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더그 라이먼 Doug Liman

주연
사라 폴리....로나 마틴
Sarah Polley....Ronna Martin
케이티 홈즈....클레어 몽고메리
Katie Holmes....Claire Montgomery
네이단 벡스턴....매니
Nathan Bexton....Mannie
데스먼드 애스큐....사이먼 베인즈
Desmond Askew....Simon Baines
타이 딕스....마커스
Taye Diggs....Marcus
스코트 울프...애덤
Scott Wolf....Adam
제이 모어....잭
Jay Mohr....Zack
티모시 올리판트....토드 게인즈
Timothy Olyphant....Todd Gaines
윌리엄 피치너....버크
William Fichtner....Burke
제인 크라코우스키....아이린
Jane Krakowski....Irene

[고]는 무척 염치없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가 하고 있는 것은 지금까지 헐리웃에서 성공한 '쿨'한 유행들을 그대로 가져와 자기 영화에 써먹는 것입니다.

캐스팅과 소재를 들여다보면, 십대 영화의 유행에 올라타 한 몫 잡아보려는 속셈이 여지없이 폭로됩니다. 영화를 [파티 오브 파이브] + [도슨즈 크릭] 크로스오버 크리스마스 스페셜처럼 보이게 만드는 텔레비전 인기 배우들의 기용, 마약과 섹스로 얼룩진 LA 틴에이저들의 막나가는 삶과 같은 소재들을 보세요.

구성과 소재를 다루는 방식, 대사들은 다른 곳에서 훔쳐왔습니다. 바로 쿠엔틴 타란티노죠. 이 영화는 [펄프 픽션]처럼 3장으로 나뉘어져 있고 각 장마다 새로운 주인공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비슷하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다른 장의 등장인물과 뒤섞습니다. 타란티노의 캐릭터처럼 이들은 모두 능란한 수다쟁이들이며, 그들이 속한 미국 대중문화의 생산품들에 대해 괴상한 촌평들을 늘어놓기도 합니다.

뻔뻔스럽다고요?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 정도의 죄만으로 [고]를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이 영화가 기회주의자의 표절작임은 분명하지만 그 표절은 놀라울 정도로 능숙하고 훌륭하게 되어 있으니까요. 이렇게 잘 할 능력이 있으면서 도대체 왜 케빈 윌리엄슨과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역에서 놀고 있는지 이해가 안될 정도입니다.

안 보신 분들을 위해 간단한 내용 정보를 드려야 할 텐데, 이게 쉽지 않군요. 그래도 대충 노력해본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무대는 크리스마스를 앞둔 LA입니다. 1장 [로나]에서 수퍼마켓 직원인 17살 소녀 로나는 방세를 벌기 위해 라스 베가스로 놀러간 동료 사이먼을 대신해서 마약 딜러 일에 뛰어듭니다. 2장 [사이먼]에서는 라스 베가스로 놀러간 사이먼이 다양한 도박과 폭력, 섹스로 범벅이가 된 폭력적인 휴일을 보내고요. 3장 [애덤과 잭]에서는 1장에서 등장했던 텔레비전 배우인 애덤과 잭의 이야기가 소개되고 앞에서 일어났던 모든 사건들이 종결됩니다.

이건 아주 기초적인 정보일 뿐입니다. 더 이상은 이야기하고 싶지 않군요. 존 어거스트가 쓴 이 영화의 각본의 진짜 재미는 스토리를 예측불허의 방향으로 뒤집어 엎는 그 기가 막힌 솜씨에 있기 때문입니다. 스토리의 구성과 재미만을 염두에 둔다면 [고]는 원조인 [펄프 픽션]을 능가합니다.

어거스트는 인상적인 캐릭터들을 구축하는 데에도 능합니다. 로나나 사이먼처럼 입체적이고 흥미로운 캐릭터로 스토리를 끌어가는 것도 쉽게 해치우지만 중간중간에 끼워넣는 괴물들 역시 재미있습니다. 특히 3장에 등장하는 버크와 아이린 커플은 걸작입니다.

캐릭터들을 꾸며내는 배우들도 생각만큼 만만하지 않습니다. 네, 이 영화는 [도슨즈 크릭]과 [파티 오브 파이브], 심지어 [앨리 맥빌] 배우들까지 부글거립니다. 그러나 감독 덕 라이먼은 그들의 기존 텔레비전 이미지를 그대로 사용하면서도 그들에게 새로운 차원과 연기의 공간을 제공해줍니다. 이 역시 기가 막히게 능숙한 솜씨로 해치웠어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배우는 로나 역의 사라 폴리입니다. 이 배우의 음울한 우아함이 로나라는 막나가는 캐릭터와 결합한 결과는 무척 아름답습니다. 1장이 끝나면서 퇴장당하는 걸 보는 게 억울할 정도지요. 그러나 2장을 이어받는 데스먼드 애스큐의 경쾌한 좌충우돌을 보는 것도 또다른 재미입니다. 3장을 끌어가는 스코트 울프와 제이 모어 콤비는 이 영화에서 가장 덜 신선한 캐스팅이지만 그 덜 신선함 역시 의도적이니 문제될 건 전혀 없습니다.

[고]는 신선한 재능들로 가득 찬 흥미로운 영화입니다. 무척 잘 만들기도 했고요. 하지만 도대체 이 영화가 하려고 했던 건 무엇이었을까요? 표절이나 아류로 보기엔 너무 잘 되어 있으니, 타란티노에 대한 오마주 정도로 격상시켜 읽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뭔가 모자라는군요. [고]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않는 영화치고는 너무 능숙하고 민첩해서, 진지한 하나의 작품보다는 자신들의 재능을 과시하기 위한 쇼케이스처럼 보입니다. 타란티노 흉내는 자기네들이 그 노골적인 흉내 속에서도 얼마나 잘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의도적 핸드캡이 아니었을까요? (99/12/21)

DJUNA

기타등등

원래 [고]는 단편 영화로 기획되었다고 하더군요. [로나] 부분이 바로 그 단편 영화를 위해 쓰여진 각본이었다고 합니다. 나중에 앞의 사건을 설명하고 결말을 지어주기 위해 2, 3장이 추가된 것이지요. 그렇다면 시작부터 타란티노 흉내는 아니었던 셈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