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프레더릭 스테파니 Frederick Stephani

주연
버스터 크랩....플래시 고든
Buster Crabbe....Flash Gordon
진 로저스....데일 아든
Jean Rogers....Dale Arden
찰스 미들턴....밍 황제
Charles Middleton....Ming the Merciless
프리실라 로슨....오라 공주
Priscilla Lawson....Princess Aura
프랭크 섀넌....알렉시스 자코프 박사
Frank Shannon....Dr. Alexis Zarkov
리처드 알렉산더....바린 왕자
Richard Alexander....Prince Barin
잭 '타이니' 립슨....불탄 왕
Jack 'Tiny' Lipson....King Vultan
제임스 피어스....선 왕자
James Pierce....Prince Thun
듀크 요크 주니어....칼라 왕
Duke York Jr.....King Kala
시어도어 로치....대사제
Theodore Lorch....High Priest

데일과 플래시

1930년대 초, 미국 신문 만화계는 버크 로저스라는 만화 주인공에 열광하고 있었습니다. 500년 뒤에 깨어난 제1차 세계대전의 공군 영웅을 주인공으로 한 이 시리즈가 엄청난 히트를 거두자, 경쟁사인 킹스 피쳐즈에서는 [버크 로저스] 시리즈를 모방한 아류작을 내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들이 내민 작품은 [플래시 고든]이었습니다. 알렉스 레이몬드라는 젊은 만화가가 펜대를 잡은 이 작품은 자도프 박사라는 과학자가 만든 우주선을 타고 지구를 향해 날아오는 몽고라는 행성에 간 플래시 고든이라는 청년의 모험담이었습니다.

[플래시 고든]이 [버크 로저스]를 능가하는 대성공을 거두자 유니버설은 만화의 판권을 사들였습니다. 계획은 다소 소박했습니다. 요새 같으면 여름 블록버스터가 되었을 원작이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SF는 그렇게까지 인정받는 장르가 아니었으니까요. 유니버설에서 선보인 작품은 버스터 크랩이라는 전직 수영선수를 주연으로 내세운 13부작 시리즈였습니다.

영화의 스토리는 [플래시 고든] 신문 만화를 충실하게 따른 것이었습니다. 아까 대충 골격을 소개했지만 조금 자세히 설명하기로 하죠. 영화가 시작되면 세계는 지구와 충돌할지도 모르는 정체불명의 행성 때문에 공포에 질려 있습니다. 가족과 함께 세계 종말을 맞으려고 런던에서 뉴욕으로 날아가던 우리의 주인공 플래시 고든은 비행기가 추락하자 옆자리에 앉아 있던 데일 아든이라는 여자와 낙하산을 함께 타고 뛰어내리죠. 하필 그들이 떨어진 곳은 자코프 박사가 만든 우주선이 있던 곳이었는데, 과학자인 플래시의 아버지를 알고 있던 자코프 박사는 그들에게 우주 여행을 제안합니다. 자코프 박사의 우주선을 타고 정체불명의 행성에 도착한 그들은, 그 행성의 이름이 몽고이고, 밍이라는 이름의 사악한 황제가 통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요. 플래시 고든은 지구를 파멸에서, 몽고 행성을 밍 황제의 독재에서, 데일 아든을 밍 황제의 품안에서 구하기 위해 정말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바쁘게 싸우게 됩니다. 그러는 그의 뒤에는 첫눈에 그에게 반한 밍 황제의 딸 오라 공주, 몽고 행성의 적법한 후계자인 바린 왕자, 독수리 인간들의 왕인 불탄이 졸졸 따라다니고요.

이런 종류의 시리즈 영화들이 다들 그렇듯, [플래시 고든]도 극저예산 영화였습니다. 그들은 유니버설 사에서 만든 다른 영화들에서 끌어온 잡다한 세트들을 재활용했고 기존 영화의 클립들도 군데군데 가져와 슬쩍슬쩍 끼워넣었습니다. 물론 음악들도 다른 영화에서 가져온 것들이었고요.

특수 효과도 조잡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당시 기술 수준이 그렇게 높은 것은 아니었지만 저예산의 한계가 더 컸습니다. 우주선은 줄에 매단 60센티미터 짜리 나무 장난감이고, 불을 뿜는 용은 고무 옷을 뒤집어 쓴 스턴트맨, 상어 인간들은 수영 모자를 쓰고 발에 상어 지느러미 물갈퀴를 단 남자들이며, 플래시를 위협하는 거대한 문어는 해양 다큐멘터리 장면과 에드 우드 영화에나 나올 것 같은 뻣뻣한 고무 모형을 뒤섞은 것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당시 관객들은 그런 조잡함에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요새 관객들처럼 비교할만한 대상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그런 조잡함보다 중요한 것은 이 정신나간 만화 줄거리가 그들에게 소개한 환상이었습니다. 몽고 행성은 당시 사람들이 예절바르게 살짝 밀어놓고 있던 그들의 공상을 극도로 부풀린 곳이었습니다. 이국적이며 섹시한 팜므 파탈인 오라 공주에서부터 플래시에게 덤벼드는 괴물들과의 혈전에 이르기까지, [플래시 고든]이 제공했던 환상은 관객들의 이드를 마구 풀어놓았습니다.

이런 환상의 일부는 '정치적으로 공정해진' 현대 관객들의 신경을 건드리기도 합니다. 미녀들을 끌고 다니며 아무에게나 주먹을 날려대는 플래시 고든의 모험담은 상당히 남성우월적이고, 꼭 동양인처럼 생긴 밍 황제나 몽고 행성의 이름에는 황화론과 인종 차별의 흔적이 강하게 남아 있거든요.

영화는 세월이 지나면서 이전의 어필을 상당히 잃어버리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플래시 고든을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현대 관객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그는 웃기지도 않는 핫팬츠를 입은 덩치만 큰 금발 얼간이에 불과합니다. 그의 액션도 요새 관객들을 만족시킬만큼 다이나믹하지 않고요.

그러나 [플래시 고든]은 재미없는 영화일까요? 그렇다고는 못하겠습니다.

우선 영화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캠피한 매력을 새로 얻어갔습니다. 조잡한 특수 효과, 속보이는 스토리 전개, 노골적인 싸구려 느낌이 에드 우드의 영화가 주는 것과 같은 싸구려 매력을 잔뜩 풍기거든요. 현대 관객들이 보고 즐기는 [플래시 고든]은 30년대 관객들이 열광하며 보았던 [플래시 고든]과 꽤 다른 영화입니다.

그런 캠피한 느낌을 무시한다고 해도 [플래시 고든]은 여전히 재미있는 영화입니다. 놀랍게도 이 싸구려 연속극은 원래의 재미를 상당히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다보면 한 에피소드가 끝날 때마다 손에 땀을 쥐고 '과연 어떻게 될까? 과연 어떻게 될까?'하고 궁금해하게 되더란 말이에요. 아무리 그게 뻔한 트릭이라고 해도 생각보다는 힘이 센 모양입니다. 아직도 저같은 관객들에게도 먹히니까 말이에요. (01/10/22)

DJUNA

기타등등

DVD 타이틀은 [Flash Gordon: Space Soldier]라고 되어 있는데, 그 제목은 50년대 텔레비전 시리즈와 구별하기 위해 새로 붙인 제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