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캐롤 발라드 Carroll Ballard

주연
안나 파퀸....에이미 올든
Anna Paquin....Amy Alden
제프 다니엘즈....토머스 올든
Jeff Daniels....Thomas Alden
데이나 딜레이니....수잔 반즈
Dana Delany....Susan Barnes
테리 킨니....데이빗 올든
Terry Kinney....David Alden
홀터 그레이엄....배리 스틱랜드
Holter Graham.... Barry Stickland
제레미 래치포드....글렌 세이퍼트
Jeremy Ratchford....Glen Seifert

1. 제목

[아름다운 비행]의 원래 제목은 'Fly Away Home'입니다만 이 제목으로 결정된 건 개봉 바로 몇 개월 전입니다. 이 영화의 원작인 빌 리시먼의 책 제목은 'Father Goose'였습니다. 이 제목은 원작의 내용과 어울리지만 영화를 위해 쓰여진 각본과는 잘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영화는 제목없이 촬영된 뒤 나중에 'Flying Wild'라는 제목이 붙여졌지요. 그리고 봄 개봉 예정으로 광고까지 나갔습니다(미국에서 발매된 [주만지] 비디오 테이프에는 'Flying Wild'라는 제목으로 예고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 예고편의 Mpeg 파일을 다운받고 싶으시다면 여길 누르세요.)

그러다 제시카 두브로프 사건이 났지요. 영화사 사람들은 허겁지겁 개봉을 연기했고 이 영화는 가을 시즌에 'Fly Away Home'이라는 새 제목으로 개봉 되었습니다. 그게 또 이 나라에서 [아름다운 비행]이 되었으니 참 곡절많은 제목이지요?

하여간 [아름다운 비행]은 꽤 괜찮은 제목입니다. 어차피 우리나라 말로 직역하기 힘든 제목이라면 적절한 선에서 손을 봐주는 편이 좋겠지요. 일본식 제목 [구즈]보다야 훨씬 낫지 않습니까? 게다가 원제를 살린답시고 '플라이 어웨이 홈'이라고 쓰면 좀 지저분해 보이잖아요.

2. 거위와 기러기

명칭에 대해서도 할 말이 있습니다. 비교적 상식적인 수준인데 이상하게도 아직까지 아무도 언급을 안하는군요. goose의 번역어는 거위입니다. 그건 맞아요. 하지만 wild goose일 때는 사정이 다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 새를 '기러기'라고 하지요. 그러니까 영화에 등장하는 새들은 소위 캐나다 기러기라고 불리워지는 종입니다. :-)

3. 빌 리시먼

이 영화는 물론 픽션이지만 이 영화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사건의 상당 부분은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대충 이렇습니다. 캐나다에 빌 리시먼이라는 다소 정신 나간 화가 겸 발명가가 있었습니다. 그는 1993년에 자기가 직접 만든 울트라 라이트 비행기를 타고 캐나다 기러기를 캐나다에서 버지니아까지 이민시켜 화제가 되었지요.

이 모험은 [20/20] 프로그램으로 방영되었고 이후로 철새 이민 프로젝트는 아주 인기있는 연구대상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리시먼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가 얼마 전에 방영된 적이 있으므로 이런 프로그램을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는 낯익은 이야기일 겁니다.

리시먼은 말할 필요도 없이 토머스 알덴의 모델입니다. 이혼한 적도 없고 딸에게 그런 위험한 모험을 시킨 적도 없지만요. 나머지는 영화를 위해 각본가들이 붙인 것들이지요. 하지만 영화의 많은 부분이 리시먼의 집 근처에서 찍혔고 리시먼이 직접 제프 다니엘즈의 스턴트 더블까지 했으니 영화에 끼친 그의 입김은 상당한 셈입니다.

4. 아름다운 비행

[아름다운 비행]의 스토리는 헐리웃에서 만든 아동용 영화의 스토리들의 샘플들을 긁어 모아 뻔한 것들만 끼워맞춘 것 같습니다. 엄마 잃은 외로운 아이가 귀여운 동물들과 친구가 되고 그 과정에서 아빠와의 관계가 다시 가까워지고 주변에는 동물들을 괴롭히려는 못된 사람들이 있고 어쩌고 저쩌고... 결코 독창성으로 칭찬받을 수 있는 영화는 내용은 아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비행]은 그렇게 상투적인 티가 나지 않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가장 큰 이유는 재단 방식입니다. [프리 윌리]와 같은 영화와 비교하면 쉽게 드러납니다. [프리 윌리]에서는 소년과 범고래를 일단 끼워넣고 거기다가 간단한 줄거리를 첨가합니다. 하지만 [아름다운 비행]의 경우 순서가 반대입니다. 일단 빌 리시먼의 돈키호테와 같은 실제 비행이 있고 그 위에 픽션들이 추가된 거죠.

영화는 과정의 디테일을 대부분 실제 사건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약간 정신나간 사람들이 설쳐대는 실화들은 대부분 평범한 시나리오 작가들의 상상력보다는 풍요로운 법입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비행]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가 그 디테일입니다. 영화는 캐나다 기러기들과 Operation Migration에 대한 상당한 수준의 고급 정보들을 제공합니다. 그것도 단순 정보의 구두 나열이 아닙니다. 관객들은 그 정보들을 오감으로 체험할 수 있죠. 카일렙 드샤넬이 아름답게 묘사한 에이미와 기러기 새끼들의 첫 만남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말 한마디 없는 장면이지만 '각인'이 무엇인지 몸으로 느낄 수 있지 않습니까?

이러한 디테일들 때문에 [아름다운 비행]은 아동용 영화의 아주 고질적인 함정인 감상주의 속으로 쉽게 추락하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비행]은 온화하긴 하지만 감상이 아닌 행동에 대한 영화입니다. 그리고 약간 맛간 사람들의 오락가락 하는 아이디어들이 얼마나 세상을 풍요롭게 만드는지 예찬하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5. 캐롤 발라드, 카일렙 드샤넬

캐롤 발라드의 [블랙 스탤론]은 알게 모르게 이 나라에 꽤 여러 번 방영된 영화입니다. 제목이 생각이 안난다고 해도 검은 야생마를 키워서 레이스에 출전시키려는 할아버지와 손자의 이야기라고 말한다면 꽤 익숙한 사람들도 많을 겁니다. 할아버지로 나온 미키 루니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 거고요.

그의 [네버 크라이 울프]도 이 나라에 텔레비전을 통해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알래스카의 험악하지만 시적인 황무지 속에서 늑대들을 연구하며 살아가는 생물학자 이야기였지요.

이 정도면 캐롤 발라드라는 감독의 성격을 대충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자연과 인간과의 교감을 섬세하고 도취적인 화면으로 그려내는 자연예찬론자라는 거죠. 그의 초기 작품과는 성격에서 약간의 차이가 나지만 후기작 [바람과 야망]에서도 그런 면은 보입니다.

그러나 역시 발라드의 일관된 개성은 촬영감독 카일렙 드샤넬과의 공동 작업에서 꽃핍니다. [바람과 야망]에서 존 톨도 뛰어났지만 [아름다운 비행]이나 [블랙 스탤론]에서 드샤넬이 보여주었던 섬세한 아름다움과 톨의 대범한 터치를 비교해보면 역시 마음이 맞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

자꾸 같은 말을 되풀이 하게 되는데, 드샤넬의 방식은 '대자연'을 그려낸다는 사람들의 거창함과는 거리가 멉니다. 반대로 드샤넬은 적은 수의 대상을 세부적으로 파고드는 편을 선택합니다.

[아름다운 비행]에서 에이미의 창고 장면들에서 볼 수 있는 빛의 활용, 풀밭 사이를 어기적거리는 기러기 새끼들의 행렬, 대도시의 마천루 사이를 날아가는 에이미 일행의 모습들을 보세요(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 상황 자체는 등골이 오싹하죠.)

발라드의 영화는 거대한 자연에 대한 예찬보다는 인간과 특정 자연 대상간의 관계에 보다 집중하고 있으므로 드샤넬이 주는 감각적인 아름다움은 영화 전체와 잘 어울립니다. 게다가 그는 각본이 미처 구체적으로 지적하지 못한 에이미의 내면까지 덤으로 잡아내기까지 하니까요.

6. 각본

그렇다고 로버트 로다트와 빈스 맥퀸이 쓴 각본이 정말 나쁘지는 않습니다. 사실 일반적인 아동 영화보다 뛰어난 부분이 상당히 많습니다. 대립구조를 단순화시키면서도 극단적으로 선악을 구분하지 않고 (예를 들어 이 영화의 '악역'인 D.N.R. 관리도 단지 자기 일에 충실한 상상력이 다소 부족한 사람일 뿐 악인은 아닙니다) '인간적인 요소'를 도입한답시고 울음바다를 만들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매스컴의 소란을 묘사하는 데도 비교적 냉정한 편이며 노골적인 환경 보호 운동을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BTW, 왜 다들 아동 영화에서는 메시지가 아무리 노골적이 되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소리높여 구호를 외치거나 하는 일은 없습니다. 깊이가 다소 약하고 균형감이 가끔 불안해지는 게 흠이긴 하지만 이 정도면 양호하다고 보고 싶군요.

7. 안나 파퀸, 제프 다니엘즈

안나 파퀸은 지금까지 빅토리아 시대의 드라마틱한 소녀역들로 이미지를 굳혀왔습니다. '영화 사상 가장 슬픈 소녀'라는 [타임]지의 소개가 그렇게 적절하다고 느껴지지는 않지만([피아노]의 플로라가 '슬픈' 캐릭터인가요?) 파퀸의 캐릭터들이 그렇게 '일상적'이지는 않았다는 점은 인정해야겠지요. 이 배우의 연기 스타일도 사실적이라기보다는 발레처럼 표현적이고요.

그래서 이 영화의 '정상적인' 역이 조금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만, 파퀸은 예상 외로 아주 자연스럽게 보입니다. 아마도 다양한 악센트를 오가는 이 배우의 경력 중 유일하게 자신의 국적(캐나다 + 뉴질랜드인)과 완벽하게 맞는 역을 연기했기 때문이겠지요. 촬영중에 우연히 겹친 부모의 이혼이라는 사건도 무시할 수는 없었겠고요.

제프 다니엘즈는 리시먼처럼 사자 수염을 기르니까 덜 멍청해보입니다. 그리고 적당히 맛이 가고 적당히 미친 것 같은 토마스 알덴의 캐릭터와도 잘 맞는군요. 다니엘즈는 많은 영화에서 재미없고 일차원적인 인물들을 연기해서 이미지를 잡쳐왔는데 최근 작품들에서는 그 지루함이 많이 가셔진 것 같습니다.

8. 그리고...

마크 아이샴의 음악은 튀지 않고 차분하지만 어디에서나 적절합니다. 가장 귀에 잘 들어오는 곡은 메리 채핀 카펜터가 부른 '10.000 마일'인데 이 노래는 영화 앞뒤에 전혀 다른 방식으로 쓰여서 극적 효과를 적절하게 살리고 있죠.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이 곡은 저희들 중 한 명이 다녔던 고등학교 독어 선생님의 애창곡이기도 했습니다. 다시 들으니 참 새롭더군요. :-)

그런데 궁금한 게 하나 있어요. 재개봉할 정도로 소니가 이 영화를 좋아했다면 왜 사운드 트랙 앨범 발표에 그렇게 미적거렸던 것일까요?

실제 사건을 모델로 했건 어쨌던 이 영화가 픽션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말씀드리는 편이 좋겠군요. 캐나다에서는 아무리 울트라 라이트 비행기라도 16세 이하에게는 면허를 허가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크리스마스 선물로 그런 비행기 하나 사달라고 애들이 조르면 못 사주겠다고 하세요. 안나 파퀸도 땅 위에서만 찍었을 뿐 직접 이륙한 적은 없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제시카 두브로프를 생각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그 일이 옳은 일이었건 옳지 않은 일이었건, 그 아이의 영혼이 에이미와 함께 날아오르기를 빕시다. 아멘. (96/12/22)

D&P

기타등등

1. 종종 이 영화를 보고 울트라라이트 비행기 조종사가 된 사람들이 이 영화가 그네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한 긴 편지들을 써서 저희한테 보내옵니다. 우리나라에도 이 영화를 보고 울트라라이트 비행기 동호회에 가입한 사람들이 꽤 될 거예요. :-)

2. [아름다운 비행]은 소니/콜롬비아가 가장 처음 출시한 DVD들 중 하나입니다. 슬프게도 이 DVD는 와이드 스크린 버전이 아니라는군요.

3. 국내 출시된 [아름다운 비행]은 지금까지 저희가 본 비디오 자막 중 가장 형편없는 걸 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