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카린 쿠사마 Karyn Kusama

주연
미셸 로드리게스....다이아나
Michelle Rodriguez....Diana
산티아고 더글러스....아드리안
Santiago Douglas....Adrian
하이메 티렐리....헥터
Jaime Tirelli....Hector
레이 산티아고....타이니
Ray Santiago....Tiny
폴 칼데론....산드로
Paul Calderon....Sandro
엘리사 보카네그라....마리솔
Elisa Bocanegra....Marisol
알리시아 애슐리....리키 스타일즈
Alicia Ashley....Ricki Stiles

다이아나와 헥터

전 종종 '눈빛 연기'에 대한 야유 섞인 농담을 하곤 합니다만, [걸파이트]라는 영화를 보면서 이 영화의 주연 배우 미셸 로드리게스의 '눈빛 연기'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것도 아주 진지하게 말이죠. 로드리게스가 불만을 잔뜩 품은 얼굴로 카메라를 째려보는 영화의 첫장면부터 우리는 이 친구의 눈이 뿜어대는 에너지에 말 그대로 얼굴을 한 방 얻어맏습니다. 네, 이런 걸 진짜 '눈빛 연기'라고 하는 것입니다. 생각도 없이 눈주변 근육에 힘만 준다고 다 '눈빛 연기'는 아니란 말입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이게 과연 연기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로드리게스가 의식적으로 그런 '눈빛 연기'를 만들어낼만큼 숙련된 배우는 아니니까요. 실제로 이 배우의 인터뷰를 읽고 있노라면 로드리게스라는 자연인이 영화 속의 다이아나 구스만이라는 캐릭터와 얼마나 가까운지 알게 됩니다. 아무런 희망없이 뉴저지의 황량한 아파트촌에 감금된 히스페닉 틴에이저 소녀의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울분은 다이아나의 것이라기보다는 미셸 로드리게스 자신의 것입니다. 결국 캐스팅의 승리인 것이죠.

벌써 이 영화의 줄거리의 반을 말해버렸습니다. 하긴 여러분은 줄거리 따위를 읽지 않아도 이 영화가 어떻게 흘러갈지 대충 짐작할 수 있습니다. 위에 언급한 말썽쟁이 틴에이저 소녀가 권투에 발을 디디면서 자칫하면 몸 안에서 썩어버릴지도 모르는 울분을 해소할 길을 찾는다는 거죠. 여기에 동료 권투 선수인 아드리안과 러브 스토리가 따로 전개되는데, 워낙 분위기가 험악하니 이들의 관계가 그저 키스하는 사이 이상이 될 거라는 것도 분명합니다.

그러나 [걸파이트]는 [록키]와 같은 전형적인 권투 영화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이런 장르의 영화들은 대부분 클라이맥스에 격렬한 폭력의 분출을 담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게 바로 권투 영화 관객들이 바라는 것이죠. 하지만 [걸파이트]에는 그런 식의 분출 따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영화에 나오는 세 차례의 권투 경기는 모두 거창함 따위는 없이 건조하고 사실적으로 진행되며, 폭력 과잉 따위는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이런 사실주의는 여러 방향으로 먹힙니다. 우선 에너지의 분출을 조절한 결과, 조루증 환자처럼 픽픽 폭력을 쏟아붓는 요새 액션 영화들과는 달리, 영화 모든 부분이 격렬한 긴장으로 가득차게 됩니다. 이런 장르에서 종종 달콤한 간주곡쯤으로 떨어지는 연애 장면과 같은 부분들이 강렬한 파워 게임으로 기능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겠지요.

물론 이런 사실주의는 영화의 다큐멘터리적 특성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영화가 예측 가능한 줄거리에도 불구하고 공식적인 장르 영화처럼 보이지 않는 것도 이런 다큐멘터리적 터치를 능숙하게 활용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 영화는 좋은 다큐멘터리에서 얻을 수 있는 상당한 양질의 정보를 제공해주기도 하는군요. 권투라는 스포츠에 대한 구체적인 지식 뿐만 아니라 젊은이들을 그 폭력적인 스포츠로 이끄는 뉴저지 빈민촌의 황량한 분위기까지도요.

영화의 주제에 더 잘맞기도 합니다. 이 영화는 폭력의 분출에 대한 영화가 아니라 통제에 대한 영화입니다. 다이아나는 권투를 통해 폭력을 행사할 그럴싸한 핑계를 잡은 게 아니라 자신의 에너지를 통제하며 조절하는 사람으로 성장한 것이니까요. 결국 [걸파이트]에서 권투는 제1소재로보다는 다이아나 구스만이라는 캐릭터의 성장을 돕는 도구로서 더 잘 기능합니다. [걸파이트]는 스포츠 영화라기보다는 성장 영화입니다. 그것도 상당히 사려깊고 현명한 부류지요. (01/04/17)

DJUNA

기타등등

영화를 보는 동안 붐 마이크가 굉장히 자주 보였는데, 과연 그게 실수였는지 모르겠군요. 화면 비율을 고려해보면 동숭아트센터가 스크린 상하를 제대로 가리지 않았기 때문일 가능성이 더 높은 것 같습니다. 나중에 영화관에서 보신 분들은 알려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