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줄리언 재롤드 Julian Jarrold

주연
요안 그리피스....핍
Ioan Gruffudd....Pip
저스틴 워델....에스텔라
Justine Waddell....Estella
샬로트 램플링....미스 해비셤
Charlotte Rampling....Miss Havisham
버나드 힐....에이블 맥위치
Bernard Hill....Abel Magwitch
클라이브 러셀....조 가저리
Clive Russell....Joe Gargery
레슬리 샤프....조 부인
Lesley Sharp....Mrs Joe
이안 맥다이어미드....재거스
Ian McDiarmid....Jaggers
대니얼 에번즈....허버트 포켓
Daniel Evans....Herbert Pocket
엠마 커니프....비디
Emma Cunniffe....Biddy
토니 커런....올릭
Tony Curran....Orlick
니콜라스 우드슨....웨믹
Nicholas Woodeson....Wemmick
제임스 힐리어....벤틀리 드러멀
James Hillier....Bentley Drummle
가브리엘 톰슨....어린 핍
Gabriel Thomson....Young Pip
젬마 그레고리....어린 에스텔라
Gemma Gregory....Young Estella

듀나 아무리 요새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고 해도 문학작품은 여전히 큰 자산입니다. BBC의 문학 각색물들이 그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지요. 그들이 현대 작품들을 무시한다는 건 아니지만 ([육체와 영혼], [오렌지만 과일은 아니다]와 같은 작품들을 보세요) 역시 이 사람들의 진짜 무기는 고전물들입니다.

이 작품들이 소비되는 방식을 꼭 진지하게만 여길 필요는 없습니다. 다시 말해 고전 각색물이라고 해서 꼭 경외감이 가득 찬 눈으로 바라볼 필요는 없단 말이지요. 결국 우리들이 이런 각색물들을 보면서 느끼는 제1차적인 쾌락이란 완벽한 영국식 악센트를 구사하는 우아한 사람들이 고풍스러운 의상을 입고 돌아다니는 걸 바라보는 데서 느끼는 스노비즘일 가능성이 가장 높으니까요.

하지만 또 그런 식으로만 볼 필요도 없습니다. BBC 사람들은 정말로 이런 종류의 각색물들을 잘 만드니까요. 배우들은 훈련이 잘 되어 있고, 작가들은 지적이며, 모두들 그들이 다루는 고전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종종 이런 아카데미즘이 지나쳐서 생기가 떨어지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적절한 열정과 결합하면 결과는 상당히 좋죠.

파프리카 [위대한 유산]은 상당히 자주 각색된 소설입니다. 레너드 말틴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화라고 허풍을 떨고 있는 데이빗 린의 고전이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죠. 최근엔 20세기 미국으로 시대를 옮긴 알폰소 쿠아론의 영화가 있었고요. 그리고 그 사이에는 수많은 텔레비전 용 각색물들이 쌓여 있지요.

우리가 다루고 있는 99년도 각색물도 나왔을 때는 상당히 소문이 컸었죠? BBC 각색물 중에서도 대자본 영화였고 당시 홍보도 상당했었잖아요. 뉴스위크지에서 미스 해비셤으로 분장한 샬로트 램플링의 사진을 보고 상당히 그럴싸하다고 생각했던 게 기억나요.

듀나 많은 BBC 각색물들이 그런 것처럼 이 작품도 원작에 충실한 편입니다. 물론 종종 사건들이 일어나는 순서가 바뀌기도 했고 중요하지 않은 부분들은 삭제되기도 했어요. 그러나 전체적으로 이 작품은 데이빗 린의 영화보다 원작에 훨씬 가깝습니다. 넉넉한 러닝 타임 덕택에 영화 버전에서는 무시되었던 비디나 올록과 같은 조역들도 충분히 잘 다루어졌고요. 재거스나 핍의 누나와 같은 캐릭터도 훨씬 생생하게 구현된 편입니다.

파프리카 하지만 원작을 읽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도 있어요. 소설을 읽지 않은 사람들은 비디와 핍이 어떤 사이인지 알아차리기 쉽지 않을 거예요. 왜 그 아이가 핍이라는 괴상한 이름을 달고 다니는 이유는 더더욱 모를 거고요. 포켓의 학생들이나 핀치 클럽에 대한 설명도 부족해요. 꼭 '뭔지 모르겠으면 책이나 읽어'라고 놀려대는 것 같아요.

듀나 꼭 그런 걸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무덤가의 핀치들이 누군지 모른다고 해도 스토리를 이해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비디에 대해서도 '핍의 좋은 친구다' 정도만 알면 충분하고요.

파프리카 아주 원작에 충실하다고 하기도 그렇네요. 어딘지 모르게 분위기가 달라요. 린의 영화는 스토리가 좀 다를지는 몰라도 그 분위기는 소설에 훨씬 가까웠답니다.

듀나 아마 스토리를 다루는 관점 때문이겠지요. 소설 [위대한 유산]은 회고적인 작품입니다. 이미 성장한 핍이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이지요. 나레이터인 핍은 소설 속의 고난을 모두 겪은 뒤라 이미 성숙해 있고 또 어느 정도 회한에 차 있습니다. 린의 영화에서는 그런 성숙한 느낌이 작품 전체에 묻어있지요. 존 밀즈가 연기한 핍은 그냥 젊은 핍이 아닙니다. 나이 든 핍의 눈으로 바라본 젊은 핍이지요. 심지어 알폰소 쿠아론의 영화도 그런 회고 분위기를 남겨놓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BBC 버전은 그런 걸 싹 지워버렸습니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현재진행형이지요. 덕택에 작품의 분위기는 훨씬 가차없고 냉정합니다. 디킨즈식 감상은 찾아볼 수도 없어요. 미래를 모르는 핍이 보는 세상은 환상과 차가운 현실 사이를 단두대처럼 가차 없이 오갑니다. 나레이션의 방벽이 사라지자 핍 역시 훨씬 매정하고 거친 인물이 되었습니다.

요안 그리피스의 캐스팅도 그런 느낌에 한 몫 했습니다. 그리피스는 존 밀즈와 극을 달리는 배우지요. 젊고 잘생겼고 조금은 과격해보입니다. 실제로 그는 신분상승의 열망으로 불타는 가난한 노동자 계급 청년처럼 보입니다.

파프리카 그런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후반부의 성숙한 느낌이 결여되어 있기도 하죠.

듀나 그런 성숙한 느낌이 좋다면 원작을 다시 보면 되죠. 그리고 여기선 별 문제 없습니다. 핍이 카이로에서 돌아온 뒤에 끝을 맺는 원작과는 달리, 이 작품은 그가 카이로로 떠나기 전에 끝나니까요. 아직까지 그에게 그런 여유가 없는 건 당연합니다.

파프리카 에스텔라는 핍보다 더 크게 변형된 캐릭터죠? 더 입체적이고 동정가는 캐릭터로 느껴졌어요. 원작의 차디찬 인물과는 느낌이 달라요. 에스텔라를 연기한 저스틴 워델도 차가운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배우지요. 원작과는 달리 '나에겐 심장이 없어'와 같은 대사들은 거의 반어적으로 들리기까지 합니다.

듀나 실제로 반어법이겠지요. 전 이 작품의 에스텔라가 디킨즈의 원래 설정이 의도했던 바를 원작보다 더 잘 살렸다고 생각해요. 에스텔라는 여러 면에서 핍의 거울상이라고 할 만한 인물입니다. 둘 다 맥위치와 미스 해비셤이 복수심에 불타 창조해낸 대리전의 병사들이지요. 둘 다 막판에 자기 창조주에 반기를 들고요. 약간 변형된 에스텔라와 미스 해비셤의 대결은 이런 유사점을 더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각본에서 에스텔라는 미스 해비셤의 계획에 따라 드러멀과 결혼하는 게 아니라 미스 해비셤에 대항하기 위해 드러멀과 결혼합니다. 이 때 에스텔라가 미스 해비셤에게 느끼는 감정은 핍이 맥위치에 대해 느끼는 감정과 거의 일치하는 것입니다.

파프리카 그러고보니 맥위치와 미스 해비셤이 세상에 대해 증오를 품기 시작했던 원인도 같지요. 모두 콤피슨 때문이잖아요. 콤피슨과 미스 해비셤의 관계를 삭제하지 않았다면 더 낫지 않았을까요?

듀나 그렇지 않아도 충분히 멜로드라마틱한 걸요. 없어도 됐어요.

파프리카 콤피슨과 맥위치의 옛 이야기는?

듀나 역시 삭제해도 상관 없었어요. 린의 영화에서도 그랬을걸요. 중요한 건 이야기 자체가 아니라 맥위치가 콤피슨을 통해 품고 있는 '신사계급'에 대한 증오심이니까요.

그러고보면 이 각색은 린의 영화보다 계급 갈등의 묘사가 훨씬 강해요. 에스텔라에게 놀림을 받은 어린 핍이 울먹이며 대장장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 같은 걸 보세요. 린의 영화에서는 그런 분노와 수치심은 없었어요.

파프리카 꼬마들이 참 예뻤어요. 저한텐 제1부가 가장 좋았어요.

듀나 3, 4부로 옮겨가면서 속도가 좀 급해진다는 느낌이 들죠. 사실 정말로 급한 건 아니에요. 나중에 책으로 확인해 봤는데, 시간 배분은 책의 길이와 거의 일치했어요. 아마 1, 2부가 그만큼이나 큰 비중으로 다루어졌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물리적 시간만이 따라야 할 전부는 아닙니다.

그래도 영화 버전들은 후반부를 이만큼 상세하게 다루진 못했어요. 린의 영화는 로맨틱한 해피엔딩으로 성급하게 종결되었고, 쿠아론의 영화는 나레이션으로 후일담을 잠시 언급하고 할 일 다했다면서 영화를 끝내버리죠. 하지만 미니 시리즈는 핍의 절망과 극복, 에스텔라와의 조심스러운 재회를 공들여 묘사합니다. 역시 이게 미니 시리즈의 장점인 듯 해요. 충분한 시간을 들여 느릿느릿 이야기를 전개할 수 있다는 것 말이에요.

파프리카 그렇게 많은 시간이 남아돌면서 왜 조의 런던 방문처럼 중요한 에피소드가 삭제되었죠? 적어도 그 장면은 웨윅의 결혼식보다 훨씬 중요한 걸요. 이 작품의 취사 선택에는 아주 동의할 수 없어요.

듀나 그런 게 없어도 이 작품의 핍의 타락이 충분히 눈에 보일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파프리카 요안 그리피스나 저스틴 워델에 대해서는 이미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샬로트 램플링을 빼놓고 이야기를 끝낼 수는 없죠.

듀나 미스 해비셤은 결코 연기하기 쉬운 캐릭터가 아니죠. 사실 이 사람은 진짜 캐릭터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거대하고 인상적인 괴물이지요. 하지만 램플링은 이런 괴물을 점심 식사처럼 자연스럽게 해치울 수 있는 몇 안되는 배우들 중 한 명입니다. 램플링에게 미스 해비셤이 특별히 도전적인 역이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러나 디킨즈 각색물 관객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정말 새롭고 흥분되는 창조물이었어요.

전체적으로 보기 즐거운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예쁜 배우들이 예쁜 옷을 입고 나왔다는 것 때문은 아닙니다. 이 작품의 시각적 인상은 이전에 나왔던 BBC 히트작인 [오만과 편견]보다 훨씬 강하고 또 그만큼이나 많은 부분을 이미지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라파엘 전파의 작품들을 연상시키는 해비셤 부인의 저택과 같은 장면들은 특히 그렇지요. 린의 영화처럼 영화적 쾌락을 제공해주는 작품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좋았어요.

파프리카 슬슬 이야기를 끝마칠 때가 되었네요. 결론은?

듀나 흥미로운 각색이에요. 이 정도 차별성이면 충분히 혼자 설 수 있을 정도죠. 하지만 다른 BBC 각색물처럼 이 작품도 결국은 원작의 힘에 기대고 있습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은 원작의 흐름을 끊지 않고 여유있게 담아낼 수 있는 긴 러닝타임이었다고 생각해요. (00/11/24)

D&P

기타등등

근데 원작과는 달리 올록은 알리바이가 있지 않았나요? 어떻게 해결할지 궁금했는데 끝끝내 안하고 넘어가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