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라울 월시 Raoul Walsh

주연
아이다 루피노....마리
Ida Lupino....Marie
험프리 보가트....로이 얼
Humphrey Bogart....Roy Earle
제로....파드
Zero....Pard
앨런 커티스....'베이브'
Alan Curtis....'Babe'
아서 케네디....'레드'
Arthur Kennedy....'Red'
조운 레슬리....벨마
Joan Leslie....Velma
헨리 헐....'닥' 밴튼
Henry Hull....'Doc' Banton
헨리 트레버스....파
Henry Travers....Pa
제롬 호원....힐리
Jerome Cowan....Healy
미나 검벨....보맴 부인
Minna Gombell....Mrs. Baughmam
바튼 맥클레인....제이크 크렌머
Barton MacLane....Jake Kranmer
엘리자베스 리스던....마
Elisabeth Risdon....Ma
코널 와일드....루이스 멘도자
Cornel Wilde....Louis Mendoza
도널드 맥브라이드....빅 맥
Donald MacBride....Big Mac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로이, 파드, 마리

[하이 시에라]는 대공황 시절 사람들이 좋아라하며 봤던 갱스터 이야기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습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 로이 얼은 가석방 된 뒤 호텔 강도질을 하다가 경찰에 쫓기는 몸이 되고 결국 시에라 네바다 산맥의 바위산에서 장엄한 최후를 맞습니다. 위에 스포일러 경고를 쓰긴 했지만, 이 결말이 스포일러라는 생각은 안 드는군요. 이런 영화의 주인공들은 늘 막판에 죽거든요. 장소와 상황이 다를뿐이지. 게다가 이 클라이막스 장면은 다들 알아요. 이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부분이죠.

엄청 컴컴한 영화 같죠? 하지만 안 그래요. 적어도 영화 전반부까지 로이 얼의 이야기는 밝고 경쾌합니다. 일단 그는 지난 몇 년 동안 썩고 있던 감옥에서 나와 너무 행복해요. 공원에서 노는 아이들도 귀엽고, 오래간만에 고향 마을을 방문한 것도 좋으며, 차 타고 가다가 만난 시골 사람들과 친구가 된 것도 좋습니다. 게다가 자길 잘 따르는 애교만점 개도 한 마리랑 자기에게 눈길을 주는 여자도 하나 생겼습니다. 그뿐인가요? 그는 착한 일도 해요. 길 가다 만난 가족의 다리 저는 딸에게 반해 자기 돈으로 수술을 받게 해주죠.

제 옆좌석에 앉은 어떤 아저씨는 영화 중간에 킬킬거리면서 "이거, 코미디 아냐?"라고 중얼거리더군요. 그 반응이 이해가 가요. 영화는 로이 얼 주변에서 일어나는 이 모든 사건들을 전체적인 맥락을 거의 고려하지 않으면서 단편적이고 직설적으로 묘사해요. 부분부분 장면들은 정말로 코미디나 멜로 영화 같습니다. 게다가 이런 갱 영화에서 멍멍이 파드의 재롱이 이렇게 상세하게 묘사되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왜 로이가 다리 저는 여자의 수술을 받게 해주는 감상적인 이야기가 자세히 묘사되는 걸까요?

이 모든 것들은 전체적인 영화의 균형을 깨먹는 것 같습니다. 그 때문에 영화는 보다 성숙한 필름 느와르 장르로 옮겨가는 과정에 선 과도기 영화나 그냥 어색하게 덜컹거리는 평작 갱영화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의 주연배우 험프리 보가트가 이후에 그렇게 자라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유명세를 타지 않았을 거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건 너무 냉소적인 것 같고...

그런데 극장에서 다시 보니, 전 이것들이 그렇게까지 큰 단점처럼 보이지는 않더군요. 오히려 그 덜컹거리고 통속적인 질감 때문에 실제 삶에 더 가깝게 느껴지더라고요. 딱 로이 얼 수준의 갱스터가 죽기 직전에 자기 말년을 회상한다면 그렇게 봤을 것 같아요. 후반부의 강도질은 전설의 전문가가 한 짓치고는 한심할 정도로 서툴러 보이지만, 아무리 전문가가 가담한다고 해도 강도질 같은 범죄는 쉽게 틀어지는 법이죠. 게다가 전 로이 얼과 마리의 연애담이 좋았습니다. 미래없는 전과자와 역시 밑바닥 인생을 사는 평범한 여자의 뻔하고 고루한 이야기지만 와닿는 걸 어떻게 해요. 바위산에서 벌어지는 클라이막스 신이 그처럼 절실하게 느껴졌던 것도 그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공동 각본가 존 휴스턴, 감독 라울 월시, 공연배우 아이다 루피노 모두 한 번 이상 반짝일 기회를 얻지만, 그래도 [하이 시에라]는 험프리 보가트의 영화입니다. 그의 캐릭터가 완벽하게 완성되어 영화 전체에 쓰인 건 이 영화가 처음이거든요. 그 뒤로 보기 선생은 [말타의 매], [카사블랑카]를 거쳐 할리우드 스타가 되었고 나중엔 로렌 바콜을 아내로 챙기기까지 했죠. 하긴 담배를 꼬나물고 인상을 팍팍 쓰며 스크린 위를 걸어다니는 그의 모습을 보면, 인기를 끄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예쁘거나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지만 그래도 왠지 모르게 사람들에게 먹힐 것 같단 말이죠. (07/12/10)

DJUNA

기타등등

로이의 개 파드로 나오는 멍멍이 배우 제로는 원래 험프리 보가트의 개였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