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 Clint Eastwood

주연
클린트 이스트우드....월트 코왈스키
Clint Eastwood....Walt Kowalski
크리스토퍼 칼리....자노비치 신부
Christopher Carley....Father Janovich
비 방.....타오 방 로어
Bee Vang....Thao Vang Lor
아니 허....수 로어
Ahney Her....Sue Lor
브라이언 헤일리....미치 코왈스키
Brian Haley....Mitch Kowalski
제랄딘 휴즈....카렌 코왈스키
Geraldine Hughes....Karen Kowalski
드리마 워커....애슐리 코왈스키
Dreama Walker....Ashley Kowalski
브라이언 하우....스티븐 코왈스키
Brian Howe....Steve Kowalski
존 캐롤 린치....이발사 마틴
John Carroll Lynch....Barber Martin
윌리엄 힐....팀 케네디
William Hill....Tim Kennedy

월트

[그랜 토리노]에서 가장 재미있는 구경거리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발동 거는 소리입니다. 그는 영화 시작부터 못마땅한 것들을 보면 노골적으로 불쾌함을 드러내며 그르렁거립니다. 이건 내면 갈등의 표출 따위가 아닙니다. 그냥 대놓고 그러는 거죠. 그가 연기하는 월트 코왈스키는 최근 몇 년 동안 계속 그러면서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일종의 자기 선언이라 할 수 있지요. “나는 심술궂은 영감탱이다. 내 앞에서 꺼져.”

결코 상대하기 편한 인물은 아니죠. 그건 자기도 알고 자식들도 압니다. 그런데 어쩌다가 그렇게 되었을까요? 공식적인 이유는 그가 젊었을 때 한국전쟁에 참여했고 당시 경험 때문에 심술궂은 인종차별주의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긴 말버릇이 참 심하긴 하더이다. 이 영화를 보면 20세기 이후 미국에서 사용된 인종차별적 어휘를 거의 모두 마스터할 수 있습니다. 특히 동양인들에게 대한 욕들은요. 어쩜 그렇게 다채로운지. 밤마다 유어사전을 보면서 열심히 공부한 게 분명합니다.

물론 그거 하나만으로 모든 게 설명되지는 않겠죠. 보다 정교한 분석을 원한다면 전쟁 이후 은퇴할 때까지 포드사에서 근무한 남자가 일본으로 상징되는 아시아 국가에 대해 느끼는 불편한 감정을 추가할 수 있을 겁니다. (미시간주 자동차 번호판만 봐도 그곳이 디트로이트 교외라는 걸 알 수 있지요.) 미국 자동차 산업의 몰락 이후 서서히 자기 마을이 다민족화/빈민화되어 가는 것을 바라보는 ‘백인 원주민’의 심정 또한 반영되었을 거고요. 제 생각은 어떠냐고요? 글쎄요. 전 이 영감이 그냥 습관적으로 이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오랫동안 ‘심술궂은 영감탱이’로 살아오다보니 그게 그냥 굳어져버린 거죠. 그는 다른 식으로 행동하는 방법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냥 그대로 살다가 죽어야죠. 하긴 죽을 날이 머지않은 노인네가 갑자기 습관을 바꾸어 어쩌겠습니까.

그런데 어이없게도 그의 습관을 바꾸는 일이 일어납니다. 이웃에 사는 몽족 가족이 동네 몽족 갱들에게 위협을 당하는 동안 그가 갑자기 구세주로 나타난 거죠. 사실 그는 구세주가 될 생각 따위는 없었습니다. 그냥 더러운 동양놈들이 자기네 집 마당에 들어오는 게 싫어서 총을 들이댔을 뿐이죠. 하지만 그 뒤로 그는 갑자기 이웃 몽족 사람들의 영웅이 됩니다. 아시잖습니까. 동양사람들 오지랖. 갑자기 이웃들은 그에게 꽃과 음식들을 선물로 주고, 이웃집 수라는 여자아이는 그를 집으로 초대하고, 갱 신고식 때문에 그의 차 그랜 토리노를 훔치려던 그 집 아들 타오는 빚을 갚기 위해 그의 집에서 잡일을 거들게 됩니다. 정말 오지랖도 이런 오지랖이 없습니다.

월트가 정말로 뼛속까지 인종차별주의자였다면 큰 일이 났을 겁니다. 하지만 아까도 말했지만 그는 그렇게 단순한 사람이 아니었죠.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면, 그는 단순하지만 그를 그렇게 만든 사정은 조금 복잡합니다. 한국전쟁의 경험은 그에게 증오심을 넣어주기도 했지만 숨은 죄책감의 원인이기도 했습니다. 이웃 사람들의 오지랖에 말려들면서 그는 아마 무의식적으로 이것이 그에게 그런 과거와 화해하는 길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식했을지도 모릅니다. 저야 영감이 갑자기 이렇게 정공법으로 치고 들어오는 ‘적들’을 어떻게 막아야 하는지 까먹었기 때문일 가능성이 더 크다고 생각하지만 말입니다. 드러내놓고 심술궂은 사람들이 정말 뼛속깊이 나쁜 사람인 경우는 별로 없죠. 잘만 공략하면 이 사람들은 그냥 무너집니다.

이후 전개되는 이야기는 월트와 타오와의 관계에 대한 것입니다. 그는 여전히 인종차별적인 욕설을 웅얼거리면서도 타오는 그의 아들처럼 맞아들이죠. 그 과정이 엄청나게 정치적으로 공정하거나 리버럴하지는 않습니다. 그랬다면 그의 캐릭터와도 맞지 않았을 거고요. 그는 영화 내내 몽족들 앞에서 신식 문명을 전파하는 서양인처럼 행동합니다. 타오와의 관계도 기본적으로 그에게 미국적 가치를 소개하는 것이죠. 원래 월트라는 사람이 좀 웃기는 구석이 있어서 종종 이 과정은 코미디가 됩니다. 특히 월트가 이탈리아 이발사 친구에게 타오를 데리고 가서 ‘진짜 미국인이 말하는 법’을 가르치는 장면 같은 것들을 보면 말이죠. 하지만 다른 경우 그는 꽤 진지하고 이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 역시 그에 대해 진지한 것처럼 보입니다. 예를 들어 월트가 타오를 데리고 무너져가는 맞은 편 집을 수리하는 장면을 보죠. 암만 봐도 그는 ‘깨진 유리창 이론’의 신봉자 같지 않습니까? 영화는 아무리 월트가 심술궂고 편견에 찬 인물처럼 보여도 그가 직접 조립에 참여한 72년도 그랜 토리노처럼 존중받을만한 미국적 가치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그게 이 영화가 하고 싶은 말인 거죠. 여러분이 그 의견에 동의하지 않아도요.

영화가 중반 이후까지 타인 또는 타민족간의 상호 교감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면 후반부터는 폭력과 도덕적 선택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갑니다. 이 역시 그렇게 리버럴한 관점은 아닙니다. 네, 착한 원주민과 나쁜 원주민을 가르는 서부극 논리를 읽을 수도 있겠군요. 하지만 이 영화에는 그보다 캐릭터들을 분류하는 태도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랜 토리노]의 세계는 선악, 아니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인간 가치의 평가가 분명한 세계죠. 이 영화에서 몽족 갱단은 무가치하고 퇴치되어야 할 존재입니다. 다른 생각 따위는 할 필요도 없죠.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많은 영화들이 그렇듯 보호받고 존중받아야 할 사람들은 이전에 그런 가치를 증명해야 합니다. 그게 좀 매정하게 느껴지긴 하죠. 몽족 갱단에 말려든 아이들도 타오 같은 때가 있지 않았겠습니까? 그 중에는 타오보다 조금 더 운이 나빴을 뿐인 애들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들이 일단 선을 넘은 이상 용서는 없습니다. [그랜 토리노]는 그렇게 폭력이 심한 영화는 아니지만 태도는 여전히 [더티 해리] 스타일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차이점이 있다면 그런 태도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가톨릭 속죄극으로 끝난다는 것입니다. 이 과정이 그렇게 잘 짜였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결말까지 억지로 끌고 간다는 느낌이 심하죠. 그러나 그 인위적인 구성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결말이 클린트 이스트우드라는 스타의 이미지를 굉장히 교활하게 이용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영화는 그의 이미지를 최대한 활용하면서도 적절한 때에 그를 깨트립니다. 그런데도 최종 결말을 보면 너무나도 이스트우드답고요. 그가 아닌 다른 배우가 이 역할을 맡았다면 이 느낌이 살았을지 모르겠어요. 완벽한 더티 해리식 행동입니다. 그는 죄지은 자로서 속죄는 하지만 결코 혼자만 하지는 않거든요! 브라보. (09/03/25)

DJUNA

기타등등

월트의 개가 참 예쁘더군요. 순하게 나이먹은 할머니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