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로비츠를 위하여 (2006) * * 1/2
감독
권형진
주연
엄정화....지수
신의재....경민
박용우....광재
김정원....성인 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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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로비츠를 위하여]라는 제목과 그 제목의 활용방법만
봐도 영화의 반 이상은 해독됩니다. 영화사에서는 제작 내내
홍보물을 돌리면서 '제목에 나오는 블라디미르 호로비츠가
누구인가?'라는 섹션을 따로 마련했습니다. 한마디로
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호로비츠라는 전설적인
피아니스트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다고 작정하고
작업을 진행한 것이죠. 그렇다고 이 영화에서 블라디미르
호로비츠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가? 아뇨, 그는 막연한
피아니스트의 상징에 불과합니다. 그의 역할은 다른
누구라도 할 수 있어요. 이 영화의 각본가 김민숙은 처음부터
[호로비츠를 위하여]라는 제목을 만들어놓고 그 다음에
이야기를 만들었다는군요.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두 가지입니다. 첫째, 이 영화는 클래식 음악을 깊이 있게 다룰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전체적인 음악영화의 장르 안에서 [호로비츠를 위하여]는 바이엘 수준입니다. 둘째, 만드는 사람들도 클래식 음악에 대한 대단한 관심이나 지식이 없습니다. 이 영화에서 호로비츠는 단순히 영화에 그럴싸한 아우라를 심어주기 위해 삽입된 폼나는 유럽 이름에 불과해요.
영화의 내용은? 재능있는 독특한 제자와 그 재능을 알아본 스승의 이야기입니다. 전 존 슐레진저의 [마담 소사츠카]가 떠오르더군요. 영화가 [빌리 엘리어트]의 영향을 받은 것은 분명하고요. 뭐, 조금만 더 머리를 굴리면 다른 제목들도 굴러 나올 겁니다. 이런 식의 설정은 무척이나 보편적이니까요.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 영화의 주인공은 막 피아노 학원을 연 김지수라는 피아니스트입니다. 집안이 부유하지 못해 유학을 다녀오지 못했고 그 때문에 이 모양 이꼴이라고 자학하고 있는 지수는 우연히 피아노에 대한 모든 것에 집착하는 가난한 소년 경민을 만납니다. 경민이 대단한 재능이 있다는 걸 알게 된 지수는 그 애를 콩쿠르에 참가시켜 한몫 잡아볼 음모를 꾸미죠. 그러는 동안 두 사람의 정서적 연결이 점점 깊어지는 건 말할 것도 없고.
[호로비츠를 위하여]는 자기만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영화일까요? 네, 그렇습니다. 이 영화는 클래식 음악 교육을 받은 대한민국 여성 전공자들에 대해 상당히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넉넉한 가족이 지원해 주지 않으면 체면 차릴 정도의 코스 밟기도 힘들고 그걸 거친다고 해도 몇 백대 몇의 경쟁을 뚫어야 간신히 강사 자리 하나 얻을 정도고 그것도 통과하지 못하면 시집 가라는 말이나 들어야 하는 위치에 있는 여자들 말이죠. 영화는 한국 피아노 사교육 현장 특유의 키치하고 뻔한 분위기도 꽤 잘 살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음악영화로 보면 [호로비츠를 위하여]는 그냥 심심하고 피상적입니다. 우선 레파토리의 문제가 있습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음악의 절반 이상은 소위 피아노 학원용이거나 뻔한 실용음악, 모두에게 굉장히 익숙한 교과서 수준의 고전들입니다. 피아노 학원용 연습곡이나 멘델스존의 [결혼행진곡]과 같은 작품들은 들어가야 할 핑계가 있긴 합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이 영화의 음악은 너무 심심해요. 사실주의도 사실주의지만 일단 듣는 재미가 있어야죠. 뻔한 피아노 학원용 연습곡들과 보다 신선한 레파토리들이 부딪히며 만들어낼 수 있었던 드라마도 대부분 날아가 버렸고요. 이 영화에서 클래식 음악은 그냥 도구입니다. 음악과 음악 천재에 대한 영화의 이해도 빈약합니다. 이야기 대부분이 얄팍한 구닥다리 로맨티시즘에 의존하고 있거든요.
아까 전 이 영화가 바이엘 수준의 음악영화라고 말했습니다. 그 자체는 나쁜 게 아닙니다. 음악을 다루는 방식에 한 등급만 존재하는 건 아니니까요. 보통 관객들을 위한 입문서적인 영화도 필요하고요. 하지만 [호로비츠를 위하여]에서는 그런 변명이 통하지 않습니다. 초보적인 음악영화를 만들 때라도 만드는 사람들이 초보자여서는 안 됩니다. 그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하죠. 음악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과 애정과 같은 것 말입니다. [호로비츠를 위하여]는 처음부터 끝까지 남의 지식과 애정을 빌어 상식적인 이야기만 하려고 합니다.
그냥 멜로드라마로서는? 그럭저럭 괜찮습니다. 전 훨씬 감상적인 영화일 거라고 생각하고 갔기 때문에 다행이라고 느꼈습니다. 여전히 온전한 스케일의 극장용 영화보다는 [베스트 극장]의 한 에피소드처럼 보이지만요. (06/05/10)
DJUNA
기타등등
대한극장 3관과 10관에서 시사회를 했습니다. 1.85:1 화면비율이었고요.
영화가 끝나자 권형진 감독은 10관에서 화면의 양쪽 끝부분이 잘려나갔다고
투덜거렸습니다. 놀라야 할까요? 그럴 리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