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척 존스 Chuck Jones

주연
보리스 칼로프....그린치/나레이터
Boris Karloff....Grinch/Narrator

후 마을 사람들이 크리스마스를 맞이하기 위해 열심히 뛰는 동안 산구석에서 떫어 어쩔 줄 몰라하는 이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심장 크기가 다른 사람들의 반의 반 밖에 안되는 그린치였습니다. 그는 크리스마스 때 내는 사람들의 요란한 소음이 싫었고 그들이 먹는 음식도 싫었으며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해괴한 장난감도 싫었습니다. 올해는 더이상 그대로 지나가지 않겠다고 생각한 그린치는 결심합니다. 후 마을에서 크리스마스를 훔치겠다고요!

미국 사람들 중 닥터 수스의 이 유명한 그림책을 읽지않고 그냥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혹시나 그림책을 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척 존스가 화면에 옮긴 이 유쾌한 애니메이션을 지나치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요. [그린치는 어떻게 크리스마스를 훔쳤는가!]는 [멋진 인생]이나 [34번가의 기적]처럼 그 동네 텔레비전의 단골 크리스마스 스페셜이니까요.

저 자신을 닥터 수스의 열렬한 팬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 양반의 유쾌한 그로테스크함과 다정한 그림체는 나름대로 귀엽지만, 저에겐 너무 평이하게 느껴져요. 전 모리스 센닥과 같은 사람들에겐 충분히 '열광'할 수 있지만, 닥터 수스에 대해서는 그냥 좋은 느낌만 있을 뿐입니다.

그림책 [그린치]만 해도 대단한 걸작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나름대로 매력적인 작품임은 분명하지만요. 그러나 이 작품이 이렇게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건 순전히 크리스마스라는 명절을 훌륭하게 활용한 덕택 때문일 겁니다.

이 30분짜리 애니메이션 영화는 어떨까요? 사실 전 닥터 수스의 그림책보다 영화 쪽이 더 흥미롭습니다. 애니메이션 영화는 그림책이 가지고 있지 못한 것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보리스 칼로프의 음흉한 나레이션, 유명한 'You're a Mean One' 노래, 그리고 무엇보다도 척 존스의 멋진 애니메이션이 있죠.

[그린치]의 가장 큰 매력은 닥터 수스와 척 존스의 캐릭터들이 충돌하며 발생하는 묘한 느낌입니다. 자세히 영화를 들여다 보면 이 영화가 '두 사람'의 작품임이 드러납니다. 후 마을 사람들은 전형적인 닥터 수스 풍이지만, 그린치의 강아지 맥스는 그만큼이나 전형적인 척 존스 풍입니다. 그린치는 수스가 부여한 외모를 하고 있지만 움직이는 건 매우 존스 풍이지요.

존스의 터치가 가해지면서 영화는 훨씬 힘있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여전히 닥터 수스의 감상주의는 남아 있지만, 존스는 그의 음흉함과 새디즘을 능숙하게 이용해서 그린치라는 캐릭터를 너무 근사하게 구현해냈습니다. 사실 [그린치]가 재미있는 이유는 그가 크리스마스의 교훈을 얻는다는 결말 때문이 아니지 않습니까? (말이 났으니 말이지, 저라도 후 마을 윗동네에 살았더라면 짜증났을 겁니다. 그네들은 정신 상태가 이상한 사람들입니다. 제정신인 사람들은 마을 전체가 도둑 맞았는데도 그렇게 태평스럽게 굴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진짜 즐기는 것은 그의 심술과 음흉함입니다. 그리고 척 존스의 거장다운 터치가 수스의 캐릭터에 입혀지면 기가 막힌 그린치가 탄생하는 거죠. 특히 그의 웃는 모습을 보세요. 음흉함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아까 [그린치]가 명절에 영합했다느니 어쨌다느니 하며 김을 뺐지만, 이 영화가 앞으로도 '고전'으로 남을 것임은 분명합니다. 그것이 '선물과 파티는 크리스마스의 정수가 아니다'라는 소박한 교훈 때문이건, 닥터 수스의 유쾌한 상상력 때문이건, 척 존스의 음흉한 매력 때문이건요.

목요일 저녁에 이 단편을 다시 보고 있노라니 기분이 묘해지더군요. 어린 시절의 크리스마스를 다시 겪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99/12/18)

DJUNA

기타등등

1. 산타 클로스 복장을 입고 개가 끄는 썰매에 올라타 후 마을에 뛰어드는 그린치의 모습을 보면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의 악몽]이 연상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분명 버튼이 영향을 받았겠지요. 그가 어린 시절에 텔레비전으로 봤을 영화니까요.

2. 이 영화는 실사 영화로 리메이크 되고 있습니다. 타이틀 롤은 짐 캐리가 맡는답니다.

3. 당연히 수없이 패러디가 된 작품이기도 합니다. [엑스 파일]에서 제목을 패러디한 크리스마스 스페셜을 본 적 있고, 얼마 전에 [핀치는 어떻게 크리스마스를 훔쳤는가]라는 제목으로 [저스트 슛 미]에서 크리스마스 스페셜로 패러디한 것을 보기도 했어요. 물론 이 둘은 극히 일부일 뿐입니다.