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신동일

주연
김재록....호준
강지환....계상

계상과 호준

주인공 1 호준. 아직도 영화감독의 꿈을 품고 있지만 지금은 간신히 입에 풀칠이나 하고 있는 시간강사입니다. 아내와는 이혼했고 남은 건 간신히 원룸 아파트 하나 빌릴 수 있는 돈 정도죠. 그는 정말로 이 **같은 세상이 XX하고 ###합니다. 아무리 아파트 문에 '조국일보 사절'이라고 써붙여도 **같은 신문은 꾸준히 배달되고, 아무리 조국일보 1면에 난 조지 W. 부시 사진을 실수인 척 더럽혀도 그가 재선되는 현실은 바뀌지 않고, 아무리 그가 8백만 비정규 노동자들과 한국 영화의 앞날을 걱정한다고 해도...

이런 식으로 한 없이 이어질 수 있지만 과연 주변사람들 중 그를 제대로 이해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그는 걸어다니는 폭탄입니다. 툭하면 옆 사람과 시비가 붙고, 욕을 입에 달고 다니고, 조금이라도 수준이 낮아보이는 사람들에겐 엄청 위압적이고, 잘난 척은 하늘을 찌르고, 공중도덕에 대해서는 아주 피상적인 지식만 갖고 있는데다 그마저도 대놓고 무시하고... 이 영화의 감독인 신동일은 호준이 생각과 행동이 반대로 가는 사람이라고 설명했지만 꼭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전 호준과 비슷한 386세대의 남자들을 꽤 아는데, 바로 그 생각이 행동의 원천이에요. 한마디로 에고가 너무 세요. 그의 무능력도 그의 에고를 꺾지 못합니다. 그건 세상이 썩었다는 증거일 뿐이죠.

주인공 2 계상. 키 크고 잘생기고 겸손하고 매너 좋고 참을성 있고 친절하고 이웃에 대한 봉사정신과 사랑이 넘쳐 흐르는 미소 청년입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그를 꺼리는 걸까요? 그건 계상이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며 전도하는 기독교 신자이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그냥 기독교 신자가 아니에요. 다른 기독교인들이 이단 취급하는 소수 종파의 신자죠. 영화에서는 단 한 번도 그 명칭이 나오지 않지만 그는 여호와의 증인 신자입니다. 덕택에 그는 생판 모르는 사람들에게 욕을 먹고 종교를 밝히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과외 아르바이트에서 잘립니다.

이 두 사람이 만납니다. 처음 계상이 호준의 집에 전도하러 찾아 왔을 때, 호준은 그를 다짜고짜 내쫓아 버렸죠. 하긴 컴퓨터로 야한 동영상보며 자기 몸을 열심히 만지고 있는데 전도사들이 방해하면 얼마나 짜증나겠어요. 하지만 두 번째 만났을 때 그는 도저히 계상을 쫓아내지 못합니다. 그는 자물쇠가 고장난 화장실 안에 알몸으로 갇혀 쓰러져 있었고 그를 구하러 온 유일한 사람은 다시 전도하러 왔다가 그의 신음소리를 들은 계상 뿐이었거든요.

여기서부터 두 사람은 아슬아슬한 우정을 시작합니다. 어울리지 않는 한쌍이라고요? 얼핏보기엔 그렇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꼭 그렇지도 않아요. 계상처럼 이해심과 참을성이 충만한 사람이 아니라면 도대체 누가 호준의 폭탄 같은 성격을 받아주겠습니까. 게다가 두 사람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려고 한다는 점에서도 같습니다. 계상이 호준에게 복음을 전파하려 한다면 호준은 계상을 인본주의로 개종시키려 하죠. 결정적으로 두 사람은 모두 외롭다는 점에서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특히 호준은요.

영화가 지속되는 동안 이들은 서서히 변화해갑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서로의 믿음이나 신념을 받아들이는 건 아니에요. 특히 계상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캐릭터 변화가 거의 없지요. 하지만 호준은 바뀝니다. 대책없이 투덜거리만 하던 그가 세상을 향해 마음을 열기 시작한 것이죠. 계상의 승리일까요?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신념의 대결에서 이긴 건 호준입니다. "사람을 믿어라"라는 그의 모토가 계상을 통해 피어나 그에게로 돌아온 거죠. 이 비틀거리는 논리를 다시 따라가보면 [방문자]가 아주 괴상하게 뒤틀린 인본주의 영화라는 걸 알게 되지요. 이 영화는 골수 신본주의자를 통해 자기 자신을 개종시킨 인본주의자의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가 주목할만한 부분은 신동일이 결코 자신이 이야기하려는 주제를 숨기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신동일의 정치적 입장은 호준을 통해 그대로 표출됩니다. 예술적으로 변형되거나 얼버무리는 거 없어요. 그는 하고 싶은 말을 그냥 막 합니다. 계상은 호준보다 좀 먼 인물이지만 양심적 병역 거부와 소수자 문제라는 제한된 영역 안에서 감독과 의견이 일치할 때는 말이 무척 많아집니다. 특히 영화의 클라이막스 부분에서 계상이 하는 연설은 거의 프랭크 카프라적입니다. 많이들 지나치다고 생각할 거예요.

이런 직설법에도 불구하고 [방문자]가 우리에게 뭔가를 강요한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 건, 그 메시지를 심는 방법이 아주 효과적이기 때문입니다. [방문자]는 메시지를 심기 전에 자기 성찰의 토대를 먼저 깝니다. 그 다음에 어긋나는 신념을 가진 두 사람이 솔직하게 대화를 주고 받을 환경을 마련해주지요. 특히 그들이 계상의 고향집에서 나누는 대화는 정직하고 호소력 있을 뿐만 아니라 아름답기까지 합니다.

그 결과 우린 어느 한 쪽을 택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않으면서도 영화를 보게 됩니다. 영화가 그러는 동안 또다른 교훈을 주는 것도 사실이지만 적어도 그 교훈은 어느 입장에서 보더라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습니다. 후반부 카프라 연설도 무시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린 여전히 카프라의 연설을 듣잖아요. 그렇다면 신동일의 연설을 듣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죠.

영화가 자성의 도구로 삼고 있는 건 코미디입니다. 영화의 코미디는 너무나도 정직하고 날카로워서 거의 잔인무도하기까지 합니다. 영화 중반에 이르면 호준의 껍질이 다 벗겨져 내장이 드러날 정도죠. 그리고 그 잔인무도함은 정말로 먹혀서 영화의 농담들은 종종 굉장히 웃깁니다. 특히 신동일이 자주 등장시키는 시치미 뚝 뗀 롱테이크는요. 그리고 이 코미디들은 자연스럽게 드라마와 정치적 선언과 연결됩니다. 하긴 이 정도로 속을 완벽하게 드러낸 캐릭터를 어떻게 믿지 않을 수 있겠어요. (06/11/10)

DJUNA

기타등등

영화 중간에 밥 딜런의 [Blowing in the wind]가 나옵니다. 한국어로 개사가 된 노래를 주인공이 직접 불러서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대요. 나중에 그래도 돈을 내야 한다는 걸 알고 밥 딜런에게 편지를 써서 10분의 1로 깎았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