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존 포셋 John Fawcett

주연
에밀리 퍼킨스....브리짓
Emily Perkins....Brigitte
캐서린 이자벨....진저
Katharine Isabelle....Ginger
크리스 렘쉬....샘
Kris Lemche....Sam
미미 로저스....파멜라
Mimi Rogers....Pamela
제시 모스....제이슨
Jesse Moss....Jason
다니엘 햄튼....트리나
Danielle Hampton....Trina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진저와 브리짓

듀나 [진저 스냅]은 베일리 다운즈라는 캐나다의 교외 주택가에서 시작합니다. 우린 대충 그 분위기를 압니다. 충충한 하늘 아래서 햇빛 덜받고 자란 창백한 아이들이 지나칠 정도로 깔끔하고 정돈된 동네에서 살고 있는 거죠.

우리의 주인공인 진저와 브리짓 자매는 그 중에서 좀 튀는 아이들입니다. 사교성이 없고, 죽음에 지나칠 정도로 집착하고... 영리하고 창의적이지만 여러 면에서 덜자란 아이같기도 합니다. 실제로 꽤 찬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둘 다 아직 초경을 겪지 못했죠.

이야기는 [캐리]가 그랬던 것처럼 언니 진저가 초경을 겪으면서 시작됩니다. 초경 자체는 문제가 아닙니다. 바로 그 날 밤 거리를 쏘다니다가 정체불명의 야생 동물에 물린 것이 문제였지요. 당연히 그 괴물은 늑대인간이었고, 진저는 그 뒤로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주변에서는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브리짓은 어떻게든 언니를 구하기 위해 뛰어다닙니다.

파프리카 [진저 스냅]은 꽤 희귀한 부류의 영화입니다. 한마디로 캐나다 호러 영화예요. 그러나 출신 성분을 이유로 이 영화를 차별하는 것은 옳지 못한 일입니다. [큐브]와 같은 흥미로운 호러 영화가 나온 곳도 캐나다고, 데이빗 크로넨버그라는 중요한 호러 감독을 배출한 곳도 캐나다잖아요?

듀나 그리고 이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이름을 끌어오는 건 꽤 중요합니다. 영화는 크로넨버그한테서 상당히 큰 주제를 빌려오고 있거든요.

파프리카 영화를 보면서 [플라이]가 연상되기는 했어요.

듀나 네, 이 영화의 늑대인간은 보름달이 뜰 때만 털복숭이 괴물로 변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크로넨버그의 파리 인간처럼 서서히 인간에서 다른 존재로 변해가지요.

[진저 스냅]은 늑대인간으로의 변신을 육체적 성숙과 연결짓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늑대인간은 아이의 육체에서 어른의 육체로 변하는 과정에 대한 끔찍한 은유인 것입니다. 하긴 어른이 되는 과정은 그렇게 예쁜 게 아닙니다. 엉뚱한 곳에 털이 나고, 목소리가 바뀌고, 몸에서는 피가 쏟아지고... 이러고 보니 정말 호러 영화 괴물의 변신 과정과 다를 게 없군요. 초경을 겪은 진저가 "내 몸이 이렇게 나를 배반하다니."하면서 욕을 퍼붓는 것도 어떻게 보면 당연합니다.

늑대로 변하는 주인공이 여성이기 때문에 [진저 스냅]은 특별히 눈에 뜨입니다. 여자 늑대 인간이 처음인 건 아니지만, [진저 스냅]처럼 틴에이저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육체적 성숙이라는 주제를 자기 변명이나 옹호없이 뻔뻔스럽게 흔들어내는 호러 영화는 드물죠.

파프리카 영화는 굉장히 얄미운 방식으로 '성인 여성이 된다는 것'에 대해 농담을 해대고 있습니다. 특히 딸들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고 있는 진저와 브리짓의 엄마가 그래요. 진저가 저지른 끔찍한 일들이 조금씩 꼬리를 드러낼 때마다 엄마는 그걸 '여자가 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받아들이잖아요.

듀나 당연히 섹스 역시 징그러운 질병으로 묘사됩니다. 별 생각없이 여기서 AIDS의 은유를 끌어낼 수도 있지만 꼭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되는군요. 이런 '성숙'이 아이들의 육체를 생물학적 재생산 도구로 뜯어고치는 과정이라는 걸 생각하면 섹스에 대한 이런 묘사는 자연스러운 귀결이잖아요?

파프리카 그리고 이런 식의 은유는 전형적인 크로넨버그식 감수성에 의존하고 있지요.

학교 숙제

듀나 크로넨버그와 차별화되는 부분은 영화의 주인공이 틴에이저라는 것입니다. 이 자체는 그렇게 모험적이라고 할 수 없지요. 틴에이저와 호러 장르는 쉽게 떼어놓을 수 없을 정도로 밀접히 연결되어 있고, 이 둘을 연결한 늑대 인간 영화도 많으니까요.

파프리카 [버피]를 잊어선 안돼요. 초반 3년 동안 [버피]는 틴에이저 호러 영화의 거의 모든 영역을 다루었으니 피해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겠지만요. 그러고보니 늑대인간으로 변하는 중간 단계의 진저는 [버피] 시리즈의 흡혈귀들과 분장이 비슷해요.

듀나 그래도 [진저 스냅]은 여전히 독자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진저 스냅]은 최근 들어 나온 영어권 틴 호러 무비 장르 영화들 중 소재에 가장 깊숙이 이를 박고 있는 작품입니다. 이 영화의 매정한 비전은 아직도 틴에이저 당시의 육체적 혼란을 잊고 있지 않는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 것입니다.

[진저 스냅]을 지배하는 분위기는 기본적으로 자학적입니다. 그 때문인지 이 영화에서는 가학적인 폭력 장면들이 그렇게 큰 무게를 띠지 못하죠. 늑대인간이 된 진저가 사람들을 죽이는 장면보다는 두 자매가 서로를 모델로 가짜 시체 장면을 조작하거나 변해가는 자기 육체에 대해 온갖 흉칙한 말들을 늘어놓을 때가 더 재미있잖아요.

[진저 스냅]은 [하울링] 같은 전통적인 호러 영화보다 [천상의 피조물]에 더 가까워요. 특히 거의 자폐적으로 보일 정도인 두 자매의 긴밀한 관계 묘사는 그렇습니다. 폴린과 줄리엣이 그랬던 것처럼 진저와 브리짓도 자기네만의 환상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진짜 갈등은 진저가 '늑대인간'이 되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게 아니라 진저가 그들만의 세계에서 빠져나왔기 때문에 생깁니다. 크로넨버그를 또 끌어들이고 싶다면 [데드 링거]의 예를 들 수도 있겠군요.

파프리카 전체적으로 [진저 스냅]의 호러 영화적 가치는 그렇게 높이 평가할만한 것이 아닙니다. 아마 작가인 카렌 월튼이 이 장르에 그렇게 큰 애착을 느끼지 못해서였을 거예요. 특히 후반부는 기존 호러 장르의 관습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에 불과합니다.

듀나 그게 과연 나무랄 것이 되나요? [진저 스냅]은 처음부터 전통적인 스토리 라인으로 영화를 끌어가고 있습니다. 당연히 결말 역시 전통적인 방식을 따라가는 게 당연하죠. 언제나 하는 말이지만 가장 좋은 해결책은 관습적인 법입니다. 그게 이 영화의 단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마지막 변신

파프리카 특수 효과는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죠? 하긴 저예산 캐나다 영화니 할리우드 영화와 직접 비교할 건 아니지만요.

듀나 오히려 향수가 느껴지던 걸요. 요새는 늑대인간도 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잖아요. 과연 요새 기술 수준의 컴퓨터 그래픽과 늑대인간이 어울리기는 한 건지요? 제 생각엔 [진저 스냅]의 구식 효과가 오히려 이런 종류의 늑대 인간 영화에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파프리카 캐스팅도 훌륭합니다. 진저 역의 캐서린 이자벨과 브리짓 역의 에밀리 퍼킨스는 대조되는 외모이면서도 자매로 잘 어울려요. 모두 좋은 배우들이고요.

듀나 전 미미 로저스가 연기한 엄마가 등장할 때마다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어요. 그 뻔하디 뻔한 '자식들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엄마' 클리셰도 이렇게 노골적으로 묘사하면 재미있군요.

파프리카 필모그래피를 뒤져보니 퍼킨스와 이자벨은 모두 [X 파일]에 게스트로 출연한 적 있어요. 다들 캐나다 배우여서 그런가? 참, 동생 역의 퍼킨스가 언니 역의 이자벨보다 4살이나 위인 건 알아요?

듀나 요새 AICN의 해리 놀즈가 이 영화를 띄우려고 기를 쓰고 있더군요. 놀즈가 생각하는 것만큼 굉장한 영화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 사람이 조작하는 하이프가 어느 정도 먹혔으면 한답니다. 작지만 꽤 흥미로운 영화이고 요새 나오는 웬만한 여름 시즌 블록버스터 영화들보다 뜯어먹을 구석도 훨씬 많으니까요. (01/07/02)

D&P

기타등등

개가 이처럼 많이 죽는 영화도 드물지 않을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