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폴 버호벤 Paul Verhoeven

주연
엘리자베스 슈....린다 맥케이
Elisabeth Shue....Linda McKay
케빈 베이컨....세바스찬 케인
Kevin Bacon....Sebastian Caine
조쉬 브롤린....매튜 켄싱턴
Josh Brolin....Matthew Kensington
킴 디킨즈....사라 케네디
Kim Dickens....Sarah Kennedy
그레그 그룬버그....카터 애비
Greg Grunberg....Carter Abbey
조이 슬로트닉....프랭크 체이스
Joey Slotnick....Frank Chase
메리 랜들....재니스 월튼
Mary Randle....Janice Walton
윌리엄 디바인....하워드 크레이머 박사
William Devane....Dr. Howard Kramer
론다 미트라....세바스찬의 이웃
Rhona Mitra....Sebastian's neighbor

투명인간 아이디어가 호러 영화 제작자들을 그렇게 매료시켰던 이유는 제작비가 싸고 만들기가 쉬웠기 때문이었습니다. 큰 배우를 들일 필요 없이 물건들을 실로 묶어 움직이기만 하면 되었으니 참 영화 만들기 쉬운 거죠.

하지만 세월은 흐르고 흘러, 관객들이 그런 단순한 트릭에 만족할 수 없는 때가 오고 말았습니다. 뭔가 더 복잡한 구경거리가 필요했어요.

존 카펜터의 [투명인간의 사랑]은 바로 그 새로운 구경거리를 보여준 작품이었습니다. 이 영화의 투명인간은 막 각광받기 시작한 디지탈 특수 효과를 이용해서 선배들이 꿈도 꾼 적도 없었던 흥미로운 재주를 보여줍니다. 투명한 머리 위에 모자를 눌러쓰고, 옷을 헐겁게 입은 채 등쪽 옷감을 보여주기도 하며, 투명한 다리와 발목을 드러내며 조깅을 하기도 합니다. 가끔 와닿는 유체 속에서 투명한 윤곽이 살짝 드러나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 영화도 벌써 옛날 영화가 되고 말았지요. 그 동안 기술은 더욱 더 발전했습니다. 뭔가 더 근사한 구경거리를 보여줄 때가 된 것이지요.

폴 버호벤의 [할로우 맨]은 바로 그런 영화였습니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어마어마한 특수 효과들로 가득합니다. 그 동안 발전한 기술을 자랑스럽게 과시하면서요.

가장 눈에 뜨이는 것은 주인공 케인이 서서히 투명해지는 과정입니다. 그는 마치 꿈틀거리는 인체 해부도처럼 피부, 근육, 뼈 순서대로 서서히 사라집니다. 질감이 약간 컴퓨터 티가 나기는 하지만 보여지는 광경이 기가 막히게 박진감이 넘치기 때문에 그 사소한 디테일은 잊게 되죠. 또 우리가 정말 서서히 사라지는 투명인간을 본 적이 있는 것도 아니니 정말 그게 컴퓨터 티가 나는 것인지 확신할 수 없기도 하고요.

케인의 투명성을 돋보이게 하는 방법도 훌륭합니다. 영화는 그를 완전히 지우는 대신 살짝 살짝 보여주면서 그의 투명성을 강조합니다. 투명한 몸에 걸쳐진 옷, 소화기의 분말과 수영장의 물, 파이프에서 새어나오는 증기로 몸의 윤곽을 드러내면서요.

이것만으로도 영화는 할 일을 한 셈입니다. 대부분 관객들은 어떻게 특수 효과로 투명인간을 만들었는지 궁금해서 왔을테니까요.

그렇지만 특수 효과로만 영화를 만들 수는 없습니다. 뭔가 더 있어야죠. '캐릭터'나 '스토리'와 같은 것 말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이 영화는 특수 효과만큼 새로운 스토리를 보여주고 있지는 않습니다. [할로우 맨]은 전형적인 미친 과학자 이야기입니다. 천재 과학자 세바스찬 케인은 동료들과 함께 국방성의 지원을 받아 투명인간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이미 투명하게 만드는 건 성공했지만 문제는 다시 불투명한 원래 모습으로 돌려놓는 것입니다. 고릴라 실험으로 자신감을 얻은 그는 자신을 실험대에 올려놓지만 불투명해지는 데엔 실패하고 말죠. 투명인간의 모습이 지속되는 동안 약이 뇌에 영향을 끼쳤는지 그는 서서히 미쳐가고 영화는 결국 호러 영화식 학살로 끝나게 됩니다.

영화는 지루하지는 않습니다. 속도는 빠르고 스크린 위에 벌어지는 사건 역시 꽤 힘에 넘칩니다. 문제는 이 모든 게 너무 진부하고 어설프다는 것이지요. 나중에 살인 동기가 되는 삼각 관계는 시시하고 후반부의 '밀실 속 괴물' 살육 장면은 비디오 가게에서 빌려온 B급 호러 영화를 그대로 끼워 맞춘 듯 합니다. 케빈 베이컨이나 엘리자베스 슈와 같은 좋은 배우도 제대로 활용이 되어 있지 않고요. 그 결과 재미없지는 않지만 별다른 흥미도 없는 영화가 되고 말았어요.

많은 비평가들은 버호벤이 뭔가 더 보여줄 수 있는 감독이라고 합니다. 버호벤이라고 늘 [로보캅]만 찍으라는 법은 없다고 생각하는 저는 그런 비판이 부당하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밀실 속 괴물' 이야기로 끌어가는 것보다 더 나은 스토리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사실 영화의 각본 역시 무의식적으로 그런 스토리를 지향하고 있다고 생각하고요. 투명성을 도덕적 책임감의 상실로 연결하고 갈키스의 반지에 대한 현대식 우화로 만든다면 꽤 재미있는 영화가 나왔을 것 같지 않나요?

하지만 [할로우 맨]이 의식적으로 그런 영화를 의도한 적이 없었을테니 제 투정은 그렇게 의미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또 그런 투정을 할 생각도 없습니다. 제가 이 영화의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특수 효과는 훌륭했으니까요. 전 본전은 건졌어요. (00/09/04)

DJUNA

기타등등

자주 언급되는 투명인간의 문제점들은 여기서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망막에 상이 맺히지 않는데 어떻게 볼 수 있나, 투명인간이 음식을 먹으면 어떻게 되나와 같은 것들 말이에요. 하긴 그런 걸 하나하나 따지다 보면 투명인간 영화를 만드는 것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그래도 거슬리는 부분이 있군요. 피를 뒤집어 쓴 투명인간이 그 다음 장면에서 말짱한 투명성을 유지하며 달아나는 건 좀 너무했습니다. 아무리 중간에 샤워를 했다고 해도 피가 그렇게 쉽게 지워질 수 없습니다.

약물을 주사하는 것으로 투명해진다는 아이디어도 조금은 불안합니다. 머리칼이나 이와 같은 것들이 주사 때문에 투명해질 수는 없지 않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