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바바라 해머 Barbara Hammer

History Lessons (2000)

바바라 해머의 다큐멘터리 [역사 수업]은 [질산염 키스 Nitrate Kisses], [바비의 일생 Tender Fictions]으로 이어지는 삼부작의 마지막 작품입니다. 전 [Nitrate Kisses]를 오래 전에 굴러다니는 비디오로 봤지만, 1회 여성 영화제 때 상영된 [Tender Fiction]은 본 적 없습니다. 왜 놓쳤는지 모르겠어요.

[역사 수업]의 스타일은 [질산염 키스]와 유사합니다. 하지만 소재는 조금 협소하지요. [질산염 키스]가 월라 캐서에서 현대 게이 무브먼트에 이르는 미국 게이 여성의 역사를 다루었다면, [역사 수업]은 영화가 탄생한 19세기 말부터 스톤월에 이르는 영화 이미지에 비친 게이 여성의 이미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위지의 현상 사진들을 재현한 몇몇 장면과 부치/펨 커플을 검진하는 남자 의사가 나오는 장면을 제외하면 이 영화의 대부분은 재편집된 클립입니다. 센트론 교육 영화, 의학 영화, 전쟁 홍보 영화, 20년대 자연주의자들에 대한 다큐멘터리, 포르노... 네, 포르노 클립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21세 이하 관람불가였어요.

[질산염 키스]에서 그랬지만, 해머는 [셀룰로이드 클로젯]처럼 성실한 다큐멘터리 형식을 취하지는 않습니다. 해머는 기존 클립들을 짓궂게 교차 편집해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합니다.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여성 군인들을 독려하는 심각한 남자 아나운서의 멘트가 어느 순간 레즈비언 포르노 해설로 변질되고, 엘리노어 루즈벨트의 뉴스 클립이 가상의 레즈비언 클럽의 연설로 뒤바뀌는 식이죠.

이런 시도는 예술적이라기보다는 지적입니다. 해머는 대부분 남성들에 의해 만들어졌던 20세기 게이 여성들의 역사를 '탈취'해서 자기 식으로 재구성하고 있습니다. 사전 지식이 없는 관객들은 이 '역사 수업'에서 구체적인 지식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그런 게 필요한 사람들은 릴리언 패더만의 책들을 읽으면 됩니다.) [역사 수업]이 보여주는 것은 역사적 지식이 아니라 역사를 보는 방식입니다.

그 결과 나온 영화는 가끔은 장난스럽고 가끔은 혼란스러운 클립의 잡탕입니다. 개인적으로 비슷한 농담이 지나치게 자주 반복된다는 느낌이 들었고, 몇몇 장면들은 줄이는 편이 더 나았을 거라는 생각도 들지만, 이 재활용 영화의 미덕을 아주 망치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01/04/16)

DJUNA

기타등등

1. 영화가 끝나고 바바라 해머와의 Q&A가 있었는데, 어떻게 보면 영화보다 더 재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해머는 열정으로 가득 찬 굉장히 좋은 연사여서 주저하며 시작되었던 Q&A가 끝날 때 쯤엔 다들 아쉬워 하는 듯 했어요.

2. 센트론 교육 영화 클립 하나는 [숨바꼭질]에서도 나오는 것 같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