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헨리 코넬리어스 Henry Cornelius

주연
다이나 셰리단....웬디 맥킴
Dinah Sheridan....Wendy McKim
존 그렉슨....앨런 맥킴
John Gregson....Alan McKim
케이 켄달....로잘린드 피터즈
Kay Kendall....Rosalind Peters
케네스 모어....앰브로즈 클래버하우스
Kenneth More....Ambrose Claverhouse

1.

헨리 코넬리어스는 그렇게 많은 작품을 남긴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 몇 안되는 작품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의 이른 죽음이 정말 아쉬워지죠. 지극히 영국적이면서도 따스한 그의 코미디들은 정말 작은 보석들입니다. 엄청나게 심각한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고 헐리웃 스타들이 등장하지도 않는 저예산의 작은 영화들이지만 그 작은 작품들은 완벽합니다.

코넬리어스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은 아마 그의 유일한 일링 영화인 [핌리코 행 여권]이겠지요. 그러나 오늘은 [제네비에브]를 먼저 다루기로 하겠어요. [핌리코 행 여권]도 물론 좋지만 전 [제네비에브] 쪽이 더 마음에 들거든요.

2.

'제네비에브'는 여자 주인공 이름이 아닙니다. 1904년 다락 자동차 이름이지요. 10 마일만 가도 어딘가 부서지고 끝도 없이 회색 매연을 뿜어대는 고물 중의 고물입니다.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이벤트는 매년마다 열리는 런던-브라이튼 빈티지 카 대회입니다. 20세기 초에 만들어진 상자 같은 차들이 최초의 자동차 경기를 기념하기 위해 당시 복장을 입고 매연을 폴폴 내며 달리는 거예요. 속도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대신 복장이나 매너와 같은 엉뚱한 것들이 채점 대상이 되지요.

줄거리? 앨런과 앰브로즈는 친하지만 경쟁심이 지나치게 강한 친구들입니다. 둘의 경쟁심은 런던에서 브라이튼으로 가는 동안 점점 부풀어 오르고 결국 그들은 브라이튼에서 런던까지 경주를 벌입니다.

위의 스토리만 본다면 영화는 무척 자극적이고 스피디한 작품이어야 할 것 같습니다. 실제로 두 남자 주인공들은 이런 종류의 경주 영화 주인공들이 하는 모든 폼들을 다 잡지요.

하지만 앨런의 다락 '제네비에브'나 마찬가지로 구닥다리인 앰브로즈의 스파이커로는 그런 경주는 애당초부터 불가능합니다. 이 영화는 자동차 경주가 반 이상을 차지하는 영화지만 스턴트 더블이 들어갈 구석이 거의 없습니다. 제네비에브의 핸들이 고장나는 장면에는 한 번 썼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대부분의 경기 장면은 배우들의 얼굴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그만큼이나 느려터진 경주란 말이지요. 그들의 경주는 속도전이 아니라 계속되는 고장과 방해물을 상대로 벌이는 우스꽝스러운 투쟁입니다.

그 때문에 '자동차 경주'하면 연상되는 강한 남성성은 이 영화에서 장난감 자동차 수준으로 위축되고 놀림을 당합니다. 그렇다고 공격적인 영화라는 말은 아니에요. 이 영화는 이런 남자들의 장난감들과 그에 대한 유아적인 집착을 가볍게 얼러대는 애정어린 농담에 가깝습니다.

3.

일반 경주 영화와는 달리, [제네비에브]의 액션은 간결하지만 입체적인 등장인물들의 이유있는 갈등 속에서 벌어집니다. 앨런은 아내 웬디를 먼저 알고 지냈으며 어떤 때는 자기보다 더 아내와 가까운 것 같은 친구 앰브로즈에 가벼운 질투를 느끼고 있습니다. 앨런의 불안함을 알고 있는 웬디가 그를 놀려먹고 앰브로즈가 눈치없이 그의 불안함과 질투를 자극하는 동안 앨런의 경쟁심은 부풀어 오릅니다. 그게 임계점을 넘어서면--'빵!'--경주가 시작되는 거죠.

복잡할 거 하나 없는 사람들이지만 이들을 묘사하는 윌리엄 로즈의 각본은 섬세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심지어 별로 할 이야기가 없을 것 같은 앰브로즈의 패션 모델 여자 친구 로잘린드한테도 그렇지요. 그리 길지도 않은 86분의 러닝타임이 지나가면 관객들은 이들을 한 십 년 쯤 알고 지낸 듯한 느낌을 받아요.

그만큼이나 관찰이 정확하고 낭비가 없는 영화라는 말이지요. [제네비에브]는 간결하지만 놀랄 정도로 꽉 찬 영화여서 도대체 빈틈을 보이지 않습니다. 모든 벽돌이 자기 일을 하고 있으며서 그와 동시에 전체에도 봉사하고 있지요. 로잘린드의 트럼펫 연주와 같이, 줄거리와 별 상관없는 것 같아 보이는 디베르티스망들도 사실은 의미 있는 뭔가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각본을 헐리웃 사람들한테 보여주어야 쓸데없이 2시간을 넘어가는 블록버스터들도 절제라는 걸 배우게 될텐데 말입니다.

4.

[제네비에브]는 정말 화사한 영화입니다. 이런 분위기는 5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 때문이기도 하겠죠. 웬디와 로잘린드가 입고 나오는 풍요로운 파스텔 조의 의상에서부터 래리 아들러의 정감 넘치는 하모니카까지, 영화는 당시의 한가한 느낌으로 가득합니다.

그러나 이 한가함은 같은 시대에 나온 미국 영화의 여유로움과는 조금 다릅니다. 독일군의 공습을 당해보고 배급 티켓을 들고 줄을 섰던 사람들의 휴가같은 풍요로움인 것이죠. 그 때문에 [제네비에브]의 화사함이 더 마음에 닿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99/08/20)

DJUNA

기타등등

1. [제네비에브]는 케이 켄달과 케네스 모어를 스타덤에 올려놓은 영화였습니다. 모어는 그 뒤로도 작고 재미있는 영화들로 알찬 경력을 이어갔지만 켄달은 아시다시피 그렇게 오래 살지 못했지요. 미인박명이라더니.

2. 전문가들에 따르면 오류가 산더미 같은 영화라지만 저랑 전혀 상관 없는 분야이니 제가 눈치챘을 리가 없죠. 하지만 나중에 테이프를 돌리면서 콘티 실수들을 찾아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