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알렉스 드 라 이글레시아 Álex de la Iglesia

주연
기예르모 톨레도....라파엘
Guillermo Toledo....Rafael
모니카 케르베라....루르드스
Mónica Cervera....Lourdes
루이스 바렐라....돈 안토니오
Luis Varela....Don Antonio
페르난도 테헤로....알론조
Fernando Tejero....Alonso
키라 미로....록산
Kira Miró....Roxanne
엔리케 빌렌....캄포이 경위
Enrique Villén....Inspector Campoy

라파엘

이 영화의 제목 [Crimen ferpecto]는 맞춤법이 틀려 있습니다. ferpecto에서 F와 P의 위치가 바뀌어 있지요. 영화 속에서는 비디오 가게 점원이 실수로 영화 제목을 잘못 타이프한 것으로 나옵니다. IMDb에 따르면 [아스테릭스와 오벨릭스]의 특정 에피소드에 대한 오마주라고 하고요. 하여간 '완벽한'의 맞춤법을 일부러 망가뜨리는 장난은 이 영화의 내용을 미리 알려주는 역할을 합니다. 완벽한 삶을 살고 싶어하지만 운명의 장난에 의해 필연적인 파국을 맞는 한 남자 이야기 말이죠.

영화의 내용은 한마디로 [콜롬보] 에피소드에 빠진 알피 엘킨스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알피처럼 종종 카메라를 바라보며 독백을 늘어놓는 주인공 라파엘은 자기 잘난 맛에 사는 바람둥이 독신남입니다. 직장인 백화점에서도 인기가 좋고 세일즈 능력도 탁월한 그의 일차 목표는 지금 공석으로 남아 있는 지배인의 자리에 오르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자리는 경쟁자인 돈 안토니오에게로 돌아가고 라파엘은 해고당할 위기에 처합니다. 더 나쁜 건 그와 몸싸움을 벌이던 돈 안토니오가 그만 사고로 죽어버렸다는 거죠. 그보다 더 나쁜 건 같은 직장에 일하는 점원 루르드스가 그걸 모두 목격하고 있었다는 거고요. 라파엘은 지옥에 빠집니다. 말단 직원이 협박으로 자길 짓누르는 것도 끔찍하고 그런 여자와 억지로 결혼해야 하는 것도 끔찍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더 끔찍한 건 그 여자가 못 생겼다는 거였죠.

굉장히 전형적인 도서추리물의 설정입니다. 시체 은닉, 목격자, 협박, 반격, 둔해 보이지만 은근히 눈치 빠른 민완 형사... 영화는 이 모든 장르 공식들을 빠짐없이 다룹니다. 물론 그러는 척하면서 딴 데로 빠지는 부분도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이 영화는 모범적인 장르영화입니다. 장르영화답게 목표도 이미 고정되어 있죠. 이어지는 난관을 주인공이 어떤 비도덕적인 도구를 이용해 빠져나오느냐, 또는 빠져나오려고 시도하느냐말입니다.

영화는 그만큼이나 모범적인 블랙 코미디이기도 합니다. 신체손상이나 시신모독을 이용한 농담들은 당연히 통과해야 하는 과정입니다. 죽은 자의 유령이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등장하는 것 역시 의무고요. 여기서 알렉스 드 라 이글레시아의 사디스틱한 일관성을 읽어내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이 영화에서 권력과 공포와 갈등의 근원은 외모입니다. 루르두스가 바람둥이 라파엘의 눈을 만족시킬만큼 예뻤다면 이만한 소동은 없었겠지요. 사실 루르두스나 그 캐릭터를 연기한 모니카 케르베라는 그렇게 유난을 떨 정도로 못 생긴 편은 아닙니다. 이 캐릭터가 자신감을 얻는 중후반부엔 개성적인 얼굴이라는 칭찬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발전하고 몸매도 좋죠. 그러나 라파엘은 결코 그런 여자와 함께 살면서 중산계층의 가족을 꾸밀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사회가 강요하는 외모지상주의'에 책임을 전가하는 동안에도 그는 어떻게든 루르두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합니다.

[Crimen ferpecto]는 볏을 세운 수탉처럼 으스대는 인간 남성이라는 동물에 대한 경쾌한 조롱입니다. 라파엘은 영화 내내 자신이 속해 있는 부류의 단점들을 정말 아무런 여과없이 폭로하고 다니죠. 그 때문에 영화는 종종 스페인어로 더빙하고 폭력을 과장한 [자니 브라보]의 에피소드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아마 이건 감독 자신의 키들거리며 늘어놓는 자기고백이기도 할 거예요. 라파엘은 우스꽝스러운 어릿광대이지만 그 솔직함 때문에 그만큼 쉽게 관객들이 동조할 수 있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러는 동안에도 그들은 라파엘이 겪는 끔찍한 수난을 구경하며 웃겠지만요.

전체적으로 영화는 빠르고 민첩합니다. 영화가 던지는 농담들도 꽤 많은 편이고 성공률도 높습니다. [Crimen ferpecto]은 숨쉴 여유를 주지 않는 빽빽한 코미디입니다. 기예르모 톨레도와 모니카 케르베라의 노골적인 연기는 결코 고상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신나고 재미있으며 정곡을 찌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중반 이후 조금 늘어져 보이는 건 알렉스 드 라 이글레시아가 다루는 이야기가 지나치게 장르 안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일 겁니다. 결국 그가 아무리 농담을 섞고 반전을 만들어도 탈출구가 그렇게 많지는 않은 거죠. 그 때문에 영화는 국제적인 아트하우스 영화광들을 위한 독특한 컬트 영화보다는 자국내 일반관객들을 위한 상업적인 내수용 영화처럼 보입니다. 물론 상업적인 내수용 영화를 만드는 건 죄가 아니죠. 이 정도로 성공했다면 더욱 그렇고요. 그래도 [액션 뮤턴트]나 [야수의 밤] 시절부터 이 감독을 따라왔던 팬들은 조금 실망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05/04/04)

DJUNA

기타등등

공중파 방영시 잘릴 부분이 두 장면 정도 있습니다. 하나야 그냥 자르고 넘어가면 되지만 다른 하나는 자르면 좀 허전하겠더군요. 라파엘의 캐릭터와 성격을 알려주는 꽤 중요한 정보가 나오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