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한단 이펙치 Handan Ipekçi

주연
쉬크란 귄고르....리파트 베이
Sükran Güngör....Rifat Bey
딜란 에르세틴....헤자르
Dilan Erçetin....Hejar
퓨순 데미렐....사키네
Füsun Demirel....Sakine
일디즈 켄테르....뮤제옌 하님
Yildiz Kenter....Müzeyyen Hanim
이스마일 하키 센....에브도 에미
Ismail Hakki Sen....Evdo Emmi

리파트와 헤자르

정치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영화가 어린아이를 드라마의 도구로 사용하는 건 반칙입니다. 도대체 누가 고통받는 아이들을 보면서 객관적이 될 수 있겠어요?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 공정한 싸움만으로 버틸 수 있는 곳이 아니기도 합니다.

[헤자르]의 감독 겸 작가인 한단 이펙치도, 은퇴한 터키 판사와 쿠르드족 소녀의 이야기를 구상할 때부터 페어플레이는 포기하기로 작정했던 것 같습니다. [헤자르]는 염치 따지지 않는 멜로드라마이며 자기가 그렇다는 사실을 감출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이런 종류의 이야기들이 대부분 그렇듯, 이 영화 역시 대립되는 두 세계에서 온 두 사람의 갈등과 애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주인공인 리파트는 은퇴한 판사입니다. 자신이 속해 있는 경찰국가의 부당함에 분노하고 있지만 쿠르드족의 독립에 대해서는 별다른 생각이 없죠. 어느 날 경찰이 맞은편 방에 사는 쿠르드족 변호사의 집을 급습하고, 곧 그들에게 살해당한 사람들의 피에 절은 한 소녀 헤자르가 판사의 방 앞에 나타납니다. 판사와 가정부는 엉겁결에 소녀를 숨겨주게 되고, 둘은 서서히 이 무뚝뚝하고 애교없는 소녀와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헤자르]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는 언어입니다. 헤자르는 쿠르드어만 쓰는 아이입니다. 리파트는 반은 의무감에서, 반은 아이의 정체가 들통날까봐 아이에게 계속 터키어만 쓰도록 강요합니다. 하지만 헤자르와 관계가 진척되면서 그런 강요의 폭력성에 대해 조금씩 이해해가고, 결국 헤자르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쿠르드어를 배우기 시작하죠. 이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꽤 친숙합니다. 우리 역시 모국어 사용 자체를 탄압당한 경험이 있으니까요.

언어와 멜로드라마를 도구로 삼아, 영화는 터키인들과 쿠르드족간의 화해의 길을 모색합니다. 어떻게 보면 비교적 쉽게 안전한 결말에 도달할 수 있는 길이긴 한데, 영화는 그 유혹에 빠지지 않습니다. 다소 씁쓸한 결말에 이르면, 우린 아무리 헤자르에 대한 판사의 사랑이 강해도 두 세계 사이에 놓인 장벽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지요. [헤자르]의 갈등은 개인간의 화해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종류가 아닌 겁니다.

[헤자르]에는 차가운 현실의식과 감상적인 멜로드라마의 도식적 표현들이 섞여 있습니다. 종종 이들은 심하게 충돌하지만 다행히도 많은 경우 상호보완적입니다. 멜로드라마만 남았다면 감상적인 사기처럼 느껴졌을 것이고 냉정한 사실주의만 고수했다면 지금처럼 찡한 느낌은 결코 주지 못했을테니 말이죠. (05/04/15)

DJUNA

기타등등

이 영화는 터키에서는 상영금지된 모양이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