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마리오 바바 Mario Bava

주연
스티븐 포사이드....존 해링턴
Stephen Forsyth....John Harrington
다그마르 라샌더....헬렌 우드
Dagmar Lassander....Helen Wood
로라 베티....밀드레드 해링턴
Laura Betti....Mildred Harrington
헤수스 푸엔테....러셀 경위
Jesús Puente....Inspector Russell
페미 베누치....앨리스 노튼
Femi Benussi....Alice Norton
안토니아 마스....루이즈
Antonia Mas....Louise
루치아노 피고지....벤시스
Luciano Pigozzi....Vences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존 해링턴

[공포의 허니문]은 국내에 출시되어 있는 몇 안되는 마리오 바바 영화입니다. 바바를 소개하는 이상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나쁜 선택도 아니죠. 썩 좋은 지알로 영화니까요. 다리오 아르젠토식 학살을 기대하지 않는다면 아르젠토가 만든 웬만한 지알로들보다 훨씬 재미있고요.

영화는 결혼 전날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들을 손도끼로 살해하는 연쇄살인마의 이야기입니다. 이 살인마는 아르젠토의 살인범들과는 달리 가죽 장갑을 낀 신비스러운 괴물이 아닙니다. 관객들은 처음부터 그가 존 해링턴이라는 웨딩 드레스 디자이너라는 걸 알고 있지요. 해링턴은 영화가 시작될 때부터 끝날 때까지 관객들과 함께 하며 가끔 그들에게 한두마디 던지기도 합니다.

왜 해링턴은 여자들을 죽이는 걸까요? 그건 그가 이전에 겪었던 끔찍한 사건의 진상에 접근하기 위해서입니다. 어렸을 때 그는 어머니가 살해당하는 장면을 목격했는데, 여자들을 한 명씩 죽일 때마다 그 때의 기억이 조금씩 돌아오거든요.

유감스럽게도 해링턴의 고민은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보기 싫어 죽겠는데 이혼도 해주지 않으면서 자기를 경제적으로 옭아매는 아내 밀드레드가 옆에 버티고 있으니까요. 결국 그는 아내도 죽여버리지만 문제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아내의 유령은 여전히 살아있는 사람처럼 그의 옆에 달라붙어 떠나지 않거든요.

[공포의 허니문]은 산만한 영화입니다. 신부 살인마 존 해링턴의 이야기와 아내 살인범 존 해링턴의 이야기는 전혀 다른 영화에 속해있는 것처럼 보이죠. 한 편은 미치광이 연쇄 살인범을 다룬 정통 지알로 영화에, 다른 한 편은 죄의식에 떠는 살인마를 다룬 에드거 앨런 포우식 고딕물에 속한 것처럼 보이니까요. 영화는 이 둘을 특별히 섬세하게 짜맞출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그냥 생각없이 두 이야기를 가볍게 떡 붙여놓고 흐뭇해하고 있지요. 이는 파졸리니의 전담 배우로 유명한 로라 베티에게 큰 역을 주기 위해 아내 역을 추가한 결과라고 합니다.

이런 가벼움은 영화의 장르에 의해 정당화됩니다. [공포의 허니문]은 기본적으로 코미디이거든요.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발랄하고 야비한 농담입니다. 해링턴의 연쇄 살인도 농담이고 밀드레드의 유령에게 쫓기는 해링턴의 수난기도 농담이지요. 어떻게 보면 좀 일찍 나온 농담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의 후배 아르젠토는 몇 년 뒤에야 [딥 레드]에서 [공포의 허니문]이 농담으로 삼은 지알로 스토리를 진지하고 직설적으로 다루고 있거든요. 그러나 바바는 이미 [피와 검은 레이스]로 정통 지알로의 절정에 도달한 적 있었으니 언제까지 진지하게 굴 필요는 없었지요.

영화가 농담의 타겟으로 삼은 대상은 결혼입니다. 바바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 가식적이고 위선적인 관습을 놀려대고 있습니다. 신부 살인마의 이야기가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피로 물들이는 사악한 비주얼 농담이라면, 밀드레드의 유령 이야기는 빙글빙글 웃으면서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라는 익숙한 서약에 야유를 퍼붓고 있지요. 이 모든 건 그렇게 행복한 결혼 생활을 누리지 못했던 바바 자신의 불만이 터져나온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스타일리스트로서 바바의 개성은 이 영화에서도 빛을 발합니다. 그는 이 영화에서 직설적인 살인 장면은 보여주지 않습니다. 해링턴이 손도끼를 휘두르는 바로 그 순간 화면은 환각에라도 걸리는 것처럼 일그러지지요. 잔인한 장면만 찾아다니는 팬들은 실망하겠지만 이런 효과들은 자기 자신도 정신의 불안정함을 인정하는 미치광이 남자의 심리를 묘사하는데 완벽하게 맞습니다. 그는 보다 정통적인 서스펜스를 능란하게 구사하기도 합니다. 밀드레드가 계단 위에서 죽어가는 동안 형사들이 집을 방문하는 장면을 보세요. 해링턴이 그럴싸한 핑계로 그들을 쫓아내는 동안 계단에서는 죽어가는 아내의 몸에서 피가 한 방울 씩 뚝뚝 떨어집니다...

[공포의 허니문]은 70년대에 만들어진 바바의 많은 영화들이 그렇듯 경박한 작품입니다. 하지만 그 경박함은 얄팍함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지는 않습니다. 바바가 휘두르는 피와 스타일의 폭력 뒤에는 어느 정도 인생을 살아온 한 예술가가 구축한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깔려있습니다. 잔인함의 극한만 추구했던 그의 후배들은 바바의 이런 여유로움을 끝까지 배우지 못했지요. (04/09/17)

DJUNA

기타등등

1. 제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사의 지역코드 1번 DVD는 화질이나 음질이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닙니다. 최근에 앵커베이에서 나온 2번 DVD가 훨씬 낫다고 하더군요.

2. 이 영화의 더빙은 놀라울 정도로 좋습니다. 보통 이탈리아 호러 영화에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생기없고 공허한 느낌은 전혀 찾아볼 수 없군요. 그래서 사운드의 질이 더 아쉽게 느껴지지만요.

3. 바바의 전작 [블랙 사바스]가 텔레비전에 나옵니다. 스토리 안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하죠.

4. 대부분을 바르셀로나에서 찍은 이 영화의 공식적인 무대는 프랑스 파리. 하지만 등장인물들의 이름은 모두 영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