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오바야시 노부히코 Nobuhiko Obayashi

주연
이케가미 키미코....오샤레
Kimiko Ikegami....Oshare
미나미다 요코....이모
Yôko Minamida....Grandmother
오바 쿠미코....판타
Kumiko Ohba....Fanta
진보 미키....쿵후
Miki Jinbo....Kunfuu
마츠바라 아이....가리
Ai Matsubara....Gari
미야코 마사요....스위트
Masayo Miyako....Suuitto
타나카 에리코....멜로디
Eriko Tanaka....Merodii
사사자와 사호....오샤레의 아버지
Saho Sasazawa....Oshare's father
와니부치 하루코....에마 료코
Haruko Wanibuchi....Ryouko Ema

오샤레

오바야시 노부히코의 [하우스]를 보는 관객들은 시작부터 가벼운 두통과 멀미증상을 일으킵니다. 다 영화 때문이죠. 오바야시 노부히코는 관객들을 위해 영화의 구성요소들을 정리할 생각 따위는 하지 않으니까요. 영화는 그냥 산만하고 정신없습니다. 특히 영화 안에서 두 개 이상의 음악이 동시에 나올 때는 도대체 어느 걸 따라가야 하는 겁니까?

몇 분 지나면 이야기가 정돈되기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이 영화의 주인공 오샤레는 홀아비인 아빠랑 함께 사는데, 이 아빠가 갑자기 결혼하겠다며 젊은 여자친구를 데려오는군요. 충격 받은 오샤레는 방학 때 친구들을 데리고 시골에 사는 이모네 집으로 갑니다. 오샤레는 일본어로 멋쟁이라는 뜻이라지만 다른 친구들 이름도 만만치 않습니다. 몽상가인 단짝 친구는 판타, 먹보인 친구는 맥, 피아노 치는 애는 멜로디, 무술 잘 하는 애는 쿵후, 착한 애는 스위트, 그리고 안경 쓴 애는 가리 (공부벌레란 뜻이라나요). 얘들은 모두 [뽀뽀뽀]와 같은 유아용 프로그램에 나오는 어린이 친구들 수준으로 단순명쾌하게 유형화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게 꽤 잘 먹힙니다. 일곱 명이나 되는 비슷비슷한 아이들이 나오는 영화인데도 중반에 가면 다 구별이 되니 말이죠.

이모네 집에 가면서 이모의 과거가 설명됩니다. 한 마디로 이모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남자친구를 잃었어요. 아이들은 무성영화로 보여지는 회상을 바라보면서 "옛날 남자들이 더 남자 같아!" 따위의 무성의한 감상을 내뱉습니다. 당시 아이들에게 전쟁은 이미 까마득한 과거이고 거기에 대한 피상적인 관심도 없죠. 이 영화를 보면서 반전 메시지에 깊이 매달리는 관객들은 별로 없겠지만 오바야시 노부히코의 경우는 꽤 진지했던 모양입니다.

결국 아이들은 이모네 집에 도착하는데요. 여기서부터 슬슬 일이 터집니다. 집에서 아이들이 한 명씩 사라지기 시작하는 것이죠. 오로지 몽상가인 판타만이 사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있지만 아이들은 믿지 않습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냐고요? 귀신 들린 집이 아이들을 한 명씩 잡아먹고 있었던 거죠. 반신불수라는 이모가 아무래도 배후에 있는 것 같고요. 아이들은 달아나려하지만 출구는 막혔고 자기네들을 초대한 오샤레의 정신상태도 미심쩍습니다.

공포와 서스펜스를 기대해도 되는 설정인데, 이 영화에는 그런 게 없습니다. 관객들은 누가 죽어도 별 신경을 안 써요. 일단 그 죽음 자체가 진지하게 받아들여질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은 사람처럼 죽는 게 아니라 2차원의 셀룰로이드 조각처럼 분해돼요. 사지가 찢겨나가는 동안에도 피는 튀지 않고 피해자도 공포나 고통을 겪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 과정을 넘어서면 그들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꿈과 부조리의 세계로 떨어집니다.

게다가 그 과정의 묘사가 정말로 괴상합니다. 당시 오바야시 노부히코는 실험영화 경력이 있는 CF 감독이었고 이 영화도 정말 얼떨결에 맡은 프로젝트였습니다. 이 사람은 주류 영화사를 위해 장편영화를 만들면서도 이를 '주류 영화'를 만들 생각 따위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그냥 자기가 알고 있는 모든 영화적 테크닉과 특수효과를 동원해 이 영화를 만화경과 같은 시청각적 난장판으로 만들었어요. 이건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오히려 맥이 풀릴 것 같군요. 예를 들어 이 영화에는 잘린 손가락들이 피아노를 치는 장면이 있습니다. 끔찍하지만 평범하게 들리죠? 그런데 이런 것들이 수백 개가 모여서 모두 다른 특수효과와 테크닉으로 묘사된다면? 결과는 한마디로 '사이키델릭'합니다. 중반 이후엔 마약이라도 한 기분이 들지요. 여기서부터는 논리고 내용이고 필요없습니다. 남은 건 영화적 경험뿐이에요.

벌써 30여년 전 영화지만 [하우스]는 썩 나이를 잘 먹은 편입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광학특수효과는 요새 기준으로 보면 조악하지만 그게 단점이 되지는 않죠. 처음부터 사실적인 효과를 노린 성질의 것이 아니니까요. 마찬가지로 이 영화의 부조리한 스토리 전개와 농담 역시 결코 주류화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금 와서 봐도 그 괴상함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아니, 영화를 만들었던 70년대 당시의 분위기가 그 괴상함을 더 괴상하게 만들어주죠. 정말 다시는 나올 수 없는 부류의 영화인 겁니다. (09/07/13)

DJUNA

기타등등

1. 서울 국제 청소년 영화제 상영작입니다. 감독과의 대화에서 오바야시 노부히코는 '어린이'라는 말을 많이 쓰더군요. 이 영화도 '어린이 관객들'의 지지로 흥행에 성공했다고 하던데... 흠, 당시 이 영화의 등급이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군요. 노출신이 꽤 되더라고요.

2. 오바야시 노부히코는 이 영화의 아이디어를 당시 11살이었던 딸에게서 얻었다고 합니다. 무슨 영화가 재미있을 것 같냐고 물었더니 '집이 아이들을 잡아먹는 영화'라고 대답하더라나요. 딸과 부인 모두 영화제에 왔는데, 딸은 [하우스] 티셔츠를 입고 있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