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오드리 웰즈 Audrey Wells

주연
사라 폴리....하퍼 슬론
Sarah Polley....Harper Sloane
스티븐 리....코니 피츠패트릭
Stephen Rea....Connie Fitzpatrick
진 스마트....데보라 슬론
Jean Smart....Deborah Sloane
지나 거숀....빌리
Gina Gershon....Billie
폴 둘리....월터
Paul Dooley....Walter
프랜시스 기넌....앨런 슬론
Francis Guinan....Alan Sloane
재스민 가이....린다
Jasmine Guy....Linda
트레이시 레츠....잭
Tracy Letts....Zack
산드라 오....신디
Sandra Oh....Cindy
캐리 프레스턴....패티
Carrie Preston....Patty
에밀리 프록터....수잔 슬론
Emily Procter....Susan Sloane
그레이스 우나....에이프릴
Grace Una....April
게드 와타나베....에드
Gedde Watanabe....Ed
샤론 맥나이트....레슬리
Sharon McNight....Leslie
칼턴 윌본....제이
Carlton Wilborn....Jay

1.

잘나가는 변호사들이 부글거리는 슬론 집안에서 20살짜리 하퍼 슬론은 다리 밑에서 주워온 아이 같습니다. 하버드 법대에서 입학 허가가 오기는 했지만 법대에 다니기는 싫고 그렇다고 다른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런 어정쩡한 상황에서 맥없이 고민만 하던 하퍼에게 코니라는 중년의 사진작가가 접근해 옵니다. 그의 보헤미안적인 매력에 끌린 하퍼는 대책없이 집에서 나와 그와 동거를 시작하죠. 그러나 하퍼는 곧 그녀가 코니를 거쳐간 수많은 '기네비어'들 중 하나일 뿐이라는 걸 알게 되고...

2.

'May-December relationship'이란 표현이 유행했던 때가 있었죠. 숀 코너리, 해리슨 포드, 마이클 더글러스처럼 늙디 늙은 헐리웃의 거물들이 캐더린 제타 존스, 앤 헤이시, 기네스 팰트로와 같이 새파랗게 젊은 여자들과 콤비로 나오는 영화들이 부글거렸던 최근 몇 년 동안 말이에요.

별로 보기 좋은 꼴도 아니었고, 그 유행 속에 숨은 의미도 유쾌하지는 않아서, 당연히 이런 유행은 비난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더욱 나쁜 것은 이런 영화들이 이 어긋난 만남을 제대로 깊이 있게 다루지도 못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퍼펙트 머더]와 같은 영화를 보세요. 더글러스와 팰트로의 나이 차이에 대한 언급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기네비어]를 다른 'May-December relationship' 영화들에서 갈라놓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대상에 대한 접근 방식입니다. 영화는 이들의 나이 차이를 무시하는 대신 전면에 가져다 놓습니다. 그 결과 이들의 나이차는 영화에 상당히 굵직한 이야기거리를 제공해줍니다. 두 커플이 느끼는 소외감, 남자의 수치심, 주변 사람들의 멸시와 같은 것들은 모두 여기에서 나오는 것이니까요.

영화는 연애의 심리학 역시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퍼와 같은 외로운 금발 머리 공주와 같은 타입의 젊은 여자들이 코니와 같은 중년의 맛간 알콜 중독자한테 빠지는 일은 정말 꽤 자주 일어난답니다. 결과가 좋은 걸 본 적은 아직까지 없습니다만.

3.

그러나 [기네비어]는 나이 차이에 대한 영화만은 아닙니다. 하퍼와 코니의 관계는 단순히 성적인 것이 아니니까요. 그들의 관계는 스콜세지가 [뉴욕 스토리]의 첫 에피소드 [인생 수업]에서 그렸던 예술가와 제자의 관계에 더 가깝습니다. 코니는 하퍼를 잠시 가지고 노는 천박한 바람둥이가 아닙니다. 그에게는 계획과 전망이 있습니다. 그는 하퍼한테서 예술가의 가능성을 보았다고 믿고 그걸 꽃피우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진짜 믿고 있습니다.

따지고보면 코니 역시 하퍼와 같은 수준의 환상에 빠져 있습니다. 하퍼가 코니의 보헤미안 라이프 스타일 스타일에 로맨틱한 환상을 품고 있는 것처럼 그 역시 '스티글리츠-오키프'식 환상을 품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그런 환상을 굳히기 위해 기네비어들을 모델로 해서 스티글리츠가 찍은 오키프의 누드 사진을 반복해서 표절합니다.

그는 그 환상의 피해자이기도 합니다. 그가 끝도 없이 '제자'들을 갈아치웠던 것은 그가 제자들의 단물을 빨아먹고 버렸기 때문은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라면 반대지요. 코니는 그의 기네비어들을 진심으로 사랑했습니다. 나이들고 못생기고 가난하고 자기 재능도 제대로 관리를 못하는 사람은 코니 자신이지, 그의 기네비어들이 아닙니다. 기네비어들은 다른 기네비어들에게 밀린 게 아니라 '졸업'한 것이죠. 환상을 버리고 다음 단계로 도약해가는 기네비어들과는 달리 코니는 그 자리에 남아서 자신의 환상 속에 쭈그리고 앉아 죽어갑니다. 이 영화가 비극이라면 그것은 코니의 비극입니다. 이 영화의 유일한 희생자니까요.

4.

[기네비어]는 오드리 웰즈의 감독 데뷰작입니다. 아시다시피 웰즈는 [고양이와 개에 대한 진실]의 매력적인 각본을 쓴 바로 그 사람입니다. 당연히 이 영화의 각본도 직접 썼고요.

보고 있노라면 웰즈의 취향이 보입니다. [기네비어] 역시 [고양이와 개에 대한 진실]처럼 상대방에 대한 환상에 빠진 연인들에 대한 이야기니까요. 연적이어야 할 여자들의 묘한 연대감을 보여주는 방식 역시 반복되는 소재고요. 게다가 남자들이 모두 외국인 사진작가네요! (슬슬 웰즈의 사생활이 의심되기 시작하는군요.)

단지 [기네비어] 쪽이 훨씬 진지합니다.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였던 [고양이와 개에 대한 진실]과는 달리, [기네비어]는 주제를 훨씬 깊게 잡고 있고 다루는 방식도 좋습니다. 러브 스토리로서도 훨씬 야무지고요. 각본가로서 웰즈는 발전했습니다.

하지만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만약 웰즈가 자기가 움켜쥔 소재를 최대한으로 몰고 갔다면 [기네비어]는 정말 훌륭한 영화가 되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러기엔 웰즈의 마음이 너무 약했던 모양입니다. 이 영화의 결말은 잘 버텨온 이야기에 비해 지나치게 감상적인 구석이 있습니다. 특히 '코니 스페셜'은 그 중 최악입니다. 코니에게 이렇게까지 관대할 필요는 없었어요. 영화 결말에 보여주어야 했던 것은 감상적인 위로가 아니라 원래의 드라마가 품고 있던 비극이었습니다. '코니 스페셜'을 비주얼없이 다루기만 했어도 영화는 훨씬 나아졌을 거라고 생각해요.

하퍼의 예술적 성숙 과정이 제대로 구체화되지 못한 것 역시 단점일 수 있습니다. 후반부의 '역할 전환'만으로는 부족해요.

5.

전 사라 폴리를 바라보는 것이 정말 즐겁습니다. 그건 이 자그만 배우가 기가 막히게 포토제닉한 미인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그 기초적인 외모를 정신없이 매력적인 경험으로 발전시키는 이 친구의 재질 때문입니다. 어느 정도는 아역 시절 때부터 쌓아올린 테크닉 때문이겠고, 어느 정도는 타고난 배우로서의 재능 때문이겠지만, 그 중 상당수는 이 사람의 원래 성격 때문이 아닐까요?

하여간 폴리가 연기하는 하퍼는 정말로 재미있습니다. 뭐랄까, 지나칠 정도로 서비스가 좋아요. 보통 배우들이라면 간단한 표정 연기 하나만으로 커버해 버릴 상황에서도, 폴리는 열에서 백까지를 보여줍니다. 폴리의 미묘한 연기는 끊임없는 조바꿈으로 음악적 의미를 확장해가는 클로드 드뷔시와 같은 작곡가들의 음악과 같습니다. 이게 하퍼라는 불안한 캐릭터에 대한 정확한 해석임은 말할 필요도 없고요.

스티븐 리는 보다 단순하지만 더 노력한 연기를 보여줍니다. 그가 미스 캐스팅이라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꽤 있지만, 제가 보기엔 더 이상 적역일 수 없습니다. 사실 코니는 결코 번지르르한 미남이어서는 안됩니다. 바로 리처럼 초라하고 왜소한 남자일수록 더 설득력이 있죠. 저는 리가 패배자로서의 모습과 보헤미안 풍의 연인 모두 근사하게 해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같은 연기 어휘를 살짝 변주해서 해낸 것이니 쉬운 연기도 아니었지요.

다른 조역들 중 인상적인 배우는 하퍼의 어머니 데보라를 연기한 진 스마트입니다. 스마트의 차디찬 연기는 너무 강렬해서, 미라맥스가 이 배우를 아카데미로 밀고가지 않은 것이 이상할 정도입니다. (00/04/02)

DJUNA

기타등등

코니는 단점이 많은 사람이었지만 절대로 인종차별주의자는 아니었을 겁니다. '기네비어'의 인종적 다양성을 보면 알 수 있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