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유현목

주연
이용
도금봉
최남현
이빈화
장민호

달수와 광필

[그대와 영원히]의 가장 큰 가치는 역사적인 것입니다. 유현목의 데뷔작은 아니지만 필름이 남아있는 유현목의 가장 오래된 작품이니까요. 1958년도작이랍니다.

영화는 10년형을 살고 형무소에서 나온 남자 주인공 광필을 따라갑니다. 광필은 여자친구 애란과 새 삶을 시작할 희망으로 부풀어 있었지만 애란은 친구 달수와 이미 결혼한 뒤였죠. 불행한 결혼생활 속에서 병들어 죽어가는 애란은 광필에 대한 죄책감과 사랑에 괴로워하고, 질투심에 불탄 달수는 광필을 함정에 빠트리려고 합니다.

[그대와 영원히]는 사회고발적인 분위기를 바탕에 깐 삼각관계 러브스토리입니다. 원래 계획은 사회비판적인 요소가 더 강했었다고 해요. 검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순수한 멜로드라마로 전환할 수밖에 없었지만요.

많은 옛날 한국 영화들이 그렇듯, [그대와 영원히]의 멜로드라마도 현대 관객들에게 굉장히 캠피한 오락을 제공합니다. 50년대 관객들이 이 영화를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였는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 작품을 보면서 원작이 의도한 진지함을 받아들이는 현대 관객들은 거의 없을 거예요. 세월이 흐르는 동안 구식 대사들과 연기, 과장된 신파의 정서가 희극적 대상으로 전환된 것이지요.

하지만 그 낡아빠진 모습은 은근히 사랑스럽기도 합니다. [그대와 영원히]는 그렇게까지 '척'하는 영화는 아니거든요. 과장된 신파는 우스꽝스럽지만 그 절실함은 우스꽝스러움을 통하는 동안 아주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결과는 괴상하고 종종 어처구니없지만 나름대로 진실되어 있기도 합니다.

[그대와 영원히]는 50년대 말의 서울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게 도와주는 풍속학적 자료이기도 합니다. 낡아빠진 빈민가에서 서서히 서구적인 세련됨을 흉내내는 달수의 카바레에 이르기까지, 다루고 있는 공간이 굉장히 다양하거든요. 물론 등장인물들이 쓰는 은어들이나 속어, 생경한 외래어의 사용, 심지어 지금은 코미디의 재료가 된 이들의 신파적 정서까지도 흥미로운 연구 대상이 될 자격이 있습니다.

영화는 유현목과 50년대 말의 한국 영화계가 '예술'로서의 자의식을 찾아가는 과도기에 놓여 있기도 합니다. 슬슬 그림과 소리로 스토리를 전달하는 단계를 떠나 영화 매체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과정에 놓여 있지요. 아직은 서툴고 뻔해 보이지만 [오발탄]이 나온 게 겨우 3년 뒤라는 걸 생각해보면 굉장히 가치있는 여정이었던 셈입니다. (04/02/18)

DJUNA

기타등등

1. 도금봉이 천진난만한 10대 소녀와 불치병으로 죽어가는 가련한 여자 주인공을 연기하는 걸 보는 건 정말 어색하더군요.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만 든답니다. 마치 아는 동네 아줌마의 10대 시절 사진을 보는 느낌이랄까. :->

2. 이 영화의 시대배경은 50년대 말입니다. 광필이 형무소에 들어간 건 당연히 40년대 말이겠지요? 그렇다면 광필은 형무소 안에서 전쟁을 겪었던 셈인데, 당시 서울의 형무소에 갇혀있던 수감자들은 어떻게 다루어졌는지 모르겠군요. 영화가 여기에 대해 전혀 다루고 있지 않아서 조금 실망했답니다. 아마 까먹었는지도 모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