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피터 웨버 Peter Webber

주연
스칼렛 조한슨....그리트
Scarlett Johansson....Griet
콜린 퍼스....베르메르
Colin Firth....Vermeer
톰 윌킨슨....반 루이벤
Tom Wilkinson....Van Ruijven
주디 파핏....마리아 틴스
Judy Parfitt....Maria Thins
킬리안 머피....페터
Cillian Murphy....Pieter
에시 데이비스....카타리나
Essie Davis....Catharina
조아나 스칸란....타네케
Joanna Scanlan....Tanneke
알라키나 만....코르넬리아
Alakina Mann....Cornelia

그리트와 베르메르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간단한 게임과 같은 소설입니다. 전기적인 사실이 거의 알려지지 않은 위대한 화가가 그린 초상화에 나온 익명의 모델이 주인공인 작품이니까요.

슈발리에는 알려진 역사적 사실을 위반하지 않는다는 기본 규칙을 따르면서도 십중 팔구 평범한 삶을 살다 평범하게 죽었을 이 익명의 여성을 고집과 지성으로 가득 찬 현대적인 주인공으로 만들어 위대한 화가와 정면대결하게 했습니다. 이런 방식은 흥미로운 여성적 글쓰기의 한 예가 될 수도 있고 편법을 동원한 안이한 대리만족의 판타지가 될 수도 있습니다. 슈발리에의 소설은 두 가지를 모두 갖추고 있지요.

피터 웨버의 영화는 슈발리에의 소설과 조금 목적이 다릅니다. 일단 매체가 다르다보니 주요 관심사가 바뀌는 거죠. 하긴 베르메르와 그의 그림들에 대한 소설을 각색하면서 그의 그림들을 그대로 재현한 이미지로 가득 찬 영화를 만들 생각을 품지 않는다면 바로 그게 비정상적일 겁니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기본적으로 회화적인 영화입니다. 원작에서보다 훨씬 단순해진 등장인물들은 꼭 스토리 전개에 필요한 말만 하고 있고 스토리도 훨씬 간략해졌죠. 나머지 시간 동안 이들은 베르메르에게서 영향을 받은 회화적 이미지의 모델로 존재합니다. 그 결과는 굉장히 아름다워요. 잠시 눈에 이상이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죠. 정말 그림같은 장면들이 줄줄이 이어지니까요. 이게 정말 진지한 예술인지, 아니면 예술을 빙자한 일종의 매체 서커스인지는 모르겠지만 인상적이고 아름다운 건 분명해요.

이런 회화적 성격 때문에 영화의 분위기가 소설보다 훨씬 억압적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원작에서 그리트는 자신의 억압된 감정을 표출할 도구가 있습니다. 독자들에게 책 한 권 분량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영화 속의 그리트는 철저하게 혼자입니다. 우린 가끔씩 나오는 대사들을 통해 이 캐릭터의 심리를 유추할 수 있지만 그 뿐이에요. 영화가 끝나도 그리트는 관객들에게 타자로 남습니다. 단지 그 꽉 막히고 처절한 느낌만 읽을 수 있을 뿐이에요.

이게 꼭 나쁜 건 아니에요. 그 느낌이 결코 무시할 수 있는 종류는 아니니까요. 이런 식의 전개 덕택에 배우들이 보다 영화적인 연기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기도 합니다. 그 중 가장 덕을 보는 사람은 아무래도 주인공 그리트를 연기한 스칼렛 조한슨이 아닌가 싶어요.

문제는 단순화된 각색이 원작이 가진 몇가지 핵심적인 주제를 왜곡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슈발리에의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남성 화가와 여성 모델 간의 미묘한 파워 게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리트의 독백이 사라지자 영화에서 이 두 사람의 대결은 약화되고 자기 작품을 이해 못하는 아내 대신 예술적으로 통하는 하녀를 뮤즈로 선택한 화가의 로맨스처럼 변해버리죠.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아름다운 영화입니다. 아마 DVD가 국내 출시되면 사놓고 가끔씩 틀어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이 영화가 원작의 가능성을 충분히 탐구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군요. 조금 더 나갈 수도 있었어요. (04/08/25)

DJUNA

기타등등

[디 아더스]의 알라니카 만이 코르넬리아역으로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