 힐디치
Danny Turner....Young Hilditch

(스포일러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힐디치와 펠리시아

윌리엄 트레버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아톰 에고이안의 [펠리시아의 여정]은 현대판 빨강모자 이야기입니다. 보다 솔직히 말하면 연쇄살인마 이야기지요. 이 영화에서 밥 호스킨스가 연기한 힐디치는 젊은 여자들만 골라 살해하는 연쇄살인마입니다. 일레인 캐시디가 연기한 펠리시아는 그의 다음 희생자로 점 찍힌 상태고요. 혹시 몰라서 스포일러 경고를 걸긴 했는데, 그럴 필요까지 있는지는 모르겠군요. DVD 커버에도 나와있는 정보거든요.

생각해 보니 스포일러일 수도 있겠습니다. 아무런 정보 없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힐디치를 그렇게까지 위험한 존재로 받아들이지는 않을 거예요. 조금 괴팍한 구석이 있긴 해도 친절하고 깔끔하고 일에 열심인 중년 아저씨로 보겠죠. 그리고 그건 사실입니다. 그는 정말로 친절하고 깔끔하고 일에 열심인 중년 남자예요. 심지어 그의 살인행위도 그에겐 그런 친절한 행동의 일부입니다.

우린 그가 펠리시아를 대하는 태도에서 그가 이전에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영국이 처음인 이 아일랜드 아가씨에게 약간의 거리를 두면서 친절하게 대합니다. 길을 가르쳐주고 머물 곳을 알려주는 식이죠. 그러다 차도 태워주고 있지도 않은 아내 이야기도 들려주고 인생 상담도 해주다가 애의 돈을 몽땅 훔치고 남자친구에 대한 정보를 독점한 뒤, 그 애가 어쩔 수 없이 자기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거예요. 그리고 그 모든 기만 행위의 최종 목적지는 살인입니다.

끔찍하죠? 하지만 영화는 힐디치를 괴물로 만들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이 사람은 환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된 거야!'라고 외치며 관객들의 동정을 구하지도 않아요. 영화는 차분하게 힐디치의 과거를 플래시백으로 보여주며 그의 과거가 어떻게 지금의 힐디치를 만들었는지 들려줍니다. 그게 정확한 정보인지는 모르겠어요. 완전하지도 않고요. 하지만 평생 동안 유명한 텔레비전 요리 프로그램의 호스트였던 어머니의 그늘 밑에서 산 이 외로운 남자를 이해하는 건 예상 외로 쉽습니다.

관객들에게 펠리시아는 힐디치를 이해하기 위한 문으로 존재합니다. 그렇다고 펠리시아에게 자기 이야기가 없는 건 아니죠. 극단적인 아일랜드 민족주의자인 펠리시아의 아버지는 아직도 두 나라가 전쟁이라도 하고 있는 것처럼 딸을 가르칩니다. 그러다 딸이 임신을 했고 남자 친구라는 녀석은 영국군에 입대하려고 영국으로 튀었다니 그 인간이 어떻게 반응했을지 생각해보세요. 펠리시아는 딸에게 창녀라고 욕을 퍼붓는 아버지를 뒤로 하고 남자친구를 찾으러 영국에 옵니다.

힐디치와 펠리시아는 공통점이 예상외로 많습니다. 일단 모두 부모의 그늘 밑에 깔려 있는 사람들이죠. 둘 다 시대에 한참 뒤떨어진 사람들이기도 하고요. 단지 이들의 행동 방향은 다릅니다. 힐디치는 어머니의 그늘과 어린시절에 자기 자신을 자발적으로 가두었지만, 펠리시아는 아버지의 억압과 그늘에서 탈출하려 하는 중이죠. 거의 이상적인 극적 관계입니다. 너무 그럴싸해서 이야기를 끌어가기 위해 다른 캐릭터가 필요가 없을 정도예요. 둘은 공명하고 화음을 이루면서도 대립하고 충돌합니다.

둘 중 한 명이 나락으로 떨어지면서 끝날 수밖에 없는 갈등구조에도 불구하고 [펠리시아의 여정]은 담담하고 조용하며 따뜻하기까지 한 영화입니다. 힐디치의 최종 의도는 불쾌하지만 이 외로운 두 사람이 나누는 감정은 진정성으로 넘쳐 흘러요. 거의 아름답기까지 할 정도랍니다. 아마 그래서 더 불쾌하게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거예요. 절대로 연쇄살인마 영화의 공식에 어울리는 질감은 아니니까요.

연쇄살인마 영화의 공식엔 어울리지 않을지 몰라도 아톰 에고이안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엔 잘 어울립니다. 그 왜, 이 사람 특유의 무표정하고 가라앉고 덤덤한 느낌 있잖아요. 세상 모든 것들은 같은 잣대로 재는 것 같은. 그는 [펠리시아의 여정]에서도 같은 어법을 그대로 쓰고 있는데, 무척 효과적입니다. 물론 밥 호스킨스와 일레인 캐시디라는 두 배우가 그들이 연기하는 캐릭터들을 근사하게 소화해내지 않았다면 어림없는 일이었겠지만요. 전 캐시디의 캐스팅을 조금 더 높게 평가하고 싶어요. 원래부터 실력이 보장된 저명한 배우였던 호스킨스와는 달리 캐시디는 당시 거의 무명이었으니까요. (아일랜드 악센트가 어쩜 그렇게 예쁘던지요!) (06/01/10)

DJUNA

기타등등

이번에도 아시네 칸지안이 나와요. 밥 호스킨스의 엄마로요. 굉장히 찐한 프랑스어 악센트로 대사를 읊는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