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첸 카이거 Kaige Chen

주연
여명....매란방
Leon Lai....Mei Lanfang
장쯔이....맹소동
Ziyi Zhang....Meng Xiaodong
손홍뢰....구여백
Honglei Sun....Qiu Rubai
첸 홍....복지팡
Hong Chen....Fu zhifang
여소군....젊은 매란방
Shaoqun Yu....Young Mei Lanfang
안도 마사노부....다나카 류이치
Masanobu Ando....Ryuichi Tanaka

매란방

첸 카이거가 왜 매란방의 전기 영화를 만들려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매란방은 20세기에 가장 유명했던 중국인들 중 한 명이었습니다. 존경받을만하고 기억되어야 마땅하겠지요. [패왕별희]의 감독이 그 인물에 관심을 갖는 것도 당연하고요. 하지만 무슨 이야기를 만든다는 거죠? 매란방의 삶은 비교적 평온했습니다. 극적인 면이 거의 없어요. 캐릭터만 해도 그렇게 재미있는 편은 아니고요. 그는 조용하고 차분한 남자로 요란한 스캔들을 일으킨 적도 없고 엄청난 사건에 말려든 적도 없습니다. 한마디로 이야깃거리가 별로 없단 말입니다.

영화는 대충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첫 번째 챕터에서 매란방(여기서는 여소군이 연기합니다)은 이미 인기 있는 젊은 스타입니다. 나중에 그의 매니저가 될 구여백의 자극을 받은 그는 경극에 새로운 스타일을 도입하고 전통을 고수하는 나이 든 스승과 충돌하게 됩니다. 결국 둘은 자존심을 건 대결을 벌이죠.

두 번째 이야기에서 매란방은 이미 중년의 유부남입니다. (여기서부터 여명이 매란방으로 나옵니다.) 그는 남장전문 여자배우인 맹소동을 만나 연기 파트너가 되고 결국 사랑에 빠집니다. 처음으로 그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평범한 삶을 꿈꾸지만 그게 쉽게 풀릴 리가 없습니다.

세 번째 이야기에서 매란방은 정치에 휩쓸립니다. 중국을 점령한 일본군이 그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하는 것이죠. 그는 어떻게든 이를 거절하려 하고요.

이렇게 늘어놓으니 이야기가 될 법도 합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 뭔가 심각하게 괴상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매란방이라는 인물이 나오기는 하는데, 전혀 재미가 없다는 거죠. 그는 그냥 백지입니다. 흥미로운 개성도 없고 대단한 갈등을 겪지도 않습니다. 그는 그냥 거기 차분하게 존재하기만 해요. 경극 이외에 유일하게 튀는 행동은 끊임없이 국을 먹는 것밖에 없더군요.

대신 실질적인 드라마는 모두 주변인물에게 돌아갑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드라마 주인공처럼 보이는 인물은 1부에서 매란방과 경쟁하는 나이 든 스승입니다. 2부에서 진짜 주인공은 장쯔이가 연기하는 맹소동이고요. 3부에서도 매란방의 팬인 일본인 장교 다나카가 매란방보다 더 주인공 같습니다. 매란방이 학교가기 싫은 남자애처럼 술수를 쓰며 뒤로 질질 빠지는 동안, 별로 나오지도 않는 다나카는 주인공이 겪어야 할 모든 갈등을 겪죠.

아마 영화는 처음부터 매란방의 캐릭터를 그리는 데에 관심이 없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영화가 진짜로 관심을 가졌던 건 한 위대한 예술가가 주변 사람들과 팬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그리는 것이었을지도 모르죠. 제 생각엔 자연인 매란방을 전혀 등장시키지 않고 이야기를 끌어갈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런 가능성을 고려한다고 해도 영화는 충분히 매력적이지 못합니다. 일단 매란방이 너무 많이 나오는군요. 네, 이 영화는 주인공이 너무 많이 나와서 재미가 없는 영화입니다. 여명은 좋은 배우지만 이 영화에서는 지극히 따분합니다. 게다가 너무 늦게 등장해서 캐릭터의 일관성을 느끼기도 어렵죠. 그가 하는 행동도 너무 재미가 없어서 종종 평범한 이야기에 드라마를 불어넣기 위해 억지로 애를 쓴 흔적들이 군데군데 보입니다.

첸 카이거의 많은 영화들이 그렇듯 이 영화의 기술적 완성도는 높고 종종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이 영화는 계산착오의 결과물입니다. 좋은 예술가라는 이유로 좋은 드라마의 소재가 되라는 법은 없는데 말이죠. (09/03/24)

DJUNA

기타등등

베를린 영화제에 이 영화가 처음으로 상영되었을 때 러닝타임은 147분이었습니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시사회에서 상영된 버전은 118분짜리입니다. 영화 중간에 거칠게 튀는 부분이 잦고 심지어 사운드도 여러 번 끊기지요. 어떻게 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